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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May 27. 2021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84

우리가.. 계획이 없지... 술이 없냐?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렇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아라

                                    -"바쳐야 한다" 가사 중에서-

우리 어데 가서 씨언~하게.. 한 꼬푸 더 할까요? 

이제와 생각하니 왜 그렇게까지 퍼마셔야 했는지 모르겠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처음으로 배운 게 술과 담배였다

대학생이 되는 건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고, 어른은 술과 담배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처음 배운 술이라 겁이 없었다 

술에 취해 먼저 쓰러지는 것은 패배였고, 패배는 청춘이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동문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한다고 정문 시계탑 앞에 신입생들을 모았다

잔디밭에는 머리 고기와 두부김치 같은 안주들이 깔렸고 옆에는 치사량의 막걸리가 쌓여 있었다

술자리가 시작되어 막걸리 사발이 한참 돌아다니고 술이 거나해질 때쯤 군기반장 격인 선배가 신입생 환영회의 전통이라며 웃통을 벗고 교가를 부르며 오리걸음으로 시계탑을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른 신입생 동기들은 온순하게 선배들의 말을 따랐으나 나는 하지 않겠다고 꼬장을 부리며 버텼다

"이런 얼차려는 군사문화의 잔재이고, 지성인으로서 그런 강제적인 지시를 따를 생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건방진 후배가 들어왔다며 선배 몇 명이 끌끌 혀를 찼고 나는 얼차려 대신 차라리 벌주를 마시겠다고 우겼다

벌주를 주고받으며 마시는 동안 선배들이 하나 둘 취해 자리를 떴고, 새벽 한시쯤 마지막 선배가 자취방에 가겠다며 일어섰다. 나는 갈 곳이 없었으므로 잔디밭에 쓰러져 잠들었다

새벽에 비가 와서 잔디밭에서 상경대 강의실로 잠자리를 옮겼다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툭툭 건드려서 잠을 깨보니 지도 교수님이셨다

이미 경영학과 1학년 전공필수과목이었던 경영경제수학 2교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담당교수님 수업시간에 만취 상태로 강의실 책상 밑에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삶에서 술과 관련된 실수들과 사건 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낭만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강에서 대학생이 사망한 사건을 보면서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도 큰 사고 없이 여태 지내온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거나하게 취하는 술자리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구야! 우리가 계획이 없지.. 술이 없냐?


매주 월~ 금요일 그림과 글을 올리고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쉽니다

성실하게 주 5일 근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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