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인간병기는 꾸준한 사람

딸과 함께 텝스시험 응시한 사연

by 메신저클레어


꾸준하다가도 가끔 일탈을 꿈꾸는 중학생 우리 딸 T에게.



여름에 운 좋게 유명 대치동 영어 학원 심화과정에 붙었으나, 2~3주 하더니 커리큘럼이 너무 어려워 넌 아연실색하고 포기해버렸어.

토익이니 텝스니 이런 국가 공인 영어 시험 이름도 모르는 아이에게 텝스 어휘와 독해 청해를 숙제로 내줬으니 그동안 공부해왔던 영어 수준이 아니어서 어리둥절했을 거야.

그 뒤로 중간고사 내신을 핑계로 영어학원을 두 달간 안 가다가 다시 괴로운 그 수업에 참여하려니 또 마음이 어려운 거 다 알아.


엄마는 너에게 적어도 TEPS(텝스)가 어떻게 생긴 시험인지 실전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어.

그러나 혼자 시험을 보는 데 부담을 느낀 너의 조건은, 엄마와 같이 보면 본다?

그래서 함께 신청을 했지만, 바로 내신 준비 학원 수업이 겹쳐 토요일 시간을 못 내게 되어 너는 취소하고 의도와 다르게 엄마 혼자 텝스를 보았더랬지.

내가 영어를 못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한 달 후 내신을 마친 그 주 토요일에 엄마랑 같이 텝스 시험을 보러 가는길에 너에게 받은 그 짜증들...

물론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시험을 보는 그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어쩌겠니, 그런 토요일만 학원 수업이 없으니 응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잖니.


그러나 시험을 마치고는 청해 시간에 서로 졸았다고 웃었고,

어휘와 문법 시간엔 신나게 찍어도 시간이 부족했다고 서로 공감했으며,

독해 시간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지문을 여러 번 읽어도 몰랐다는 극 공감으로 시험 당일 리뷰를 즐겁게 마쳤더랬지.

그리고 지난주에 성적 확인 후 서로 얘기 나눈 것 기억나니?


"엄마, 각 영역별로 몇 점이에요?"

사실 나는 네 비교 대상이 아니지.

초1 때부터 8년을 쉬지 않고 영어를 공부한 대치동 상위반 딸내미와 대학원 다닐 때 원서 깔짝댔던 이후로 영어를 놓아버린 나는 출발선이 달랐으니까.

그래도 우리 딸이 하찮은 엄마의 성적과 비교하여 자신감이 충만해진다면야!

서로 영역별로 성적을 비교해보았고 갑자기 너의 휘둥그레진 눈을 발견했단다.


"엄마! 어휘가 왜 나보다 훨씬 높아요?! 난 60점 중에 29점인데 엄마는 40점?!"

"다른 영역은 너보다 훨씬 못하잖니. 유독 voca(어휘)만 너보다 낫네. 그런데 비결이 뭔지 아니?"

사실 텝스 어휘 점수 60점 만점 중 40점이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란다.

하지만 넌 한 영역이라도 엄마가 더 높은 것이 신기했나 봐.

그래서 '역시 난 안돼'라는 말을 내뱉기 전에 '비결'이란 흥미로운 단어로 입을 막아버렸지.

"엄마는 오직 어휘 영역만 매일 한 달 동안 꾸준히 해서 점수 비교하는 실험을 한 거야!"

"엥?!"




다시 한 달 전.

아이가 취소한 시험에 나도 취소하면 돈이 아까울 것 같아 유형이나 보자며 졸린 눈을 비비며 응시한 시험.

역시 점수는 처절했으나 빠른 시일 내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과목이 아님을 잘 알기에 '역시 난 영어는 바닥이야.'라는 좌절감에 거들떠도 안 봤다.


그런데 요새 꾸준함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주변에서 자주 발견한다.

꾸준하게 부동산 공부를 하여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 꾸준하게 다이어트를 하여 요요 없이 건강하고 예쁘게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어르신, 꾸준하게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면서 그 분야에 대가가 된 사람들...

갑자기 그 꾸준함의 힘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으로 이끄는 확신이 되니까.


텝스 보카 책을 한 권 사서 매일 한 챕터씩 풀어보았다.

하루에 40~50 단어씩 공부하게 되어 있었고 총 30일 치였다.

하는 내내 정말 졸렸다.

10년? 20년 만에 하는 공부라 정말 수면제가 필요 없었다.

책만 펴면 하품이 났으니까.

그래도 난 꾸준함 증명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중이니 매일 한 달만 해보자고 스스로를 어르고 달랬다.

책상에 앉으면 졸려하는 우리 애들에게 앞으로는 친절하게 대하리라.


놀랍게도 60점 만점에 25점이던 어휘 점수가 한 달만에 40점으로 올랐다.

비록 혼자 본 시험, 함께 본 시험 모두 아이보다 총점수는 훨씬 낮았지만 뭔가 뿌듯함이 남았다.

아이도 총점수보다는 이 기이한 현상에 더 관심을 갖는 표정이었다.



"엄마도 한 달 만에 점수가 이렇게 오르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려운 단어들이 태반이었거든.

그런데 한 단원 한 단원 매일 꾸준하게 하니까 그 기대가 현실이 되고 말았네.

한 달이 짧으면 짧고 길면 길겠지만 엄마처럼 머리가 굳어도 한 달 만에 이런 성과가 가능한데,

너처럼 매일같이 열심히 숙제하고 수업하면 어느 순간 어려움이 줄어들고 적응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잘하든 못하든 그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어떤 상태든 그때부터 꾸준하게 하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결국 네 모습이 돼.

지속적으로 하는 힘이 그 무엇을 하든 가장 무서운 비밀병기가 될 수 있어.

중간에 잠시 못하더라도 포기만 하지 말자.

다시 돌아오는 힘도 매우 중요하단다.


오늘도 영어 수업이 너무 어려워 많이 힘들었지?

매일 포기하고 싶어서 나한테 물어보는 너.

그런데 그냥 포기하라고 해도 또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나 봐.

인간의 심리가 그런가봐.


만약 포기하기 싫은 어려운 고비가 있다면, 그날부터 꾸준함이란 무기를 한번 사용해봐.

먼저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주일 동안 해보고 이주일 또 해보고 그걸 견뎠으면 한 달 동안 해보는 거야.

특히 하루 이틀 노력하여 대가를 빨리 받기 원하는 마음부터 확 버려버리자.

마음을 내려놓고 한 달을 끈기있게 했다면 그래도 한 달을 버텼다는 자그마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걸 또 바탕으로 또 다른 한 달도 지속해보자.

어느 순간 너는 꾸준함으로 무장한 인간병기가 되어 그 어떤 어려운 것도 마음만 먹으면 해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사실 지금까지 달려온 네 모습이 지속성의 증거이고 스스로 깨달았던 점도 많을 거라 생각해.

오늘 엄마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거니 특별히 어렵거나 새로운 것도 아니거든.

너도 몰랐던 꾸준함의 능력을 다시 발휘해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보자.

그걸 버틴 네 모습에 나는 물론, 네가 가장 큰 기쁨과 놀라움을 느낄 거라 생각해.


엄마도 또다시 매일 너와 같이 해볼게.

우리 한번 꾸준한 모녀가 되어보자.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응원할게."


- 그때 포기 안 하고 계속하길 잘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으로 미소 지을 너를 떠올리며, 엄마가 -


함께 텝스 응시 후 제일 좋아하는 베이글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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