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도 답이 아니었어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4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0

<뉴욕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우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3>에 이어...


꿈만 같던 뉴욕에서의 석 달을 뒤로하고 귀국했다.

친구가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여러 번 말할 때마다 정말 고민되었다.

친구도 다시 찾아올 외로움이 두려웠나 보다.

그러나 훌쩍 떠나온 할머니와 아빠가 눈에 밟혔다.


하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바뀌지 않는 아빠의 통금 시간제한 때문이었다.

이제 나를 위해 참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복학하자마자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친구들은 2월에 졸업했지만 난 3월부터 남은 한 학기를 후배들과 지내야 했다.

무심코 과사무실 게시판을 보는데, 리쿠르팅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모 대기업에서 1명을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아예 입사를 하면 통금 제한이 없어질까?!


어차피 친한 친구들도 졸업했겠다, 놀다가 공부할라니 마음도 붕 뜬 상태였다.

이래저래 입사지원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IMF 이후 회사에 쉽게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싶었다.


과 선후배들 몇 명이 함께 지원했다.

어제의 친구들이 오늘의 경쟁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최종 면접까지 2명이 올라왔다.

운 좋게 2인에 속했고, 다른 1인은 공교롭게 학부 친구였다.


우리 중 1명을 뽑을 팀장은 우리 둘 다 회식 자리에 데리고 갔다.

마지막 면접은 실제 상황에서의 대응 방식을 보려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술자리가 많은 팀이다.

그래서 술을 잘 마시나, 취하면 어찌 되는지 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승패는 이미 갈렸다.

그 학부 친구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등학생 때부터 노래방을 밥 먹듯 오갔던 나다.

사실 친구는 대졸이었고, 나는 휴학 때문에 대졸 "예정"으로 조건이 더 불리했다.

그럼에도 최종 합격된 것이다.


어머, 고3 담임선생님의 선견지명으로 바늘구멍 취업문이 열렸다...

"공부만 잘하면 뭐해! 잘 놀아야 하는 거다."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비록 졸업 날까지 인턴으로 일하는 조건이었지만, 채용 시장에서 승리한 기쁨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회사 생활은 내 생각과 전혀 딴 판이었다.






계열사가 몇십 개인 대기업이었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이었다.

입사하고 인사하러 다니는데 다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 잘 왔어요. 근데 여기.. 4년제 대학 나온 여사원들은 3개월을 못 버티던데.."

"네? 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한 번 잘 다녀봐요.. (속마음 : 넌 얼마나 버티나 보자..)"


전문용어로 '실실 쪼개는' 뚱뚱한 과장의 첫인사가 그러했다.

초면에 너무 무례해서 욱했지만 분위기 파악을 위해 일단 안면근육을 웃음 모드로 고정시켰다.

실제로 여직원은 많았으나 대졸 여사원은 소수, 관리자는 거의 없었다.

아, 딱 한 분 봤다.


저 멀리 장군 같은 분이 다가왔다.

이 회사 최초 여성 부장님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셨으면 부장 직급까지 잘 버티셨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더 설렘으로 첫인사의 순간을 기대했다.

악수를 청하셨고... 짧은 상고머리에 양복, 그리고... 넥타이?!

표정관리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2000년 초 밀레니엄의 포문을 여는 이 시기, 놀토도 없던 때였다.

월화수목금금금.

정말 이렇게 일했다.

그리고 모든 회사가 다 이런 줄 알았다.


경리 업무를 보는 여직원들의 나이가 다양했다.

그리고 일제히 나를 고까운 시선으로 대했다.

그렇게 차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겪은 일들에 비하면 이런 걸로 상심할 내가 아니지!

그런 여직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언니라는 호칭으로 대했다.

그리고 상사들에게 혼났다.

엄연히 계급이 다른데 나보다 낮은 계급에게 언니가 뭐냐고 한다.

그래도 내가 살아야겠기에, 이 언니들에게도 진심을 다했다.


고까운 눈초리는 호기심으로, 그리고 세상 천사의 눈빛으로 돌변했다.

너무나 좋은 언니들이 많았다.

특히 재무회계를 전혀 모른 채 입사한 나에게 상세히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나중엔 끈끈한 관계에 상사들도 포기하더라.


내가 있었던 부서는 당시 유행처럼 시작된 벤처사업팀이었다.

대기업은 업무의 한 부분만 제대로 가르쳐줄 뿐 전체를 모를 수 있다고 대부분 말을 한다.

그런 편견을 확실하게 깨는 부서였다.

이 사업부는 3~4명을 한 팀으로 묶어 팀마다 신사업 꼭지를 던져주고 무섭게도 대표님 직속으로 붙여놨다.

(지금도 TV나 뉴스에 나오시는 대표님과 단 둘이 식사를 하며 상황 보고 드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원래 플라스틱 병을 만드는 화학 회사이고, 따로 큰 연구소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노하우를 토대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시장에 론칭하는 게 팀의 미션이었다.

환경호르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을 가해도 인체 무해한 젖병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이것이 채택되어 벤처사업팀이 꾸려졌다.


팀장인 과장님 한분, 대리 한분, 그리고 나.

딸랑 세 명만 이 큰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다.

처음 시장조사부터 제품 기획, 브랜드 네이밍, 디자이너 섭외, 각 자재 소싱, 제품 개발 후 마케팅, 영업, 사후관리까지... (이마트 매대 앞에 서서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판매도 해봤더랬다)

모조리 이 세명이 해결해야 했으니 오죽 바빴으랴.

