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원인을 알면 치료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피로가 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합검진을 다 해도 원인이 안 나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삭신이 쑤시고 너무 피곤해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병원을 찾아가도 아무 이상이 없으니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잠을 잘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입맛이 없어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기운이 없어 운동은 엄두도 못 냅니다. 밤엔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런 증상을 몇 개월 겪다 보면 대부분 의사에게서 정신과로 가보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정신과에 가면 대체로 우울증, 불안증, 화병과 같은 진단을 받습니다. 그리고 약물 처방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1~2주도 안 돼서 약을 중단합니다. 오랜 기간 만성피로에 시달려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메스꺼움, 가라앉는 느낌 등 우울증약의 가벼운 초기 부작용도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부신 기능의 저하가 피로의 큰 원인입니다.
위장, 간장, 대장, 소장은 알아도 부신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신은 양쪽 신장 위에 모자처럼 붙어 있습니다. 부신은 각각 약 5g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장기지만, 여기서 분비하는 호르몬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고 중요합니다. 부신은 혈당과 혈압 유지 및 에너지 생성에 관여하며 항염증 작용, 면역 기능 유지, 성호르몬 분비 조절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또한 부신은 수많은 스트레스와 외부 자극 속에서도 우리 몸의 자율신경을 잘 유지해주는 자동 조절 장치 역할을 합니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습니다. 교감신경이 발달하면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코르티솔은 우리 몸이 위험에 처하면 위험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신체 상태를 변화시킵니다. 잘 달릴 수 있도록 혈압, 혈당, 맥박이 상승하고 주위를 잘 볼 수 있게 동공이 확대되고 손에 땀이 나게 하면서 무기를 잘 움켜쥘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힘내서 일해야 할 때 집중하게 해줍니다. 코르티솔은 필요할 때 충분한 양이 나오고 휴식을 취할 때는 수도꼭지가 잠기듯 분비를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을 보면 정작 코르티솔이 필요할 때는 잘 나오지 않고 반대로 쉬어야 할 때 코르티솔이 찔끔찔끔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지고 온몸의 염증 반응이 증가해 위염이나 위궤양 같은 소화 장애도 생깁니다.
부신피로를 극복하는 방법
부신피로는 일반적인 피로를 회복하는 방법과 조금 다릅니다. 부신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마치 유리잔을 다루듯이 몸을 조심조심 다루어야 합니다. 부신피로에 영양제를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운동, 올바른 식사와 수면 습관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첫째,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 죽겠는데 운동을 하라고 하면 화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운동을 멈추면 더 피곤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방법입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늘려가며 운동해야 합니다. 어제 운동을 15분 했는데 오늘 더 많이 피곤해졌다면 오늘은 운동 시간을 10분으로 줄여보는 식입니다. 오늘 10분 운동했는데, 다음 날 몸이 괜찮다면 그대로 유지하다가 다음 주에는 15분으로, 그다음 주에는 20분으로 점차 몸 상태를 살펴보며 운동 시간을 늘리세요. 규칙적인 운동이 부신을 단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1차 목표는 30분 걷기입니다. 30분 이상 걷기 등 유산소운동을 하게 되면 피로 개선뿐 아니라 혈관이 깨끗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신피로가 있는 사람은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5~6차례에 걸쳐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좋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부신을 자극해 코르티솔 분비를 늘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 식사는 필수입니다. 하루 중 기상 직전이 코르티솔 분비가 가장 낮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1~2시간 안에 특히 오전 10시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간단한 통곡물 시리얼도 좋고 저지방 우유를 마셔도 좋습니다. 오후 4시도 중요합니다. 이 무렵 코르티솔의 분비가 낮 동안 가장 낮은 농도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간식이 좋습니다. 빵이나 과자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보다 견과류나 저지방 요거트를 추천합니다. 정제된 탄수화물은 일시적으로 혈당을 올려 피로감을 없애지만 한두 시간 후 저혈당을 유발해 어지럼증이 생기고 피로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달지 않은 소량의 간식으로 오후의 피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살짝 짜게 먹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짜게 먹는 것은 건강에 나쁘지만 부신피로가 심한 사람에게는 소금이 도움이 됩니다. 나트륨이 일시적으로 부신에서 코르티솔의 분비를 돕기 때문입니다. 아침 식사는 너무 싱겁지 않게 조금 짭짤하게 먹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칼륨이 많이 든 오렌지 주스와 채소 주스의 경우 나트륨을 체외로 배설시키면서 피로 증상이 일시적으로 악화될 수 있으니 아침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일의 경우 바나나와 멜론에 칼륨이 많습니다. 이들 과일을 아침에 먹으면 나트륨이 빠져나가 몸이 더욱 나른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부신피로가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부신피로가 없는 사람이라면 짜게 먹을 이유가 없고, 아침에 오렌지나 바나나를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셋째, 일정한 시간에 자야 합니다.
부신피로가 있는 사람은 수면 시간이 1~2시간만 차이가 나도 컨디션이 바로 나빠집니다. 가능하면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신체 리듬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륙을 넘나드는 해외여행은 줄이고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될 수 있으면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부신피로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일반 피로와 마찬가지로 비타민 B군을 함유한 종합 비타민제를 제일 먼저 추천합니다. 비타민 B를 비롯해 베타카로틴, 비타민 E, 셀레늄, 마그네슘 등 많은 성분이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과 부신호르몬 합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타민 B1의 함량이 권장량이 아닌 100mg 정도로 충분히 들어 있는 제제가 좋습니다. 종합 비타민제에 들어 있는 비타민 B1의 함량이 낮다면 별도로 비타민 B군을 추가로 섭취해도 좋습니다. 또한 비타민 B5가 100mg 이상 들어 있는 종합 비타민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타민 B5는 부신 기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성분입니다. 비타민 C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일반적인 피로와 달리 부신피로의 경우 용량을 늘려야 합니다. 하루에 4,000~10,000mg을 나눠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부신피로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영양제는 단백질 제제입니다. 파우더 형태로 많이 시판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생성에 중요한 근육량이 줄어들면 피로를 더 많이 느낍니다. 근육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양소는 단백질입니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의 경우 단백질의 구성 요소인 아미노산의 섭취 비율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특히 필수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과 트립토판이 부족하기 쉬운데 이 두 가지 아미노산은 수면 기능,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세로토닌과 같은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에 관여합니다. 이외에도 티로신과 같은 아미노산도 조금씩 보충해주면 좋습니다. 티로신은 부신호르몬의 원료가 되고 스트레스와 기분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제제의 경우 한 가지 아미노산 성분을 고용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피하고 다양한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는 파우더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쓴이 서울대 예방의학박사 여에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