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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May 20. 2020

행동으로 보여준 위로

후배 경숙이



말은 필요 없다
모든 것에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행동 요소다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보일 수도 있고 행동할 수 있다

7시 반이 채 되지 않았다
경숙이가 아파트 정문에 도착해 문자를 남긴다

언니 내려와요

감사함과 고마움이 또 한 편에 미안함이 교차한다
경숙이는 위로를 주고파 했다
수십 년 동안 선배 언니를 보았다
그 시간 세월을 함께 했음은 빈 말 가슴보다
훨씬 더 가까이 마음으로 한 사람을 깊이 볼 수 있다
동서를 잃고 동서가 보냈던 세월 속의 형님으로서 산 시간적 아픔을 목도했기에 경숙이는 위로가 필요함을 알고 느꼈고 행동으로 옮겼다

울 언니 위로가 필요하다
위로 좀 해줘야겠다

경숙이가 보낸 문자는 길지 않았다
허나 그 짧은 두 문장에 담긴 마음이 어떠한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경숙이 차에 올랐다
아침 안개가 자욱이 시야를 가렸다
곧 동네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경숙이는 아주 운전을 부드럽고 힘 있게 잘했다
도로가에 핀 하얀 꽃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선배와 후배의 마음으로 가는 여행을 환영하는 듯했다
선배와 후배는 그동안 숱한 개인사로 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오늘은 경숙이가 아이들마저 떼어 놓고 오로지 선배를 위해 시간을 냈다
경숙이 결혼 전 함께 다녔던 일본 여행을
또 무시로 한강에 나가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세월을 함께 왔던 그 시간을 다 접고
결혼 해 서로 개인사로 그저 바쁘게 살았다
경숙이는 요새 선배의 마음 아픔이 꽤 아팠던 듯했다
언니가 쏟아내는 한 서린 마음의 소리들이 깊게 가슴을 파고들며 새겨졌다
위로 여행을 떠나자고 생각했고 그리 길을 나섰다
둘의 마음을 아는지 내내 가랑비가 내렸다
잔잔히 조용히 선배와 후배는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고 있었다

두 시간 여가 지나 경숙이의 고향 충청도 괴산에 도착했다
요새 경숙이는 고향에 주말마다 내려가
토마토 참외 옥수수 고추 등 채소 이것저것을 심고 있다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자 다른 곳을 여행할 수 없는 경숙이는 매주 고향으로 힐링을 하러 갔다
경숙이는 그곳이 지금 선배에게 최선의 힐링을 줄 것이고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기에 안내하기도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그런 생각이 한 마음이 되어 괴산마을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경숙이가 안내한 곳은 연풍순교성지였다
성지에 들어서자 가랑비에 촉촉이 물먹은 파란 잔디가 넓게 쭉 펼쳐져 있다
성지를 들어서며 한 걸음을 떼는데 이미 숙연해지며 거룩이 주는 구별된 마음을 느끼게 된다
조심해서 성지를 둘러봤다
십자가의 길
수도의 길
그리고 성화의 길이
작은 팻말로 인도되는 길 곳곳마다 길 양쪽을 이어가며 성경의 말씀과 이미 순교하신 분들의 가슴에 남았던 말씀이 팻말에 새겨져 길가를 따라 세워졌다
그중에 몇 구절을 읽어봤다
경숙이는 깊은 의미를 주는 한 구절을 발견하고는
이것은 언니에게 해당되는 말이네
하고 손짓을 했다
경숙이가 이끌어 보여준 글은 정말 내가 살아왔던 삶의 해당되는 글이었다
그만큼 경숙이가 선배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숙연과 경건으로 마음을 붙잡는 성지 곳곳은 단 한 장면 풍광도 마음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신앙의 길목이며 교차로 그게 아마 성지가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느꼈다
마음에 오로지 하나만을 생각했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더 정직과 성실과 진실로 당신 곁으로 가겠습니다
다짐을 하며 십자가 상 앞에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했다

다음에 다다른 곳은 경숙이가 이끈 충주 미륵대원지이다
그곳에 정상 하늘재에 올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침내 내리던 비가 이곳까지 멀리 달려왔으니 이제는 마치 파란 하늘을 보라는 듯이 날이 개였다
잠시 의자에 앉은 경숙이를 보고 하늘재 표석을 중심에 두고 한 바퀴를 돌았다
좋았다 탁 튀인 하늘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다시 길을 채촉해 우륵이 거문고를 켰다는 곳으로 향했다 탄금재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막힌 정경으로 강과 하늘과 산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말없이 산 너머로 지는 석양은 묘한 그리움을 가슴에 가득 남겼다
찬란한 선홍이 붙잡을 수 없는 모든 미망을 내려놓으라고 모든 것은 다 지남이라고 조용히 말을 건네며 한 걸음씩 멀어져 갔다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다
경숙이의 위로는 굉장한 힘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설 수 있게
다시 마음 다스림을 조용히 할 수 있게 해 줬다

탄금재를 돌아 집으로 오기까지 무려 13시간의 여정을 내내 경숙이는 기꺼이 안내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경숙이는
지난 수십 년을 함께 한 선배의 마음밭 얘기를 시작으로
대학시절
함께 지냈던 경숙이의 친구들과 나눴던 시간들
교정을 걸으며 경숙이가 들려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잘 된 친구들 이야기
아버지의 죽음
고향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가에 핀 꽃
밭에 주황색 호스로 물길을 낸 언니 얘기
동생 얘기
교회 얘기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내보었던 심연의 소리가 마음으로 이어져 그 많은 얘기들을 끝도 없이 서로 이어졌다

오늘 여정을 돌며
점심에 먹은 청국장과
저녁으로 먹은 막국수와 만두
휴게실에 잠깐 들러 마신 자몽티와
탄금대의 그림 같이 아름답고 예쁜 카페에서 시간을 갖고 음미한 커피
밥값도 일원도 지출 못하게 하던 경숙이의 마음도
그 모든 것이 다 추억이 되어
아마도 다음 여행에는 더욱 깊고 넓어진 마음으로 다져진 서로를 보리라 확신한다

고맙다
경숙아
아주 귀하고 소중한 시간였다
그래 정말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다시 설 수 있게 해 줬다
고맙다
언제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늘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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