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싸우던 만 6세 아이에게 찾아온 시련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8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4

<육아 휴직 1호라는 타이틀을 피하려다가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7>에 이어...



동생을 만들어주면 괜찮을 줄 알았다.

두 살 터울의 동성 동생과 함께 자라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덜 느낄 줄 알았다.

그러나 지독한 외로움에 더하여 엄마의 역할까지 짊어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당부를 하며 출근했던 것 같다.

"00야, 엄마가 없을 땐 네가 엄마란다.

그러니까 동생 잘 보고 있어~."


출퇴근 도우미가 계실 때 일이다.

집에 두고 온 서류가 있어 잠깐 들러 다시 사무실로 가던 차에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목격했다.

출퇴근 도우미는 70을 바라보는 어르신이었다.

연약한 그분의 등에 내년이면 학교 입학하는 커다란 아이가 업혀서 가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5살 꼬마는 1~2m 뒤에 쫄래쫄래 강아지마냥 도우미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광경을 본 후 회사까지 가는 길이 정말 천만리 같았다.

어른에게(더 정확하게는 엄마) 안기고 싶었던 우리 아이...

받아야 할 커다란 사랑 대신 동생을 안겨 받은 아이...

그래서 아무리 사랑을 퍼붓는다 생각해도 늘 부족하다 느꼈을 우리 큰 아이.

바쁜 날은 출근 전에도 못 보고, 애들 자고 있을 때 퇴근해 땀이 흥건한 두 아이 얼굴에 마음 아파한 적도 부지기수다.

아.. 누구를 위하여 종이.. 아니 내가 이러고 사나...


첫째 아이는 늘 말이 없고 어두워보였으며 잘 먹지도 않았다.

그래서 삐쩍 말랐고 눈에도 다크서클이 깊이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 내려왔다.

드디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식을 맞이했다.

감개무량했다.

젖먹이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자라서 명실공히 '학생'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핑크빛 입학식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깜깜하고 긴 터널에 들어서고 말았다.

어쩌면 그간 아이의 스트레스에 비추어 보아 예견되었던 일이었는지도...





"성조숙증입니다.

뼈 나이 사진으로 볼 때, 성인이 되었을 때 예상 키는 142cm입니다.

빠른 조치를..."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나도 165cm가 넘고 180cm 가까이 되는 아빠를 두고 아이는 고작 140대?

만 6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가슴 몽우리가 만져져, 싸한 기분 지울 수 없어 확인차 보러 간 진료다.

게다가 아이는 키도 작은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너무 말랐다.

그런데 성조숙증이라니?


"물론 성장발육이 빠른 아이들에게 성조숙증이 올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이 아이는 스트레스성 성조숙증 같네요."


마음이 후두두 남김없이 무너져버렸다.

미안했던 마음 하나하나가 서로 뭉쳐지더니 그만 내 육신까지 끌고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기저귀 채울 때야 낯가리는 시기만 지나면 되는 거 아니었어?

학령기가 되어서까지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을 후벼팔 줄 몰랐다.


할머니가, 아빠가 발병했을 때 마음과는 차원이 다르더라.

두 분에게 느낀 것은 오직 의무감이었다.

내 새끼는 다르네...

의무감보다 죄책감이 월등히 앞섰다.


뭣이 중헌디?! (이 영화 구절은 이 일이 있은지 몇 년 후에 유행이 되었다.)

지금까지 했던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가 지금 이 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가?

그렇다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아웃풋은 무엇인가?

결국 내 자식이라고 귀결되더라.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했던 내 책임이 크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나는 MBTI 성격 중 T가 매우 높았다.

후회할 시간을 줄이고 문제를 직시하면서 해결책을 내는 데 총력을 다했다.


먼저 양방적 접근으로 1~3년간 성호르몬 억제 주사? No.

우리 아이는 기본적으로 바늘을 너무 무서워한다.

혈액형 검사 키트의 그 바늘에도 40분간 울며 불며 도망 다니느라 애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그럼 한방 접근으로 침 맞고 한약 먹기?

침술도 바늘이라 쉽지 않지만 그래도 푹 찌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OK. (그냥 주사가 무서워서 응한 것 같다.)

한약은 오히려 반기더라.


치료 방향을 정했다.

한약 먹으며 '음식'으로 극복하기.

알 종류, 치즈나 우유 등 유제품, 과자, 빵 종류 모두 금지.

