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찾아온 사춘기의 원인을 알아내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0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6

<엄마가 사춘기를 몰라서 미안해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9>에 이어...



코로나 때문에 아이는 중학교 입학식도 못했다.

조금만 참으면 될 줄 알았는데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확산세에 온라인 수업을 하겠다고 한다.

말이 돼?!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화상 수업의 가능성을 검증하기도 전에 떠밀리듯 시작해버렸다.


회사도 곧 지방에 있는 본사와 합친다고 한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 사무소를 정리하면 난 왕복 2~3시간을 출퇴근에 소요해야 한다.

두 아이를 직접 케어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난감했다.

무엇보다도 허둥지둥 아침마다 자는 애 깨우랴, 온라인 수업 세팅하랴, 출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큰 아이와의 삭막한 관계, 버거운 업무들, 작은 아이의 운동선수 생활로 장거리 라이드에 지쳐있던 차였다.

코로나의 선물이었을까.

구실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를 갈아 넣어 일상을 굴리던 터라 내가 사라지는 걸 모른 채 뭐가 문제인지 찾아 헤매기만 했다.

괜히 이 구실, 저 구실을 한데 모으니 퇴사를 꼭 해야만 하는 매우 크고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버리더라.

사실 핑곗거리 묶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2020년 코로나의 확산과 함께 퇴사를 했다.

대우가 나쁘지 않았던 관계로 기회비용도 컸지만 그래도 감행했다.


첫째 아이의 반응은 놀라웠다.

"네?! 빨리 다른 회사 알아보세요. 학원비는 어쩌려고요?"

마음에 차가운 빗물이 줄줄 넘쳐흘렀다.

남도 아니고... 니 엄마라고...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둘째 아이의 반응은 귀여웠다.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좋아요."

넌 아직 사춘기가 안 왔거든...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첫째 아이와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큰 회사, 작은 회사를 통틀어 임원 직전까지(계속 다녔으면 임원이 되었을지도..) 갔음에도 왜 이리 허할까.

나는 누구인가...??...!!


헉, 나 사춘기야?

나의 정체성을 찾아 감정 기복이 들쑥날쑥한 지금의 나.


가만 보니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쉽게 짜증 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쁠 때는 몰랐다.

엄마의 말씀과 일련의 사건들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사와 함께 사소한 언행을 곱씹을 여유가 생기자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엄마.

직장인 엄마를 그리워하며 어릴 적부터 모범적인 딸이 되어 인정받으려고 고군분투했던 내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고 엄마와 아빠는 나를 참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움은 당연함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너는 네가 뛰어나서 그 많은 걸 이뤘잖니.

네 동생은 그렇지 않아서 조금만 잘해도 기특하게 느껴진단다.

그러니 네 동생을 더 생각해줘야지.


이런 엄마의 논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인정 뒤에 숨겨진 '당연하게 여김'은 나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같아 분노로 발전했다.


퇴사와 함께 찾아온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아이와의 차가운 관계, 엄마로부터 받는 서운한 감정들.

나를 뒤늦은 사춘기로 밀어 넣었다.


이제야 사춘기를 만나버린 40대 중반의 나.

잃어버린 자존감의 원인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과연 잃어버린 게 자존감이었을까...?






사춘기의 원인을 찾고 싶은데 뭘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독서를 시작했다.

한 주에 한 권씩, 속도가 붙으면 2~3권씩 읽어댔다.

익숙하지 않은 독서 과정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살아왔는지 가감 없이 알려주었다.


대세가 온라인 세상이었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온라인 모임에 기웃거렸다.

자기 계발에 대한 트렌드가 지배적이었다.

어차피 코로나 환경이라 집에서 나를 계발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뭣도 모르고 자기 계발 책과 강의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


마구잡이로 시작했던 시도들이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자기 계발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더라.

블로그도 시작하고, 브런치도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 좋게 출간으로 이어졌다.

출간은 나를 작가로 만들어줬고,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게 해 주면서 나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쳤다.


집에서 혼자 운동하여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들어 바디 프로필을 찍는 것도 트렌드더라.

글을 쓰면서 살이 찌는 걸 막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며 운동을 했다.

나름대로 바디 프로필 찍는 것도 성공했다.

성공 근육이 붙으면서 숨어있던 나를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사춘기 파헤치기 프로젝트는 탄탄대로를 가고 있었다.


이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에 대한 아이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대한 몸을 휘저으며 홈트를 하고 시간만 나면 독서나 글을 쓰는 엄마가 우스웠나 보다.

멋지게 회사를 다니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집 거실 한쪽 귀퉁이에서 맨날 거북목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엄마요? 집에 계세요. 뭐... 블로그 같은 거 하신대요."


자신은 공부라는 직무에 학생이라는 직업이 있는 반면 엄마는 퇴사하고 집에서 블로그나 하며 빈둥대는 흰머리 희끗 백수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딸아이의 생각과 일치하는 설명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웃어넘겼다.


그런데 출간을 하고 나자 조금씩 관심을 갖더라.

게다가 논술 학원에서 유전자 가위를 사용한 디자이너 베이비, 인공지능과 윤리 등 알쏭달쏭한 주제를 다루면서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책을 쓴 엄마가 생각났나 보다.

슬그머니 묻기 시작했다.


대화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 조금만 들어달라고 해도 제발 하지 말라며 부탁까지 하더라.

하지만 학원에서, 학교에서 빈번하게 나오자 그제야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볼멘소리로 도와달라고 한다.


나는 이 기회마저 잃을까 봐 내 감정을 '기쁨이'로 고정시키고 신나게 설명해준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이는 그저께보다 어제 좀 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대화량을 늘려갔다.


안아줬다.

고마워서 안아줬다.

엄마한테 말 걸어줘서 고마워...

순간 지독히도 안 읽히던 책들을 꾹 참고 읽어 책까지 쓰게 된 내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1년이 지나니 이젠 대화거리가 없어도 그냥 얼굴 보면 안아주는 사이가 되었다.

글 쓰다 바쁜 일이 있어도 아이가 팔을 벌리면 멈추고 일어나 아이를 꼬옥 안아준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말 만한 아이가 그때 못 안아줬던 그 꼬마인 양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책 출간과 브런치북의 발행을 기점으로 가장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다.

특히 이 글을 브런치로 발행했기 때문에 엄마와 친척분들은 나의 과거에 대해 순차적으로 알 수 있었고, 마치 자신들의 회고록처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

"항상 궁금했는데, 너는 왜 한 번도 힘들다고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어?"

아직 엄마와 풀어나가야 할 게 많아 보인다.

하지만 엄마가 나의 힘들었던 심정의 극히 일부라도 알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되더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회사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받은 인정.

나는 그것만 먹고 살아왔다.

그러나 인정은 어느 정도 지나면 휘발된다.

인정과 함께 챙겨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나의 페르소나는 수십 년간 인정을 받았고, 진짜 나는 저 뒤로 숨어 방치되고 있었다.

인정받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내 페르소나도 위태로웠지만 진짜 나는 방치되다 못해 사라지고 있었다.

자기 계발 과정에서 진짜 내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진짜 나를 찾았을 때에는 페르소나 뒤에 숨어 40년 이상 울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나를 달래줘야 할 것 같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에필로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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