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진짜 나와 마주할 용기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에필로그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7

<40대에 찾아온 사춘기의 원인을 알아내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0>에 이어...



::::::: 에 필 로 그 :::::::::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의 사춘기 덕분에 진짜 내가 없다는 걸 알았다.

중풍 할머니 케어하는 손녀 역할, 심근경색 아빠 말씀에 순종하는 딸 역할, 성조숙증 딸을 키우는 엄마 역할, 그리고 이런 역할들 속에서도 밸런스를 맞춰가려는 직장인 아내 역할...


역할들 뒤에 진짜 내가 숨어있음을 발견했으나, 한편 그런 나를 만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기나긴 시간 외롭게 방치해 둔 미안함도 있었지만, 얼마나 망가졌나 알게 되는 것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만나보기로 했다.



1.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괜찮다고 했다.


'진짜 나'는 놀랍게도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열 살 꼬마 때 성장을 멈춰버렸다.

할머니의 급작스러운 간병을 계기로 내가 맡은 역할에 짓눌려 '진짜 나' 역시 눌려 버렸다.

이후 나는 몸뚱이만 크면서 역할의 스펙, 즉 페르소나의 화려함에 의존하며 진정한 나를 돌보는 일에 더 소홀했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한 개, 두 개 역할들을 벗으니 자꾸 저 깊은 곳에서 뭔가 올라옴을 느꼈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깊게 숨겨왔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만나 달라고 애걸복걸하다 지친, 초라하고 성장하지 못한 열 살배기 '진짜 나'를 만나버렸다.


그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유 없는 공허한 감정, 억울한 감정, 답답한 감정은 이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SOS였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고 역할에만 치중했던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성공적인 역할 수행을 통해 인정받는 것으로 나를 가득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내'가 없는 '역할의 화려함'은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걸 점점 강하게 실감했다.

무시무시한 좌절감에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자존감.

성숙하지 못한 그 아이, 즉 '진짜 내'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끼는 이 비극적인 감정을, 행복하게 웃던 껍데기로서의 내가 함께 느끼고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이 아이를 달래주고 싶었다.

비록 30년 이상 터울이 생겨버렸지만,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쓰기로 자가 치유가 가능할지 반신반의로 시작한 이 작업.

쓰는 내내 당시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와 그때의 나와 함께 펑펑 울고 또 함께 낄낄거리며 웃었다.

"괜찮아."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 줬다.


그리고 그때마다 역할 뒤에 숨겨진 너 자신을 드러내도 된다고 해줬다.

페르소나는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혹여 비교될까 봐, 비난받을까 봐 걱정하더라.

투정 부리는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가족들이, 사람들이 분명 실망할 거라고.


"괜찮아, 네 진심을 솔직히 드러내도 돼."


어느 순간 인정과 칭찬으로 페르소나가 부쩍 성장하여 성공궤도에 진입하자 실제로 그 인정과 칭찬에 한참을 따라 미치지 못해 '진짜 나'는 그만 숨어버렸다.

틀려도 되고 넘어져도 되는데도 자신의 모자란 모습을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역시 그 얘기도 해줬다.


"실패해도 괜찮아."


약간 용기를 얻은 것 같았으나 이내 또 소심한 걱정을 했다.

이제야 내 갈길을 찾겠다고 뭔가 시작하기에 너무 늦어버린 것 아니냐고 한다.

방황은 어릴 적에나 해야지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고 오히려 창피한 것 같다고...

역시 괜찮다고 했다.


"40대든 50대든 60대든 언제든 괜찮아.

내가 누군지 알고 원하는 걸 시도해 보는 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이렇게 버려졌던 나를 찾아 글을 통해 어르고 달랬다.

'진짜 나'와의 상봉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나의 성장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 나를 돌보는 힘, 그리고 글쓰기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낸다는 사실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아팠기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았기에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출간을 결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공적 지원과 함께 민간 지원도 활성화되어, 사회와 돌봄 역할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이라는 제도적 관계 속에서 아직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돌이켜보니 나는 할머니(1세대), 아빠(2세대), 나를 기준으로 자녀(3세대)까지 돌봄을 경험한 보호자였다.

여러 역할과 관계의 역동 안에서 울고 웃고 성장한 것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돌봄을 제공하건 돌봄을 받건, 돌봄이라는 사건을 경험할 것이다.

예기치 않게 돌봄 상황에 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때 당황하는 바람에 또는 역할의 무게로 인해 나처럼 '진짜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즉 보호자의 삶에 있어 자신의 목소리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간병으로 혹은 육아로 심신의 여유가 없어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는 것은 그저 초라한 핑계였다.

훌륭한 가족(타인) 돌봄은 훌륭한 자기 돌봄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를 굳게 세워야 나 이외의 존재를 돌볼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돌봄 상황에 있는가?

자녀 돌봄, 노부모 돌봄, 배우자 돌봄, 그 외 친인척 혹은 타인 돌봄 그 어떤 대상이라도 좋다.

돌봄으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진짜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어떻게 찾는지 방법이 궁금한가?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냥 써보자.

그 막막함부터 써보자.

뚫린 내 마음부터 써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나를 자꾸 불러내자.

그렇게 글로 어르고 달래며 손을 내밀어보자.

아무리 꼭꼭 숨어있더라도 결국 내 안의 '진짜 나'는 언젠가 슬그머니 손을 줄 것이다.

그리고 진짜 나와 손 잡는 그 순간부터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풀리면서 치유를 경험할 것이다.


나를 만나기 위한 가장 빠른 길,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 후 에세이의 마침표를 찍으며...


메신저클레어.





지금까지 스무 편이 넘는 기나긴 에세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시는 독자님 덕분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곧 만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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