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3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19
<겨우 열 살 내 인생 왜 이래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에 이어...
올해 처음 내 나이 두 자리 수가 되었다.
10살이라니... 벌써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많은 상상을 했던 나였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친구들과 서로 집을 오가며 우정을 쌓고 싶었다.
실제로 공주 방처럼 꾸민 친구 집을 내 집처럼 들락날락거렸다.
핑크 시트가 고운 공주 침대와 예쁜 책상이 나란히 있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나도 언젠간 나만의 방이 생기겠지 기대하며 머릿속으로는 이미 인테리어를 끝냈다.
그래서 열 살이란 나이가 더 설렜나 보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할머니와 남동생과 내가 함께 쓰던 작은 방에 침대가 아닌 요강이 들어왔다.
나만의 방을 예쁘게 꾸며놓고 친구를 초대하려는 계획은 무산이 되었고 나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짤막한 토막 기억 저 편, 할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할머니께 모진 말도 꺼냈던 것 같다.
이내 후회되고 뉘우치기도 했지만 어린 마음에 억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 막 십 대로 들어선 나에게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날이 갈수록 더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나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것 같은 이 모든 정황이 내 심통만 키워가던 어느 날...
엄마가 무슨 생각이신지 내 동생과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아직도 기억난다.
13평 5층짜리 아파트에서 제일 따끈한 곳은 안방 아랫목이다.
연탄을 땠던 그 시절, 장판이 지글지글 노글노글해질 정도로 뜨겁고도 좋았다.
코끝의 서늘한 방 기운도 아랫목에 엉덩이를 지지고 있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그 아랫목에 열 살 나와 아홉 살 남동생이 나란히 앉았다.
요즘 할머니를 미워하는 내 모습이 포착되었나?
내심 눈치 보면서 그간 내 행동을 파노라마처럼 되짚어보았다.
뭐, 혼내시려면 혼내세요.
이미 난 비뚤어질 거야 모드인걸. 쳇...
그러나 뜻밖에 말씀이었다.
나와 내 동생은 이내 목놓아 꺽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얘들아, 요즘 힘들지?
엄마는 할머니께 더 잘해드리고 싶은데 너희들이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
할머니는 그동안 남편도 없이 아빠와 삼촌을 키우셨잖니.
혼자 어린 삼 남매를 데리고 625 전쟁 때 뗏목을 타고 목숨 걸고 남쪽으로 오셨거든.
참, 너희 아빠한테 누나가 있었는데 너희 고모는 피난 중에 7살 때인가? 먼저 돌아가셨대..
딸을 먼저 보낸 할머니가 60 평생 힘들게 사셨는데 이제 몸까지 불편해지셔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에게 고모가 있었다고?
나만한 딸을 잃었다고?!
할아버지 없이 할머니 혼자 그 많은 일을 겪으셨다니..
그래도 나와 내 동생을 키워주신 분인데 그런 아픔이 있으셨다니..
목이 메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동안 고마움을 잊은 채 너무 미워만 해서였을까.
죄송함이 곱절로 덮쳐오자 횡격막에 경련이 왔나 싶을 만큼 울었다.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회초리로 때리고 옷장에 가둬둔 무서운 할머니였다.
십 대의 포문을 멋지게 여는 순간을 방해한 미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저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양육한 보육자였다.
바로 그 시각, 난 할머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할머니의 일대기를 간접 체험하면서 할머니의 마음을 처음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엄마가 마침 할머니의 앳된 소녀 때 사진까지 보여주셨다.
할머니도 이렇게 고왔던 소녀였구나.
일본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빨리 결혼하신 할머니.
할머니가 남편 없이 전쟁통에 아이 셋을 데리고 통통배를 탔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어린 딸을 먼저 보낸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친한 친구 없이 아들 집에서 손주들만 키우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데 저승사자처럼 온 중풍에, 차가워진 손... 녀...?!
난생처음 할머니가 한 사람의 여자로 보였다.
나와 같은 꿈 많은 소녀였을 것이다.
그 꿈과 멀어진 지금의 모습에 한없이 슬퍼하실 것이다.
가족이라면서 그 마음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난 무슨 짓을 했는가.
이 마음의 죗값을 어찌 치를꼬!
겨우 열 살이었으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나이였다.
방은 두 개뿐이었고, 난 안방에서 할머니가 계신 내 방으로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밖으로 무작정 나왔다.
할머니의 60 평생에 도움이 되지 않은 나였다.
그중 10년은 나를 키워주시는 데 쓰셨다.
문득 할머니의 남은 인생에 내가 기쁨이 되어드리고 싶어졌다.
여자 대 여자로서 내가 친구도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동안의 외로움을 싸악 잊으시게끔...
할머니, 지금까지 나 키워주셔서 고마워...
이젠 내가 할머니 키워줄게!
그날 이후 나는 여전사가 되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