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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May 26. 2021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83

역사적 사명

''나는 세상에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이 되고 싶어...넌 어때?''

그가 물었다
''글쎄 뭐가 되려고  세상에 나온  아니잖아? 뭐가 되려고 뭔가를 해본  없는  같아.''

내가 대답했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곁을 떠났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적이 없는 무언가가  수는 없지 않아?''

불어오는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봐..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삿날이나 추석과 설 같은 명절에는 온 집안이 큰집에 모여 제사를 지냈다

나를 비롯해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의 사촌들이 모두 모였으니 꽤나 시끌벅적했다

아버지 형제 중 막내셨던 작은 아버지는 부산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계셨는데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식 자랑이 심하셨다

그 덕에 사촌동생은 제사 때마다 무언가 자랑할만한 하나의 장기(?)를 준비해와야 했다

하루는 작은 아버지가 ''우리 창원이는 국민교육헌장을 다 외운다''하시며 사촌동생에게 어른들 앞에 나서서 암송을 하도록 했다

덕분에 마당에서 뛰어놀던 올망졸망한 사촌들이 모두 어른들 앞에 소환되어 복면가왕 패널들처럼 숨죽이고 국민교육헌장 암송 쇼를 관람해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사촌 동생이 눈을 지그시 감고 국민교육 헌장 암송을 모두 마치자 어른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똑똑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큰아버지께서는 나에게도 뭔가 할 게 있느냐고 물으셨다


''제가 그런 사명을 띠고 태어났는지는 몰랐네요...저는 그런 사명은 띠기 싫은데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아 어른들은  주섬주섬 방으로 들어가시고 사촌들은 다시 마당에서 히히덕대며 뛰어놀게 되었다


국민교육 헌장을 암송하던 사촌 동생은 모범생이 되었고 지금은 S전자 연구소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사명감으로 열심히 세탁기를 연구하고 있다

나는 운동권이 되어 부모님 속을 썩이다가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사명으로 삼고있는 대기업에 운좋게 취직해그럭저럭 먹고살고 있다


매주 월~ 금요일 그림과 글을 올리고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쉽니다

성실하게 주 5일 근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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