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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Lyu Oct 24. 2020

동서가 세상 하직하는 날

마지막 여정이 그리는 시간의 무늬

날이 흐렸다. 날씨가 계속 꾸물거리더니 결국 비가 내렸다. 입관 날도 발인 날도. 동서에게 세상 떠남이 그리도 많은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서 일거라고 느껴졌다. 동서가 남겨둔 아이 4남매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혼자 남겨진 삼촌, 시동생의 형색은 말이 아니었다. 루마티스로 새 다리가 된 지친 몸으로 급기야 다리를 절었다. 삼촌이 너무 안쓰러웠다. 삼촌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가여웠다.


불과 3주 전이다. 동서가 간암 말기로 진단을 받은 것이. 병원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보냈던 게 불과 꼭 3주 전이다. 간암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간암 판정 후 3주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손을 쓸 어쩔 도리가 방법이 없었다. 새벽마다 울었다. 기도하며 울었다. 눈물이 났다. 자꾸... 

목요일 7일 여주 세종병원에 누운 동서의 모습을 봤다. 구정에 본 후 불과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동서는 구정에 함께 웃고 일하고 얘기를 나눴다. 아주버님 걱정으로 서로 많은 얘기를 했다. 그리고 불과 2개월 웃고 일하고 얘기를 나누던 동서가 병상에 누웠다. 인공호흡기를 쓰고. 동서의 손을 잡자 손끝이 차가웠다. 동서의 4남매를 잡고 잘하지도 못하는 기도를 올렸다. 하고 싶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생애 처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를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하나님 새벽마다 기도 때마다 기도를 올렸어요.

동서를 살려달라고요.

동행해 달라고요.

기도를 받으시라고요.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는다고요.’


수십 년 교회를 다녔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기도를 할 줄 모른다. 생애 처음 입으로 소리를 내는 첫 기도를 올렸다. 동서가 내 기도를 들을 수 있는지는 들었는지는 모른다. 의식이 반수면의 상태로 있는, 그 상태의 동서가 나의 기도를 들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내 마음을 하나님께 올리고 싶었고 그리 기도를 했다.


그런데 

말도 못 하는 동서가 

거의 움직임조차 못하던 동서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서가

동서의 눈가에 눈물이 가늘게 흘러내렸다.

모두 놀라 아이들이 ‘엄마 운다!’고 말을 했다

위안이었다. 

그래 기도를 들었구나.

내 기도를 듣기는 들었구나.


그게 마지막 동서를 보는 거라고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집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이었다.


그리고 겨우 3시간 여가 지난 2020년 5월 8일 새벽 2시 반, 삼촌의 문자가 온다.


‘저의 아내가 세상을 떴습니다.

영면했습니다.’


큰 아이와 남편과 3일 동안 장례에 있을 속옷 양말 세면도구를 챙긴다. 아주버님이 오시고 곧 넷이 한 차에 올라 여주 세종병원에 이른다. 시동생, 삼촌의 4남매와 삼촌이 상복으로 우리를 맞는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먼저 이승에 보내는 것은 가슴 저리고 아프고 괴로운 슬픔이다


먼저 도착한 작은 집 큰 동서가 “형님!” 하며 말을 아낀다. 기다렸단다. 나를 보고 가려고 형님 오실 때까지 기다렸단다. 손을 잡자 서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한 집안의 막내는 

집안의 어른들이 막내로 위함만 받고 자라 

첫째 며느리는 안 된다고 그런 자리는 못 보낸다고 했다

그때 둘째인 남편은 큰소리쳤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형님 계시고 모든 일 대소사는 형님이 하실 것이고 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난 남편 집안의 둘째 며느리, 둘째가 되었다

허나 나의 큰 아이 나이보다 좀 더 긴 시간을 

결혼해 내내

경제적으로 일로 마음으로 집안 대소사를 치렀다

어머님 용돈, 병원비, 묘 이장비, 집안 경조사비, 조카 결혼, 제수비. 아이들 학교 입학, 군대 입대

삼촌 사업한다고 가져간 들어간 한두 푼이 아닌 거금

아주버님이 벌린 일 뒤처리로 들어간 통장을 다 털어간 거금

그나마 산다는 이유로 

어느 하나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 내 손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면 어떤 일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막내로 세상 물정 모른다고 모두 말하는 둘째가

