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데카솔만 덩그러니
2022년의 끝자락이다.
유행처럼 남들 하는 것 나도 한 번 해보고자 한다.
한 해를 결산하기.
올해 가장 큰 이슈를 떠올려본다면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할머니의 소천이다.
사실 건강하시다가 폐렴으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고 열흘만에 돌아가셔서 말 그대로 뭔가 거센 폭풍우가 잠시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병실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쉰 할머니의 손이 점차 식어가고 엄마 아빠는 여기저기 분주히 전화를 하셨다.
장례식을 치를 병원으로 또 바삐 할머니를 순식간에 모신 후 텅 빈 병실을 정리할 때였다.
낮에 새로 산 마데카솔이 눈에 띄었다.
누워만 계신 할머니의 엉덩이가 짓물러 간병인이 자주 발라주며 하나 더 사 오라 했던 그것이다.
왠지 덩그러니 놓인 그 마데카솔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 <생명의 삶>이란 책을 읽는데 <당신들의 천국>을 쓴 이청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2008년 암으로 세상을 뜨기 전, 2007년에 거의 다 써가는 면도 로션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는 인터뷰 기사가 났다고 한다.
보통 유통기한이 2~3년인 화장품을 살 때 궁금하긴 하다.
이 날짜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하지만 안 올 것 같던 그 날은 거짓말처럼 온다.
게다가 어디 처박혀있던 그 화장품은 다 쓰지도 못한 채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다.
그런 나에게 물건을 사면서 '내가 죽기 전에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인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할머니의 마데카솔이 떠올랐다.
새 포장을 뜯지도 못한 채 할머니가 떠나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
질병 혹은 급작스런 사고로 인해, 이것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유한한 삶의 끝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누군가의 끝날을 뚫고 내일을 맞이한다.
너무나 당연한 내일이 아니라, 값없이 선물 받은 내일이다.
이러한 소중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결산이란 걸 해보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하찮아 보이던 내 지난 시간에 라벨링을 하면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작업.
그럼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과거의 나하고만 비교가 되면서 진정한 나의 발전으로 이어갈 수 있다.
그럼 또 그렇게 별로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선물 같은 시간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생각들로 채우면서 낭비하지 말자는 얘기다.
나에게 외치는 다짐이기도 하다.
두 팔이 온전할 때 요즘 혼내기만 하는 우리 사춘기 두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고 두 다리가 온전할 때 많이 걷고 운동도 하며 (노안이 와서 좀 우울하지만) 그래도 두 눈이 온전할 때 미뤄왔던 공부나 독서를 꼭 해야겠다는 다짐.
가벼운 상처로 아픔을 느끼며 호호 불면서 마데카솔을 바를 수 있을 때...
살아있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우리의 복인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를 멋지게 라벨링하고 내년을 꿈꿔본다.
m.Cl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