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다 되어 자유를 만끽하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5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1

<회사도 답이 아니었어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4>에 이어...



월화수목금금금 회사생활은 20대 중반에도 계속되었다.

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몸이 급속도로 지쳐갔다.

이른 취업 때는 몰랐으나 친구들이 회사에 입사하니 회사의 문화가 각기 다르다는 걸 알았다.

외근이 적고 퇴근시간이 일정한 회사로 옮기고 싶었다.

어차피 야근을 한다고 늦게 들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학습지로 유명한 교육 회사로 이직했다.

이전 회사 대비 평균 연령대가 확 낮아서 놀랐다.

팀 내에 사원, 대리 등 내 나이 또래라 마치 동아리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6시에 칼퇴근하는 아주 좋은 문화였다.


자연스레 술자리가 잦아졌다.

회식이란 핑계로 (그래도 예전 회사보다 일찍 귀가했다) 친구 같은 직원끼리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즐겼다.

늘 긴장하며 일만 했던 나에게 천국 같은 곳이었다.


의식적으로 일부러 더 즐기려 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여유롭게 못 놀았던 대학생활에 지쳐서, 통제만 하는 아빠한테 지쳐서, 일만 했던 직전 회사에 지쳐서...

낮에 업무를 후딱 해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6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사실 술보다 안주에 맛을 들여 종로 맛집 탐방을 하게 되자 배와 볼살이 터질 듯 올랐다.

그리고 아침마다 전날 쉬지 못하고 놀았던 피로감에 다크 서클이 늘 내 눈가를 너구리처럼 물들였다.

보다 못한 과 후배이자 회사 동료가 한마디 하더라.


"언니, 대학 때 그 모습 다 어디 갔어요?! 폐인 같아요!

안 되겠어, 언니 연애 좀 하세요. 내가 소개팅 하나 해줄게요."

"싫어.. 이 생활이 좋아..." (=..=)


이미 벌크업된 내 모습에 자신감도 없었지만, 아직도 덜 즐긴 것 같아 이 생활을 청산하기 싫었다.

원 없이 더 놀겠다는 내 의견은 묵살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사진이 그(?)에게 전해졌나 보다.

딱 일주일 후에 후배의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언니, 언니 사진을 그 오빠한테 보여줬더니 소개팅 안 하겠대.

대신 친구를 소개 해주고 자기는 주선자로 나온대요."


뭣이?! 나 얼평 당한 거니? (얼굴평가)

자기는 얼마나 잘났길래 그런 말을 한대? 웃겨, 진짜!

갑자기 1도 관심 없던 그 소개팅에 나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야, 나 소개팅 한다고 전해줘.

대신 너도 같이 4명이 함께 보는 거다."


소개팅을 언급한 죄 아닌 죄(?)로 그 후배는 볼모처럼 소개팅에 끌려나갔다.

마침 주말마다 대학교 동아리 모임을 집 앞에서 하고 있었던 때다.

졸업 후에도 재학생, 졸업생이 운동으로 뭉쳐 체력관리를 했더랬다.

이날도 집 앞 공원에서 함께 인라인하키 연습을 한 후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로 (심지어 땀을 흠뻑 흘린 채) 소개팅 자리로 향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다들 꽃같이 예쁘게 단장하고 어여쁜 표정으로 나가는 소개팅 자리에 이 땀냄새나는 여인은 누구인고!

소개팅 거부했던 그 남성분은 매우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웃기지도 않는데 분위기를 띄우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게 보였다.

어색한 조합의 소개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운명이란 게 있을까?

그 소개팅 거부남은 지금 나의 배우자가 되었다.

모든 게 그의 전략이었다.

경상도 상남자였던 그는, 소개남으로 만나면 말수 없는 자신을 어필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주선자 자격을 택한 것이다.


진짜 묵묵했지만 분명 엉뚱한 면이 있었다.

데이트할 때 에피소드가 많다.

