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1호라는 타이틀을 피하려다가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7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3

<소중한 아기 천사가 언제 올 줄 알고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6>에 이어...



출산휴가 90일을 마치고 복귀한 직장맘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대기업의 복지가 좋다 하지만 모유 유축할 장소조차 제대로 없었던 2000년대 모성에 대한 복지 수준은 한참 낮았다.

한 평 남짓한 여직원 휴게소에서 문 잠그고 숨죽이며 유축을 했고 그마저도 눈치를 받았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한숨 자러 가는 사람 쳐다보듯 빈자리를 이해 못 하는 상사들도 있었다.

팀 내에서 부모 도움없이 내 손으로 아기를 직접 케어하는 여사원이 내가 처음이었으니까.

결국 모유 수유를 중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시선들이 참 많았다.

1년이란 육아 휴직이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출산휴가 90일을 다 쓰는 것도 눈치 봤던 그 시절이 괜히 억울했다.

사실 아이가 생각나서 일을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나는 MBTI 성향상 T가 매우 강했다.)

오히려 아웃풋이 좋아도 아기 엄마라는 꼬리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몇 사람 때문에 기운 빠진 적은 있어도...


그러다 미혼 부서장의 권력 남용(?)으로 육아에 직격탄을 맞았다.

아이는 맞벌이 부모를 둔 죄 아닌 죄로 돌이 되기도 전에 아파트 1층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그 당시 회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따로 없었지만 약 1년 후 오픈할 예정이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센터장이 오시게 되었다.

다행히 예전 모바일 사업부에서 모시던 임원이었다.

그러나 부서장은 이른 출근을 좋아하는 그 임원의 취향에 따라, 9시 출근을 멋대로 8시로 변경했다.

그렇다고 한 시간 더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문제는 어린이집 오픈이 8시 15분이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안고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를 던지듯 맡기고 회사로 쏜살같이 가면 8시 45분.

왜 매일 늦냐는 핀잔은 계속되었다.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를 부르면 안 되느냐,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해라 등 그놈의 8시를 맞추려고 나에게 금전적, 감정적 지출을 강요하는 부서장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아무리 일로 성과를 내도 직장맘이라는 타이틀로 이런 설움을 겪게 되는구나 절감했다.


부서 이동과 출산 등 짧은 시간에 여러 이벤트가 있었던 나로서는 트집 잡히지 않으려 애썼다.

다행히 고과를 잘 받았다.

모유 수유도 중단했지, 아웃풋 퀄리티를 위해 나를 더 몰아친 결과였기 때문에 좋은 고과는 여러 아쉬운 것들을 만회해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 노력으로 안 되는 사안으로 인해 눈치 받고 잔소리 듣는 건 솔직히 참기 어려웠다.

이 나라를 위해 출산을 하고 경제를 위해 산업 전선에서 열 일하는 직장맘에게 응원은 못할 망정 규정보다 더 빠른 근태 시간으로 눈치를?!

게다가 결혼과 육아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뭐, 아무리 노력하면 뭐해.

이런 걸로 다 깎아먹는데 뭘...

의욕이 꺾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지치니 아이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았다.

뱃속에서도 매일 새벽까지 일했던 넌데...

아가야, 이제 우리 좀 쉴까..?


육아를 핑계로 사직서를 제출하자 마침 센터장으로 오신 임원이 호출했다.

전 사업부에서 고과를 잘 받았던 이유였을까?

10개월 후에 회사 어린이집이 다 지어져 오픈되니 1년까진 못 주더라도 10개월 육아휴직을 특별히 주겠다고 하셨다.

엄청난 특혜였고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난 정중히 사양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 당시 출산 휴가도 혜택으로 봤던 분위기상 육아 휴직 1호라는 타이틀까지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지친 게 맞다.


지금 육아 휴직이 자유로운 후배들에게, 라테는 말이야 하며 내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말해주면 과연 이해할까 싶다.

"눈 딱 감고 육아 휴직해준다고 할 때 하지 왜 안 했어요!"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당시 육아 휴직 1호라는 그 무게감은 정말 컸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경력 단절이라는 것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결국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그런데 곧 무시무시한 세상이 펼쳐졌다.

육아 휴직 1호가 훨씬 나을 뻔했다.






현실 도피하듯 입학한 대학원 석사과정.

그리고 갓 돌이 된 아가.

내 상황이었다.


그동안 일 때문에 어린이집에만 맡기고 애써 외면했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태 사랑을 듬뿍 주며 육아를 시작했다.

첫 학기는 일부러 한 과목만 수강했다.

그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며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그러나 두 번째 학기부터 난처한 상황이 생겨버렸다.

3과목을 들어야 했고, 다시 보내야 하는 어린이집 순서가 그만 요원했다.

마침 나라에서 '아이돌보미'라는 제도로 필요에 따라 보육하는 분을 집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당장 코앞에 놓인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아이돌보미를 불렀다.


생전 처음 보는 아줌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수업에 늦어 도망가듯 집을 뛰쳐나올 때 뒤로 들리는 그 찢어지는 듯 악을 쓰는 아이의 울음소리...

설상가상이 이런 건가?

아이돌보미는 글쎄 스케줄마다 다른 분이 오셨다.

낯가림이 시작되는 아이에게 매일 고문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이는 늘 몇 시간을 울다 지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고 한다.

참...

경력 단절이 뭐 길래..

대학원 학위가 뭐 길래...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에 난 무슨 짓을 했는가!


중학생인 아이가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며 웃으며 말한다.

"엄마, 그때 왜 나만 두고 가버리셨어요?"

기억 못 하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저 어린 마음 한켠에 그때 감정이 남아있나 싶어 코끝이 찡해진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게 겨우...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바로 이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라는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 엄마라는 모성으로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아쉬움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돌아간다 하더라도 내가 걸어온 길이 또 아까워 역시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양가적 감정으로 지금도 고민할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맘들을 응원한다.


어쨌든 아이는 매일 엄마와 생이별을 하며 낯선 베이비시터들 품에서 자랐다. (아니, 버텼다.)

20개월 즈음 다시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으나 예전의 밝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둘째도 낳고 회사에 또 입사했다.

직장 다니는 엄마가 늘 그리웠던 아이...

우리 엄마도 직장인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할머니가 있었다.


내 아이는 오랜 시간 여러 보육 손길을 거쳐, 어떤 감정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은 채 오롯이 그 작은 마음으로 그리움을 삭였다.

그리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잊지 말라는 메시지처럼, 무표정 속에 몰래 숨겼던 고요한 외침을 고작 만 6세에 온몸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8>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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