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아기 천사가 언제 올 줄 알고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6

by 메신저클레어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https://brunch.co.kr/@m-claire/32

<서른이 다 되어 자유를 만끽하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5>에 이어...



<3부. 아이와 나>


결혼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정신없이 신랑과 바깥세상을 즐기던 어느 날.

새로운, 그러나 슬픈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20년 룸메이트로 지냈던 할머니가 갑자기 늙어버린 것이다.

매일 꿀 마사지로 얼굴이 나보다 매끄러웠던 할머니.

주름이 깊어지다 못해 먼지가 들어가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게 파였다.

그리고 피부 탄력이 급격히 떨어져 곱던 할머니의 모습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매일 함께 살 부비며 지냈던 누군가가 사라지면 이렇게 훌쩍 늙어버리는구나...

나를 잃어버린(?) 상실감에 할머니는 빠른 노화로 그 슬픔을 드러내셨다.

할머니한테 너무 미안했고 가슴이 저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늦게 결혼할 걸...

큰 죄책감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할머니를 떠나 혼자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었던 시간들이 왠지 죄송했다.

한 가정을 꾸렸으니 가계 보탬도 될 겸, 할머니에 대한 죄스러움도 잊을 겸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또 입사했다.

다녔던 회사도 나름 대기업이었지만, 이번엔 정말 큰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셔틀버스가 있었고 회사뿐 아니라 그룹사와 함께 하는 연수도 많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기획하는 모바일 부서에 입사했다.

회사 적응에 정신을 홀딱 뺏기는 바람에 자연스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한 후 입사하는 거라 약간의 부담이 있긴 했다.

그러나 내가 눈치보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언어폭력과 맞닥뜨렸다.


"김대리, 큰맘 먹고 믿고 유부녀 뽑았는데 덜컥 임신하면 가만 안 둬!"


Goumbik@pixabay


아... 입사 일주일 만에 부서장에게 심적 테러를 당하고 말았다.

도저히 웃음으로 무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같은 말을 유하게 표현해도 다 알아들었을 나다.

사실 바로 임신하는 것을 우려할 수도 있겠다고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기도 했다.

1년이라도 성과를 낸 다음 자녀계획을 하는 건 어떻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응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게 인간의 힘으로 조절이 되는 것인가?!)

하지만.. 이건 아니지!


협박에 가까운 (요즘에는 성희롱에 해당하는) 부서장의 언행은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모욕과 분노의 싹을 틔웠다.

이제 막 입사하여 제대로 일해보고자 하는 사람의 의욕을 제대로 짓밟아 놓는 이 한마디에,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전자회사에서 이런 사람이 저 자리까지 올라갔단 말이지?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부서원들이 상처를 받았을까?

요새야 여러 보호 장치가 있어 의식적으로 서로 말조심하는 분위기라지만, 그 당시에는 여과 없이 흡수(당)할 수밖에 없었다.


난 거울인가 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확대경이 되어 더 잘해준다.

반면 평균 이하의 태도를 보이면 겉으로는 웃지만 그 모습까지 진심으로 아우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릇이 작은가 보다.


일을 잘하면 부서장이 성과를 가져가는 구조라 그를 위해 일을 잘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복수(?)를 해야 맘 편히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정 기간에 입사한 그룹사 직원들과 함께 경력사원 그룹 연수를 가게 되었다.

회사를 섞어 조를 짜서 연수받던 중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사내 공익광고를 찍는 미션입니다.

내용도 좋고 영상의 퀄리티도 좋으면 전사적으로 공유할 예정이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오 마이 갓.

저에게 드디어 기회가 오나요..

우리 조는 각자 주제를 제안했고,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성희롱적 언행을 근절하자는 주제가 독보적으로 호응을 얻어 채택되었다.

그런데 우리 조.. 도대체 이거 뭐지?

조원 중에 촬영 기사 출신이 있었다.

또 한 명은 PD가 되고 싶어 잠깐 아르바이트했던 적이 있더랬다.

그리고 나... 결혼 전 연극영화과 친구 영향으로 단편 몇 편 출연했던 배우...?!


어벤저스가 이런 것이로구나!

기획하고 촬영하는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문적인 손놀림들, 합이 착착 맞는 속도감, 다들 나의 분노를 함께 느끼며 나중에는 어떤 사명감으로 제작하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들~)

잊을 수 없는 영상 제작을 마무리하고 발표하는 날, 그 어느 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퀄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 영상이 어느 그룹사에서 사내 방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부서장이 그것을 볼 가능성도 몇 프로인지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나 혼자 꾹 안고 있던 분노와 상처를 조원들이 함께 보듬어주고 영상까지 남기게 되니 한순간 치유가 된 것 같았다.

그 뒤로 악몽 같았던 그 기억도, 이죽거리는 부서장의 표정도 이상하게 그렇게 힘들게 작용하지 않았다.

소심하지만 나름대로 통쾌한 복수라고 스스로 인지했나 보다.


마음의 자유함을 얻고 부서장의 협박도 더 이상 나에게 자극이 안 되어 신나게 일하던 어느 날.

천사 같은 첫째 아이가 선물처럼 내 품으로 왔다.

입사 9개월 되던 가을이었다.

사업부에서 힘들게 지내기보다는 뱃속 아이를 위해 공부(?)하는 연구소로 부서 이동을 권하는 친한 지인들 덕분에 운 좋게 컨셉연구소로 옮겼다.


아뿔싸!

편할 줄 알았던 이 연구소에서의 현실은 정 반대였다.

뱃속에 아이를 키우면서 늘 새벽에 퇴근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 편하게 하니 힘든 줄 몰랐다.

지금도 가까이에서 삶을 나누는 당시 팀장이었던 언니가 나보다 꼭 1년 늦게 출산을 했다.

그리고 출산하자마자 나에게 임신 기간 동안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일 조절 못해준 걸 진심으로 사과하더라.

빙긋 웃기만 했다. (그래도 그때 제일 재밌었어, 언니^^)


늘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막달까지 달렸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싫어하는 사람 밑에서 일할 때는 홀몸이라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가족 같은 팀원들과 함께 하니 아무리 새벽까지 일을 줘도 슈퍼 임산부가 되어 다 해냈다.

*월 2일부터 쉬려고 1일까지 꽉 채워 일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저녁 배가 아프더니 출산 휴가가 시작되는 2일에 우리 천사는 세상의 빛을 보았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던 이유 때문일까?

산후조리원에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옆에 웬 생명체가 어디선가 뚝 떨어져 놓여있는 게 아닌가.

뱃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내 몸에서 분리되니 굉장히 낯설었다.

그리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마도 태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 미안함, 이런 원숭이 같은 얘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하나 싶은 두려움, 무통주사 없이 고집 세워 견딘 22시간 극도의 진통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 등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분명 내 손으로 잘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직장 여성의 비애가 이런 것일까.

아니, 우리 엄마가 직장 나가실 때 그렇게 싫었잖아! 다 기억나잖아!

그걸 알면서도 내 아이에게 그대로 하는 나도 참 답이 없네...


딱 90일의 출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함과 동시에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해서 자존감 바닥에 늘 허덕거리는 직장맘이 되었다.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7>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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