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이제 내가 키운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4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20

<할머니도 여자였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3>에 이어...


그날 이후로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할머니의 깊은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겠지만, 자식 잃고 인생 후반기에 건강까지 잃은 할머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나의 철없는 불만을 월등히 앞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느낀 박탈감(공주 같은 소녀 생활과의 이별)이 과연 '철이 없는 불만'이었을까.

사춘기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곧 칭얼댈 내 입을 세상이 막아버린 건 아닐까.

뭐랄까... 신입생이 부푼 마음으로 이제 막 대학 캠퍼스를 밟았는데 뭘 할까 고민도 하기 전에 갑자기 결혼하고 애를 낳은 기분이 이럴까?


어떤 표현도 이보다 더 기막힐 수 없겠지만, 잃어버린 십 대 소녀의 꿈에 대해 논할 틈도 없이 오직 할머니만 바라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배부른 사치로 인식하는 연습부터 했다.

못 먹는 감은 분명 떫을 거라 지레 포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의 욕심을 누르자 할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 너무 불쌍한 우리 할머니...


기저귀를 갈 때 무겁지 않냐고 하신다.

전혀 안 무겁다고 대답한다.

그때 난 40kg도 안되었고 할머니는 60kg이 넘었는데도 깃털 같다고 한다.

할머니는 최불암 할아버지처럼 웃는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다.


기저귀 변을 치우는 내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를 막고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참 간사하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이것도 가능해지더라.

요즘에는 비닐장갑이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게 어디 있나.

내 피부가 장갑이거니 생각하고 변을 닦았다.

묻으면 물로 씻어내면 되니까.


할머니 앞에서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하나도 힘이 안 드는 척했다.

나의 서툰 손길보다 나의 굳은 표정이 할머니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할머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일부러 유쾌하게 웃었다.

귀에 대고 농담도 했다.

할머니도 같이 키득거렸다.


나의 노력이 할머니 재활에도 도움이 되었다.

꾸준히 침을 맞으셨고 스스로 움직이고자 엄청나게 노력하셨다.

초기에는 요강에 앉으실 때 요강까지 엎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금씩 좋아지시면서 요강에 소변을 보는 데 성공하셨다.

이 역시 손녀딸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으리라.


어느 순간 기저귀를 떼셨고 요강 이용률이 높아졌다.

내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변기를 이용하게 되는 마음과 같을까.

그때는 그저 할머니가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 기뻤다.

거봐, 내가 할머니 키워준댔잖아...

흐뭇했다.


사실 요강을 비우고 헹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소변만 보시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만 조절이 안 되어 변까지 보실 때는 헹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외로움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아니면 할머니에게 했던 못된 언행을 만회하려는 나만의 방식이었는지도.






한 살 차이 남동생과 방을 분리하기 위해 큰 빚을 지고 방 세 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 방, 동생 방, 그리고... 나와 할머니방.

역시 공주방은 요원했으나 운명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래도 이사를 한 덕분에 내 책상이 생겼다.

드디어 밥상 펴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나이 12살, 5학년이었다.


할머니 케어는 계속되었고, 나는 고학년이 되어 조금 더 능숙해졌다.

나의 사춘기는 오다가 막혀버렸지만 내 동생에게는 사춘기님이 오셨다.

4학년 남학생의 사춘기는 참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결국 일을 냈다.


늘 그렇듯 할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이 집에 있었다.

뭐 때문인지 단단히 화가 난 동생과 할머니와 언쟁이 붙었다.

그러다 급기야 호르몬에 의한 충동으로 홧김에 할머니를 밀었다.

살짝 밀었으나 몸을 제대로 못 가누시는 할머니는 그 힘을 이기지 못했다.

점점 뒤로 어... 어.... 뒷걸음질 치다가 관절을 굽힐 여유(아니, 여유가 있었더라도 못 굽히셨을 것이다)도 없이 1자로 뒤로 넘어지셨다.


아마 가벼운 뇌진탕이 왔을 것이다.

할머니는 서럽게 우셨다.

지금 생각하면 손자의 행동보다는 야속한 몸 상태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동생도 울었다.

살짝 힘주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세상 패륜을 한 것 같아 놀랐을 것이다.

나도 울었다.

내가 몸을 던져서 할머니가 뒤로 넘어가는 걸 막았어야 했는데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다.


늘 꿈이길 바랬으나 이런 현실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건진 게 있다.

사춘기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으나 그 뒤로 할머니의 상태를 확실히 파악한 남동생은 할머니를 극진히 생각하며 둘도 없는 효손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고 있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5>에 계속...


SarahRichterArt@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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