식사는 삼시세끼 카레(강황이 들어있어 성호르몬 억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간식은 빵도 우유도 안 되니 감자나 고구마 등 자연식품으로만 제공.


치료 방향 덕분에(때문에?) 나의 향방도 결정되었다.

모든 일을 접었다.

오직 아이만 바라보기로 했다.

미안함을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어차피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1학년이 되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3월,

오히려 우리 모녀가 치료를 위해 서로 더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일을 내려놓으니 자연스레 학부모 모임에도 자주 참여할 수 있었다.

말이 없는 아이를 대신해 엄마들로부터 아이의 학교 생활을 엿들을 수 있었다.


유치원 시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엄마 역할을 이제야 하게 되니 죄책감이 점차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놈의 정보력!

직장맘과 전업맘으로 나누는 무리들이 있어 정보(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의 제한적인 공유에 마상(마음의 상처)을 받은 엄마들도 더러 있었다.

철저하게 배제되지 않으려고 직장맘과 전업맘 두 갈래에서 치우치지 않도록 늘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아이의 치료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카레로만 식사하는 것도 못할 짓 아닌가.

그럼에도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질릴 대로 질린 카레를 꾸역꾸역 먹었다.

우유도 한 방울 먹지 않았고 오직 물만 마셨다.

간식?! 삼국지보다 더 긴 스토리지만 짧게만 말한다면...

학원 사이사이 10분이나 20분씩 간격이 생길 때마다 전업주부인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학원 앞 벤치에 앉아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나 감자를 먹였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모든 학원이 바로 집 앞에 있어야 한다.

다행히 멀리 가지도 못했다.

아이 실력이 그다지...


관련하여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막 전업주부가 된 나로서는 학원 정보가 거의 없는 터였다.

엄마 모임에서 영어 학원을 소개받았더랬다.

레벨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파닉스부터 배울 애한테 무슨 테스트?

그래서 먼저 학원에 방문해서 시험문제를 봤더니 그림만 주르륵 있더라.

색칠하는 건가..?

그래도 영어학원인데...?


"이건 어떻게 답을 쓰면 되나요?"

철판얼굴로 무장한 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학원 데스크 직원이 대답하더라.

"네? 그림을 보고 영어 문장으로 쓰는 거지요...(속마음 : 도대체 물어보는 이유가 뭐지?)"

그렇다.

이 동네는 선행이 빵빵한 곳이라 초1에 파닉스 하는 애가 참 드물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고, 아이 선행에는 1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갖가지 학원은 신세계였다.

하지만 미술 학원에도 등록했고(스트레스를 풀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학습을 위해 파닉스부터 가르쳐주는 동네 영어학원에도 열심히 다녔다.

같은 건물 내 피아노 학원도 태권도장도 등록했다.

이 모두 치료의 일부였다.


다행히 아이가 점차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일단 가슴 몽우리 크기가 더 커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1학년 하반기에는 작아지더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음식과 운동으로 관리해주니 더 이상 성조숙증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아주 조금씩 밝아졌다.

아...!

엄마가 이렇게 오래 옆에 있었던 적이 아마 없었지...

괜히 또 미안해지고 어딘가 도망갔던 죄책감이 또 빼죽 얼굴을 내밀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가 환하게 행복하게 웃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웃는 얼굴이 이렇게나 예쁜 아이였던가...


역시 엄마가 옆에서 지켜봐 줘서일까?

아이는 2학년이 되어서부터 뭔지 모를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업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학습 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자기가 스스로 몰아치기도 했다.


동네 영어학원 설립 이래 최초로 첫 위너가 된 아이 (늦게 시작하면 이런 효과도 있음)


아이가 잘한다면 엄마는 기분 좋~아라 하면서 소고기 사 묵겠지!

(이 유머 코드 아시는 분은 저에게 댓글 주세요^^)

자기도 신났는지 가고 싶은 학원을 늘려갔고 방과 후 수업까지 테트리스 같은 일정을 소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3학년이 되고 늘 그렇듯 빡빡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를 잠시 앉혀놓고 아이가 꺼낸 말에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엄마, 사람은 왜 사는 거예요?"

"글쎄?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죽지 못해 사는 거 아닐까요?"


두둥...

이건 또 뭐지..?

만 9세, 신체적 징후는 좋아졌으나 성조숙증의 후유증이 남아 정신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는 단면이 발견되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9>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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