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18
<사실은 지지리도 관종이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에 이어...
그렇게 할머니는 병원으로 실려가셨고, 그 뒤로 반신불수가 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최고 혈압이 240을 찍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해?!)
할머니의 경우 쇠 가위로 관자놀이 부위를 내리쳐서 피가 돌아 기적처럼 살 수 있었단다.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셀프 응급처치를 훌륭하게 하셨다며 혀를 내둘렀다.
눈앞에 펼쳐진 호러 영화와 같은 장면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가끔 나를 괴롭히지만, 덕분에 사셨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엄마는 오후 5시 전까지는 할머니 간호를 할 수 없었다.
다행히 1인 유통사업을 하셨던 아빠가 틈나면 집에 오셔서 할머니를 케어하셨다.
그러나 아빠도 일이 있으시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요즘이야 장기노인요양보험이라든지 노인케어에 대한 여러 기관들이 생겨 간병인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소위 '잘 사는 집'이 아니면 언감생심 간병인을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넉넉지 못했던 우리는 할머니 간병에 대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엄마 퇴근 시간인 5시가 더 간절해졌다.
이 사건 전에는 엄마가 그리워서였다.
이 사건 후에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서였다.
매일 나가서 줄넘기나 발야구에 심취했던 나는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베란다 밖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를 간병해야 했다.
참, 간병의 수위를 물으시나요?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시니어용 기저귀를 착용하셨다.
소변까진 어떻게 하겠는데 대변은...
그래서 엄마가 필요했다.
우리 할머니는 60kg이 넘는 (할머니 사이에서는) 거구셨다.
그래서 할머니 기저귀 가는 게 열 살 꼬마에게는 큰 프로젝트였다.
정말 머리를 잘 써야 했기 때문이다.
힘 조절, 공간 지각력, 지렛대 원리, 시간차 공격, 그리고 할머니의 감정 관리까지...
사건 직후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밖에서 불러대고 나는 계속 집에서 코를 막고 할머니를 간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몇 달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더라.
엄마한테 응석 부리려고 뜨거운 창틀에 이마를 대며 열난다고 칭얼거리던 그 아이는 어느새 버거운 일상 속에서 점차 초췌해졌다.
문득 불안해졌다.
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기약도 없는데?!
'나 이제 열 살인데, 내 인생 왜 이런 거야?!'
갑자기 할머니가 미워졌다.
그리고 날 이렇게 내버려 두는 엄마도 아빠도 야속했다.
한 살 차이면서 남자애라고 이런 일 안 하는 동생도 얄미웠다.
그냥 다 싫어졌다.
왜 난데?
울고불고 따지고 싶었지만, 혹여나 할머니가 보시고 상처 받으실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꼬마가 안쓰럽다.
그 아이를 만나 토닥이며 얘기해주고 싶다.
'그 와중에도 할머니 마음까지 생각했구나... 기특하네...
할머니도 아실거야...'
나의 비뚤어지는 마음을 훤히 아는 듯 창문 너머 달님도 날 외면하는 것 같았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