당시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남자 친구와 학교에서도 자주 만났다.


교내에 자하연이라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그 옆에 식당이 있는데, 자하연에서 보자 하면 보통 그 식당에서 만났다.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어느 날,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 친구는 식당으로 오지 않았다.

나가려던 차에 머리 위로 쌓인 눈을 털며 남자 친구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자하연으로 오랬잖아... 어후 추워!"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날씨에 그 눈을 다 맞으며 30~40분을 정말 자하연 연못 앞에서 날 기다린 이 남자.

순간 계속 만나야 할까 고민했더랬다.

그러나 가끔 이러한 돌발 행동이 점차 매력으로 다가왔다.

정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서로를 몰랐던 2학년 때 어떤 교양 수업을 함께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운명적 만남이라고 끼워넣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남자...

아빠와 다른 사람이었다!







비록 첫 만남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서로의 공통점에 끌리고 또 서로의 차이점에 역시 끌렸다.

먼저 정신적으로 매우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늘 정신없이 일을 쳐내던 내게 신기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도인인가..?


내 다이어리는 그때도 지금도 빼곡한 일정으로 지저분하다.

해야 할 일을 주욱 늘어놓고 걱정을 하면 그의 한마디가 날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꼭 그걸 다 할 필요는 없어... 너 원하는 대로 해..."


아등바등 분주함으로 점철된 내 일상에 조약돌을 던지듯 그의 말은 파동이 되어 꽤 길게 내 마음을 달랬다.

마치 물멍하듯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그 파동을 바라보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 이 기분 뭐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의 신비로움은 20여 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나를 그렇게 현혹했고 우리의 만남은 지속되었다.

남자 친구도 졸업과 동시에 나와 5분 거리 회사에 입사함으로써 우리는 퇴근 후 매일 만날 수 있었다.

3년을 매일 만나도 한결같이 나를 통제하긴 커녕 내가 원하는 바를 묻고 존중해주었다.

그래서 어리광을 부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 탓에 일부러 남자 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언행으로 투정도 부렸다.


보통 아빠와 비슷한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지만, 우리 신랑은 완벽히 반대다.

물론 수많은 점이 아직도 마음에 안 들지만, 힐링을 느끼게 해주는 이 가치관은 아직도 나를 사로잡는다.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그동안 절실히 필요했는지도...

결국 그 사람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결혼 얘기가 오가자 아빠의 말씀.

결혼을 하면 귀가 통제권이 신랑한테 넘어간다고?!

아니 이런 중요한 말씀을 왜 이제야 하시냐고!!!

(사실 워낙 강성이셔서 결혼을 해도 아빠가 신랑까지 통제하실 줄 알았다...)


놀랍게도 결혼이 답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20대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취업이 아니라 결혼할 남자를 찾았어야 했나?

그러나 세상일이 계획대로 되는 게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을 만나려고 아빠와 그렇게 울고 웃으며 20대를 꽉 채웠나 보다.


정신적 자유를 얻은지 3년만에 신체적 자유도 허용이 되었다.

즉, 결혼과 동시에 그동안 함께 겪었던 귀가 시간 통제의 한을 풀듯 새벽까지 밖에서 데이트를 했다.

30대 유부녀가 되어서야 20대처럼 밤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자유였지만,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SplitShire@pixabay



그러나 자유를 다룰 줄 몰랐던 이유일까.

한꺼번에 찾아온 자유는 나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착각에 부동산, 주식 등 어른 놀이에 빨리 빠져들었다.

갇혀있느라 투덜대기만 했던, 그래서 자유를 현명하게 조절할 줄 몰랐던 나에게 세상은 어른되기를 가혹하게 푸시하였다.

오아시스 신랑과 함께 혹독한 어른 세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전혀 상상하지 못한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6>에 계속...





<2부. 아빠와 나>가 끝났습니다.

앞서 14개나 되는 기나긴 힐링에세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3부. 아이와 나>가 시작됩니다.

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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