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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Jun 03. 2021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89

빨래

맑아지는 건 날씨만이 아니다

맑아진 만큼 기분도 나아진다

이런 날엔 빨래를 한다
눅눅한 마음, 끈적한 기분을 씻어낸다

마음속에서도 보글보글 거품이 차오른다

혼자 자취를 하면 주말에는 밀린 빨래와 청소가 루틴이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면 일주일치의 속옷과 와이셔츠를 세제를 푼 따뜻한 물에 담가 놓는다

그리고 빌려온 비디오를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축구를 본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불려놓았던 빨래 거리를 꺼내 본격적으로 빨래를 시작한다

세탁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내어 조물조물 비비고, 때가 잘 타는 와이셔츠의 목부분과 소매는 부드러운 솔로 문지른다

비눗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헹구고 나면 자취집 옥상에 빨래를 널어 놓는다 

그렇게 빨래가 끝나면 츄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한다 

일주일치 묵은 빨래의 때를 볏겨 냈으니 일주일치 몸에 묵은 때도 벗겨 내야 한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캔디바를 한 개 입에 물고 어슬렁어슬렁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자.. 이제부터 뭘 하지? 그렇게 주말이 시작된다


주말이 끝나는 것은 걷은 빨래를 개켜놓고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일요일 오후부터이다

햇볕에 잘 말려진 일주일치 양말과 속옷을 개어 서랍 속에 넣어놓고 다섯 장의 와이셔츠를 다린다

와이셔츠를 다리다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밥벌이란 얼마나 경건한 일인가... 

얼룩지고 눅눅하고 곰팡이가 피는 삶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평범하고 누추한 삶이라도 깨끗하고 하얗게 빨래를 하고,  바삭바삭하게 말리고,  반짝반짝 다림질하며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빨래를 좋아한다

생각이 많아질 때,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 할 일이 없어 심심해질 때, 문득 외로워질 때  빨래를 한다


매주 월~ 금요일 그림과 글을 올리고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쉽니다

성실하게 주 5일 근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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