물론 이 경력은 이후 여러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때 그만 폭싹 늙은 것 같다.

자재도 하나하나 따로 소싱하는 바람에 거래처가 엄청나게 많았고 역시 술자리도 참 많았다.

magnetme@pixabay



자연스레 늦어지는 귀가에 아빠와의 마찰도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야근 중에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대략 밤 10시 정도였던 것 같다.

"팀장 바꿔!"

"아빠.. 제발..! 여기 회사예요, 목소리 낮추세요.."

"애를 이 시간까지 집에도 안 보내고 뭐 하는 거야, 어서 바꿔!"


정말 얼굴이 화끈거려 어찌할 줄 몰랐다.

워낙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컸던 나머지, 팀장님이 상황 파악하시고 아빠와 통화를 하셨다.

세상 잘못한 죄인처럼 말이다.

그 뒤로 나의 귀가 시간은 조금 당겨졌으나 아빠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빠의 건강상태 걱정보다 나의 쌓인 불만에 못 이겨 될 대로 되란 식의 늦은 귀가를 저질렀다.

(아주 늦어도 밤 12시를 절대 넘기지 않았다...)

그때 그 폭풍 잔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잔소리를 듣는 내 뇌는 두 개로 나눠져 있었다.

그 순간 화가 나지만, 또 나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심장이 아프시면?!


아빠랑 미친 듯 싸우다가도 그 생각에 닿으면 한없이 쪼그라들고 잘못했다고 하고...

다중 인격, 골룸이 된 것 같았다.

다시 갈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하.. 회사도 답이 아니던가...

그럼 무엇을 해야 귀가 시간제한 없이 저녁, 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 독립이 답인가?

풀었던 짐을 다시 싸야 하나...

난 어찌해야 한단 말인고!!!


아빠의 딸내미에 대한 걱정도 내려놓는 동시에 나도 내 마음을 만져줄 저녁시간을 확보하는 묘안은 회사 다니는 내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나를 잊고 살았다.

어쩌면 현실 도피 차원에서 일부러 나를 잊으려 했는지도...


그사이 마의 3개월도 넘기고 졸업도 하게 되었다.

엄연한 정규직이 되었고, (일만 한 탓에) 고과도 좋아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여전히 아빠 품을 못 벗어나고 귀가 시간으로 티격태격하는 어린 딸이었다.


제일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나의 아까운 20대 중반은 회사에서 젊음을 바치고 집에서는 이렇게 아빠와의 마찰로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5>에 계속...






[버리기 아까운 에피소드]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쳐내다 보니 능글맞은 면까지 생겼다.

이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당시 우리 팀은 환경친화적인 소재로 젖병을 완성했다.

그런데 멋지게 만들면 끝이 아니더라.

만든 완제품을 많이 팔아야 돈이 됨을 뼈저리게 느꼈다.


팀장님도 대리님도 나도 유통이라는 걸 잘 몰랐다.

분명 대기업이 일반적으로 갑이던데... 우린 을이 되었다.

전국 유통망을 꽉 잡고 있는 벤더(판매 회사)를 겨우 찾았다.


아.. 그런데 이 분..

여성을 매우 비하하고 무시하는 분이었다.

그에겐 내가 눈엣가시였고, 우리 팀장님은 내내 조마조마해하셨다.

뜬금없이 계약을 위해 룸살롱을 가자면서 나를 꼭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더라.


그곳이 정말 룸살롱이었는지, 일반 bar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야한 옷의 여자분들이 고객 숫자대로 나오셨다.(나도 한 고객이었다)

갑자기 그 유통 왕 사장이 한 여자분을 휙 낚아채더니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붓더라.

그런 후 나에게 던진 말.


"봤지? 여자란 이런 존재야. 까불지 마!"


룸살롱도 처음이고, 야한 언니들도 처음인데 저 행동까지 받아들이기엔..

숨이 턱 막혔지만 최대한 의연한 척했다.

난 작년에 미쿡에서 이상한 백인 남성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 적도 있지 않은가!

팀장님과 대리님은 지못미 표정으로 붉어지다 못해 하얘져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어렸다.

프로였다면 그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했을 텐데 그만 그 유통 왕을 어떻게 하면 바보로 만들까만 구상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내가 더 미웠나 보다.

다시 그 언니를 확 끌어 더 찐한 행각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 언니는 빽 소리를 지르며 유통 왕을 향해 그만 하라고 했으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무슨 용기였는지) 나도 소리쳤다.

"저 오늘 이 언니랑 같이 마시겠습니다."

그러자 그 언니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내 팔짱을 꽉 끼며 말했다.

"오늘 내 손님은 이 분이에욧!"


어안이 벙벙해진 그 유통 왕은 기가 막힌 지 비싼 양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라.

나는 보란 듯 그 언니들이랑 더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추며 놓아주지 않았다.

(틈을 주면 또 나쁜 짓 할까 봐...)

팀장님과 대리님은 이 상황에서 누구 편도 들지 못한 채 망연자실 상태였다.


유통 왕은 어느 순간 혼자 집으로 가버렸다.

내가 걱정을 하자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걱정 마, 안 볼 사람이야."

감사하게도 실적보다 팀원을 챙기셨다.


집에 갈 때 언니들(나보다 2살 많은 언니 맞았다)이 정말 고맙다고,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도 악몽 같은 순간을 모면하게 해 준 언니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덕분에 우리의 영업망은 날아갔고, 원점에서 다시 벤더를 구하느라 고생했지만 마음은 참 따뜻했다.

내 나이 스물넷이었다.


- 이번에는 좀 길었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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