세상을 어디 그리 마음으로만 보고 사냐고 하는 말을 듣는 둘째가

그런 사람인 둘째가 시댁에 모든 일을 담당하며 왔다


숱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결혼해 살아왔던 모든 시간을 지난 역사의 일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입관 때 본 동서의 모습은 너무나 평안했다

‘그래 

이승의 모든 것을 다 놓고 편히 가렴

살면서 가졌던 서운함도 언짢음도 미련도 오해도 슬픔도 다 잊고 접고 가렴

그리고 

남아있는 모두에게 좋은 일과 좋은 마음으로 모든 것이 다 잘 되게 하렴’

짙은 심연의 염원으로 오로지 한 기도만을 올렸다


운동을 좋아한 동서가 9년 이상이나 탁구 동호회에서 활동했고, 우승도 했고, 우승하고 V자를 만들며 웃으며 찍은, 웃는 영정사진 속에서 동서는 아직도 계속 웃고 있었다. 몰랐다. 동서가 그 오랜 세월 탁구를 운동을 해왔다는 사실도. 그렇게 오랜 세월 시간을 운동으로 사람들과 친목을 다졌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그동안 난 수업을 강의를 일을 했고, 수입으로 집안을 챙기느라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최선을 다해 가족을 위해 살았다. 평생 빈말 겉치레 따윈 안 하고 살아왔다. 최선으로 진심을 삶의 철학으로 갖고 살고자 했다. 그리 살았다.

누군들 가족을 위해 살지 않았겠냐마는 세상 떠난 사람의 일상을 장례식에서야 알게 된 것은, 그때서야 진정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참으로 묘한 아픔이었다.


‘교만 질투 시기 배신 등 여러 감정을 다 거둬가소서

아픔 후회 미련 서운함 언짢음 분노 미움 다 거둬가소서

오로지 좋은 마음과 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축복을 하게 하소서’

마음에 같은 기도만이 맴돌았다.

그 기도가 동서를 위한 기도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기도인지, 깊숙한 곳에서 묘한 감정으로 도사린 마음이 끝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내 마음의 다짐 다짐을 했다.


‘이 시간을 기점으로 이제 시작이다

더욱 곧고 올바르게 더욱 흔들림 없이...’


비가 내렸다. 10일 동서의 유골함을 안치시키고 나오는 길에 하늘은 계속 흐렸고 비가 왔고 모든 것이 잠잠했다. 2박 3일 동서를 보내는 여정이 아니 병원에서 본 마지막 모습을 간직한 채 시작한 3박 4일에 장례 여정이 점점이 멀어져 갔다. 잘 가겠노라고 동서가 답을 하는 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후 햇살이 가늘게 비쳤다. 장례식 내내 흐리고 비가 내리던 모습을 뒤로하고...


한 사람이 간다.

한 사람이 왔다 간다.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

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그가 모두의 가슴에 시간과 공간을 남기고 간다.

한 집안의 동서로 맺어진 인연을 놓고 간다.

모든 것을 놓고 간다.

설움 번민 온갖 미완의 감정을 승화해 기쁜 좋은 마음으로 남겨진 모든 것에 축복을 하며 간다.


그것을 알기에 보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접는다.

배반 미움 배신 서운함 아쉬움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그 한 사람의 모든 것에 대한 여러 마음을 추스르며 다스린다.

이제 시작이다.

이제 다시 설 시간이다.

모든 것을 다 접고 새로이 마음의 평정으로 설 시간이다.

그저 잘 가라고 평안하라고 잘 지내라고 마지막 인사로 스스로를 다지고 다스리는 모두 다 접고 서려는 새로이 마음 추스름이 처절하다.

끝이다.

이것으로 새 마음으로 새 시작이다.


2020년 5월 11일 

11일

새로이다.

굳건히... 

Unflappable....

Unflappable....

Mindfulness....

Mindfulness....


<나의 시동생삼촌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문상 온 삼형제의 맏이 아주버님과 남편 둘째 그리고 사촌 큰삼촌의 뒷모습>


삼촌삼촌의 셋째 그리고 아주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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