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지지리도 관종이었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1부. 할머니와 나>


엄마도 학교 가시고 아빠도 회사 가시고...

학교 갔다가 오는 게 제일 싫었다.

집에 엄마가 항상 안 계셨으니까.


맞벌이 엄마 아빠는 할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일에 몰두하실 수 있었다.

그렇다.

나와 내 남동생은 할머니 손잡고 유치원에, 학교에 다녔다.

물론 할머니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엄마 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늘 크게 느꼈나 보다.

엄마 없는 집이 싫어 언제나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다.

5시가 가까워지면 그제야 집에 돌아갔다.


엄마는 주말에도 공부를 하셨다.

초등학교에서 정년 전까지 영어를 가르치셨는데 대학원도 병행하셨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공부를 정말 좋아하셨던 것 같다.

아니면 우리가 말썽을 부렸나?!


방학 때만큼은 함께여서 정말 좋았다.

개학을 해도 엄마가 낮에 집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결국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Greyerbaby@pixabay


낡은 13평 아파트였으나, 정남향이라 창가에 햇빛이 들어오면 오래된 나무 창틀이 뜨끈뜨끈해진다.

뜨거워진 창틀 바닥에 이마를 댔다.

계속 대고 있으면 내 이마도 뜨거워지겠지.

그리고 열난다고 엄마 학교에 전화하면 엄마가 달려오겠지.

그렇게라도 낮 시간에 엄마를 보고 싶었던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가 계셨던 학교라 '네가 000 선생님 딸이니?'라고 백 번은 들은 것 같다.

그런 말을 듣고 공부 못하면 괜히 안 될 것 같아 늘 올백을 맞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심부름 역시 눈치껏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벌써 그 나이에 완장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완장 하나 차고 선생님 딸로, 반장으로...


이제야 알겠다.

난 엄마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고, 그리운 엄마에게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했구나.

그게 완장에 대한 욕심인 줄 알았으나, 숨은 마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엄마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나 보다.

나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점차 인정의 욕구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엄마에게만큼은 지지리도 관심 종자였을까.

늘 엄마와 낮에 손잡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혹은 '한 살 어린', '남동생' 때문이었을지도...

류시화 시인의 그 유명한 시 한 소절이 내 어린 시절이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어떻게 하면 엄마 관심을 얻을까 따끈한 창틀에 이마를 대고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할머니가 방문을 벌컥 열고 급하게 들어오셨다.

바늘로 손가락 발가락을 다 찔러달라고 하신다.

어린 나는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그저 할머니가 무서운 장난을 하시는 줄 알았다.


"할머니, 안 재밌어.. 왜 그래?!"

"빨리 바늘로 따줘! 어지러워..! 아니다, 가서 재단 가위 가져와!"


아직도 기억난다.

내 팔뚝만 했던 무거운 쇠 가위를 벌려 가위 날 방향으로 이마를 찧으신다.

살이 파이는 족족 붉은 피가 맺힌다.

호러 영화도 이보다 무서울 수 없다.

바로 눈앞에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나이 10살,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