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상고머리의 핵인싸 여고생(1)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6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22

<의도하지 않은 공감력 그리고 피아노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5>에 이어...



무난하다면 무난했고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중학 생활이 끝나고 여고생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을 살 맞대고 한 방에서 지낸 할머니와 그만 찐 룸메이트가 되고 말았다.


할머니는 벽을 짚으며 조금씩 걷기 시작하셨다.

바늘귀에 실을 꿰어달라고도 하셨다.

앉아서 바느질을 하실 정도로 좋아지셨다.


내가 가끔 컨디션이 안 좋아 누워 있으면 할머니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벽 짚기 신공으로 주방까지 뒤뚱뒤뚱 한참 가셔서 꿀물을 타 주시기도 했다.

할머니 정성까지 곁들인 꿀물을 마시면 진한 감동으로 감기가 싹 낫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콜라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는 벼락치기 내신의 성공 비결이자 일등공신이었다.

시험 당일 정확한 새벽 시간에 깨워주셨고, 나는 보답하듯 스펀지처럼 그 새벽에 교과서를 달달 외워 시험을 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벼락치기가 고등학생이 되어 그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정교화되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이 모두 칸트처럼 깨워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사실 엄마가 퇴근하시면 학원에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부도 버릇이라고, 벼락치기에 이미 굳어진 나는 선행도 계획적인 공부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는 여러 학원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중3? 고1 때였나?

반에서 상위권이란 이유로 엄마 주위 선생님들이 강력 추천한 장*학원이라는 유명한 선행 학원에 엄마는 덜컥 나를 등록시켰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내가 왜 여기 앉아서 난생처음 보는 수학식을 쓰는 선생님의 노랫가락을 듣고 있어야 하지?

아마 미적분 선행 수업이었나 보다.

선행이 되어 있는 아이들은 잘 이해하며 실력을 쌓았을 테지만 나는 화가 났다.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데 까막눈한테...


엄마께는 죄송하지만 비싼 수업료를 낸 그 한 달간 딱 두 번 출석했다.

몇 년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끝까지 내가 한 달 내내 결석했는지 모르셨다.

옛날에는 다행히(?) 등 하원 관리가 허술했나 보다.

그리고 또 그런 선행 학원에 다니라고 할까 봐 겁이 나서 자기 주도 학습에 박차를 가했다.


내 공부 방법은 간단했다.

가성비였다.

가장 짧은 시간에 초집중을 하여 그날 분량을 마치고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사용하기.

할머니 케어시간을 제외하고 달콤한 여유 시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공부나 숙제를 빨리 끝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고1이 되어서도 밝음과 공감력은 나를 학급 반장으로 세웠고, 여전히 친구들과의 그물 같은 관계망 속에서 많은 시간을 교우관계로 할애하게 되었다.

학원도 안 다니는데 나만의 시간이 점차 줄자 성적이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아, 자칫 또 저세상 언어를 사용하는 수학학원에 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마침 2학년으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먼저 마음을 다 잡고자 어깨 좀 못미치게 찰랑거렸던 머리를 쇼트커트로 싹둑 잘랐다.

얼핏 보면 남학생보다 더 짧을 수도 있었다.


마침 자유투 개수 세는 체육과목 평가가 있었는데, 은근히 나와 맞는 운동 같아서 농구에 구미가 당겼다.

점심 식사 후에 소화시킬 겸 체육관에 홀로 가서 레이업슛을 하며 맛난 휴식을 몰래 즐겼다.

그렇게 친구들과 약간의 거리두기를 통해 내 학업과 일상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 후배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아악!!! 언니!!! 너무 멋져요!!!"

"언니~!! 신승훈 같아요!~~"

"언니, 저 언니 팬클럽이에요~! 우리 반 모두가 언니 팬인 거 아시죠?!"


