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춘기를 몰라서 미안해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9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5

<외로움과 싸우던 만 6세 아이에게 찾아온 시련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8>에 이어...


아직 한국 나이로 살인 애가 갑자기 진지하게 삶에 대해 말을 건네 오니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왜 사는지 40이 넘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사람이 왜 산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아등바등 살면서 결국 죽을 걸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는 했다.

그러나 노장사상의 무위를 논하는 사람처럼 갑자기 애늙은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 전문, 래더링 인터뷰(심층면접기법)를 시작했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 것은 당연한데, 어떤 게 두렵니?"

"어차피 다 죽잖아요. 그런데 왜 열심히 살아요?"

"죽는 것이 두렵니, 아니면 그동안 열심히 사는 것이 마음에 걸리니?"

"죽는 게 두렵긴 해도 죽는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으니 꼭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요."


헉, 엄마는 아직도 죽음이 무서운데?!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그렇다고 당장 죽을 순 없으니 뭐.. 어쩔 수 없이 살아야겠죠."

"그럼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고 싶은데?"

"열심히 사는걸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두둥... 답은 이거였다.

자신이 하고 싶다고 시작한 방과 후 활동이나 학원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한순간 놓아버리고 싶었으나 자기가 먼저 시켜달라고 했던 죄책감이 아이에게 이런 방식을 고안하게 했나 보다.


생각의 키가 부쩍 많이 컸다고 느꼈다.

어린 애답게 힘드니 그만두고 싶다 하면 되지, 이런 전략적인 대화도 사용할 줄 알고...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할머니를 돌봐드린 게 딱 이맘때였구나.

나도 이 아이도 조금은 성숙한 10살을 보낸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여담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아이의 성숙도와 사춘기의 시작을 파악하는 척도로 사용되었다.

즉, 이런 얘기를 아이 친구도 했다면 그 아이 역시 사춘기가 시작된다는 신호다.

이러한 시기상 시그널적 경험을 바탕으로 당황하는 엄마들에게 여유롭게 말해줬다.


"그 집도 이제 시작이네~"


어쨌든 사춘기의 포문을 여는 사건 이후 아이는 이르게 찾아온 호르몬으로 인해 나와 거리가 조금씩 생겼고 아이의 눈빛도 점차 변해갔다.






조숙한 생각을 대견하게 느꼈던 마음은 아이와의 대적으로 인해 점차 힘들어졌다.

나름대로 아동가족학과 학도였다.

아니, 같은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쳤더랬다.

그런데 왜 그 숱하게 배운 이론은 내 아이를 상대할 때만큼은 백지가 되냐고...


남들에게 상담해줄 때는 오은영 박사님이 된것마냥 멋진 방향성을 제안해준다.

큰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으로 늘 의기양양했던 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 아이에게는 그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이 무용지물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사춘기에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이유도 있다.

남들은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때 겪을 일들이 초3에 찾아와서 얘를 아이로 대해야 하는지 청소년으로 대해야 하는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어느 학원에서나 아이의 감성과 태도가 중학생같다며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화를 어렵게 만든 건 바로 나였다.

자신을 어린애처럼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 불만이었던 아이가 대들기라도 하면, 아직은 어리니 핸들링할 수 있다는 자만이 발동해 또 엄마의 권위로 눌러버렸다.

아이의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의 차이가 큰 만큼 나도 어리둥절하여 제대로 대응을 못한 것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실수는...

10살부터 사춘기를 느낄 여유없이 보내버린 어린 시절의 나와 비교했던 것이다.

열살배기 애를 나도 모르게 나 어릴 적을 떠올리며 어른스러움을 강요했나보다.

내가 사춘기를 스킵하고 넘어갔으니 대응이 어려웠을 수밖에...


아이의 변한 눈빛은 돌아올 줄 몰랐고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며 엄마와의 대화를 피하려 했다.

"어차피 이해해주지도 못하면서..."

어느 날 아이의 태도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면서 자아를 잃고 말았다.

괴성과 함께 아이 머리를 (정확하게 귀 옆쪽을) 세게 때렸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나에게 이런 발성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어릴 적 엄마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온전히 함께하지 못한 죄인 같은 심정은 그 순간 온데간데없었다.

그냥 현재 이 시점에서 이걸 고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공포까지 느꼈다.

아이를 잡아먹을 듯 혼냈고 아이는 자기만의 수렁으로 더 빠져들었다.


점점 관계가 악화되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회복하려는 노력의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다시 취업을 해버린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바로 풀타임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쳐내기 시작했다.

차라리 서로 감정싸움을 덜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또래 관계와 돈독해지면서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약속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6 때 피크를 찍은 것 같다.


아이가 어디에 방문했다, 어디서 누구랑 놀더라 등을 목격한 엄마들이 연락을 해 주는데 도대체 믿을 수 없었다.

왜 나에게 말을 안 하고 갔지?

분명 둘만 만났다고 했는데 그 둘이 전부가 아니네?

집에서 아이를 앉혀두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 오늘 oo와 어디 갔다며? 왜 말을 안 했어?"

"어차피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그래도 말은 하고 갔어야지!"

"깜빡했어요."

"맨날 깜빡해?"

"문자 보내도 답도 안 주면서 갑자기 왜 관심 있는 척하세요?"


아이도 쌓일 대로 쌓였다.

사실 회사가 너무 바빠서 아이들에게 문자나 전화가 와도 바로 받지 못한 적이 태반이었다.

사춘기의 절정을 보내는 아이는 엄마가 바쁜 것이 서운했지만 다른한편 오히려 편했던 것이다.

내 삶의 바운더리에 굳이 넘어오지 마세요, 평소대로 관심 끄세요.

아이 눈빛은 계속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아이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누구한테 가서 이 쪽 전문가라고 하겠는가.

자존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제대로 못해준 부분도 많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엄마와 거리를 두는 아이가 야속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것 또한 내 잘못이었다.

아이 잘못은 없었다.

아이니까...

너무 지친 당시, 나의 잘못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아이 호르몬 탓만 하며 대치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바보같이 회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2~3년을 더 무관심한 엄마로 나를 방치해뒀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널뛰기 육아에 기름을 부었다.

나의 짜증을 아이에게 투영하여 괜히 아이 태도를 트집 잡아 혼내기도 했다.

가끔 엄마 노릇 못해 미안해질 때 애교도 살짝 부렸다가 차가운 아이의 반응에 되려 더 화내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기분 색상을 아이에게 드러내고 아이가 같은 색을 내지 않는다고 나무랐던 것이다.

아주 무지갯빛 칼춤을 추는 엄마에게 어떻게 마음을 열겠는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에게 두 번이나 상처 준 못난 엄마였다.

그 생각에 스스로 좌절의 구덩이를 더 깊이 파게 되었다.


결국 아이와 대화가 끊겼다.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실패, 이렇게 반복되는 쳇바퀴는 바로 다음에 있어야 할 노력 의지를 무력화했다.


이런 전쟁 같은 육아는 나를 더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다 감당하려고 육아도, 살림도, 회사도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만 같은 우울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뾰족한 수를 찾지도 못한 채 일상을 쳐내는 로봇같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복병이 오는 줄도 모르고...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2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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