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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뜬 Apr 11. 2020

4월 11일

너는 내운명

창원씨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렵게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후 그는 대형마트 한 코너에서 일을 하다가 운명 같은 그녀를 만납니다.


영란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선생님을 준비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창원씨는 그녀와 멀어지려 합니다.

영란씨의 부모님도 반대를 했었지만 그녀는 끝끝내 그와 혼인신고를 합니다.

그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죽음을 직감하며 이런 편지를 남깁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볼품없이 사라졌을 꽅동이가 당신으로 인해 꽃이 피고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고.’     


10년도 더 된 다큐멘터리입니다. 저는 이 때 이 이야기를 보고 참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괴로운 일임을 직감했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아플 일이 없었을 것을요. 야트막한 어느 언덕에 심어진 나무나 꽃으로 태어났다면 그냥 세월 따라 흘러갔으면 될 일을요.

하필이면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또 잃어가야 할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만만치 않은 생임을 직감했었죠. 

어쩌면 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 쓰레기장 같은 곳에 스스로를 버려둔 까닭은 아마도 그런 일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앞에 등장한 이후로는 이 삶도 바뀌어갑니다.

햇살을 보는 일이 많아지고 웃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제가 눈과 입으로만 살고 있었다면 당신은 코와 귀가 되어준 셈이겠죠.     


문뜩 어느 날은 단순한 삶에 너무 많은 정도들이 쏟아져 복잡한 것 같지만

각도를 달리해 보면 두서없이 앞마당 가득 핀 꽃 같은 것이 

당신과 함께 있는 나의 모습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고

당신이 나를 돌아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만큼 모든 것들이 아플 각오를 해야 되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 무수히 많은 것들을 피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 없이는 그저 쌀쌀한 어느 벌판과 같을 뿐이죠.


그러니 가득 핀 세상을 살아본 사람은 결코 척박한 그 땅을 견딜 수 없을 테죠.     

나는 오늘도 그대가 평온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고민도, 화나는 일들도, 마음을 지치게 하는 혼돈도 

그저 낙엽처럼 쓸려갈 것이라 말합니다.


결국 창원이 그랬던 것처럼 영란이 그랬던 것처럼

한가득 피어날 것들만 보면 될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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