난 여자고, 분명 날 언니라고 부른 것 같은데... 신승훈? 팬클럽?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고2가 되어 반 아이들은 물론 1학년 후배들까지 나를 특별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단 나는 짧아진 머리 때문인지(?) 또 반장이 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문밖에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꼬깃꼬깃 정성스레 접은 예쁜 편지지에 음료수 혹은 달달한 간식들...


내가 자리에 없는 날은 내 자리에 갖다 두어 누가 준 선물인지도 몰랐다.

농구를 할 때에 하나둘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저만치 앉아서 지켜보기도 했다.

옴마야...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농구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갈 때쯤 어김없이 놓여있는 시원한 음료수들 그리고 편지지들.


KeithJJ@pixabay


그리고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친한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어둡더니 급기야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꼬치꼬치 캐물으니 나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을 따로 불러내어 나랑 떨어져 다니라는 협박을 받았더랬다.

그래서 하교할 때 친구와 함께 007처럼 숨어 교문을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이런 진귀한(?) 경험은 고2 내내 계속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1학년 후배였는데 내 팬클럽이라고 했다. (당시 1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쏟아지는 편지들과 간식들을 다 확인할 수 없었다.

고맙지만 간식은 주변 친구들과 나눴고, 편지들을 읽어보긴 했으나 답장까지는 못했다.


어느 날 1학년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날 불러냈다.

그런데 사뭇 느낌이 달랐다.

뭔가 따지러 온 것 같았다.


"언니! 00가 보낸 편지에 왜 한 번도 답장을 안 해요?!"

"우리 00가 이렇게 반응을 보인 게 처음이란 말이에요, 다음부터 또 답장 안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혀... 협박?!


그 아이는 경증의 자폐라고 했다.

처음으로 무언가에 애정과 관심을 보이자 반 친구들은 놀랐고, 그 대상이 무반응이니 이 아이가 슬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내 생활 챙기기 프로젝트는 대실패였다.

상담 때문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과분한 인기(?) 때문에...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내 욕심을 위해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이 아이는 아프다잖아...


세상 다정하게 이 아이에게 물었다.

"00야, 언니가 머리카락을 기르면 어떨까?"

혹시 날 남자로 생각하고 그런 게 아닐까 떠보았다.

"언니는 머리를 기르던 자르던 늘 예쁠 거 같아요..."

이 아이, 헤어스타일 때문이 아니네!


그날 그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질적으로 따뜻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이후로 역시 답장 같은 건 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슬퍼하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어줄 수 있구나...

그 사건 이후 여러 관계들을 억지로 피하려고 했던 나의 행동을 멈추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요즘 말로 핵인싸가 된 기분이 이럴까?

많은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편지를 보내며 얘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왜 여학생이 여학생에게...?


타인에게 공감받을 일이 적은 시기라 그런가?

연애는 하고 싶은데 남학생 비스무리하니 그 마음을 투영해서 그런가?

아니면... 외로움의 또 다른 표출 방식인가?

그냥 뭔가에 푸욱 빠지면서 그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잊고 싶은 심리?

혹은 스트레스 해소? 너도 나도 하니까 군중심리?!


마침 하이틴 소설책이 반에서 돌고 있었다.

그러나 가벼운 연애담보다는 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지 친구들이나 후배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들의 그런 감정을 대변할만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미 고2 때 걸음마 작가였던 것 같다.

그 바쁜 시기에 나는 만화 삽화도 직접 그려 넣어 설레는 하이틴 소설을 썼고 많은 친구들이 돌려보았다.

급기야 국어 선생님도 읽으셨고 길게 평도 써주셨다.


고2를 되돌아보면 참 많은 친구들과 함께 했고, 운동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주어진 바깥 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매시간 최선을 다했다.


단 한 가지, 정말 친하다고 생각되는 친구에게는 가끔 나지막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했다.

"00야, 혹시.. 나한테 무슨 냄새 같은 거 안나?"

"아니?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방 안에 가습기처럼 자리 잡은 요강 냄새가 혹시 옷에도 밴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난 그런 걸 걱정하는 팬클럽 100명의 핵인싸 여고생이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7>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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