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입시생을 키워봐야 진정 부모가 된다
2025년 11월 불수능을 본 아이와 한 방에서 밤새 아이의 한숨을 들었고,
동시에 발표했던 수시 1차 합격발표에서 광탈의 쓴맛과 1차 합격의 단맛을 하루에 다 봤으며,
11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꼬박 1차 붙은 학교 면접준비를 하며 실제로 면접 보러 쉬지않고 차를 달렸고,
12월 첫 주, 수능성적표를 받으며 또 좌절했다. (등급 이거 맞아?!)
그러나 전쟁은 그다음 주부터였다.
수시 최초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어느 하나라도 붙은 곳이 없었다.
수능날 들었던 아이의 한숨보다 더 짙은 한숨이 아이를 덮쳤다.
그러나 수능도 기대만큼 본 게 아니라서 정시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아이는 뭐라도 추가합격 소식이 있어주길 바랐다.
가고 싶었던 대학들은 예비번호도 못 받은 불. 합. 격이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모대학 치의예과가 예비 앞번호였다. (엥?!)
열심히 지난 10년간의 추가합격 추이를 살펴보니 평균 7명 정도 충원을 한 것이 아닌가?!
챗GPT도 걱정 말라는 듯, 합격할 확률이 80~90%라고 한다.
원래 사람 기대하게 하면 앙대...
추추추합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입장에서 꼴랑 2명만 충원되고 똑 떨어져 버리니, 기대한 만큼 허무하고 온몸이 쑤시며 화가 나기도 했다.
결국 불수능 때문이었다.
메디컬의 수능 최저를 못 맞춘 최초합격 친구들이 더 좋은 학교로 가지 못한 채 죄다 등록해 버린 것이다.
차라리 예비 뒷번호를 받거나 아예 받지를 말지, 몇 날 며칠을 안타까움에 잠을 못 이뤘다.
대신 안정권으로 지원한 두 군데가 추가합격이 되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시름 놓은 것 맞나? 싶게 주변 친구들 중 아이와 같은 학교 된 친구들은 바로 재수학원에 등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심지어 주변에서도 메디컬을 아쉽게 떨어졌다는 얘기에 바로 "반수 하겠네~"라는 반응이...
정작 아이는 이 학교 다닐 거라고 해도 "응~ 처음에는 그러다가 5~6월 되면 반수 하겠다고 할 거야~"라고 선배 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피드백이 상처가 되지?
절대 재수는 없다고 외쳤던 엄마 눈치를 보나 싶어 아이에게 "너 반수 할 마음 있어?"라고 물어보니 아이마저 상처를 받는다.
"엄마도 저에게 실망하셨어요?"
수시 합격의 기쁨이 마치 납치의 아쉬움으로 바뀌어버린 느낌이었다.
(정시로는 수능점수 경쟁력이 없어, 결코 납치가 아닌데도 말이다.)
나도 아이도 가족 모두 시큰둥한 겨울을 보내며 그렇게 2026년을 맞이했다...
아이는 대학 입학식도 안 했는데 지금 몇 개의 수업을 대학교에서 벌써 수강중이다.
대학 1학년 때 도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를 예비 수업에 밀어 넣었고, 감사하게 아이는 나에게 설득당하여 1월 2주간 이 추운 날씨에 매일 아침 빠짐없이 등교하여 졸리디 졸린 과학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며 고등학생처럼 제출하고 있다.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대치동 김승리 국어 선생님이 그러셨대.
어머님들, 어머님들 세대의 30년이 지금 1년과 맞먹습니다."
많은 생각을 자아내는 말씀이다.
이제는 주저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당장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내 상황을 가장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그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게다가 AI 때문에 학력의 영향력도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네가 가고 싶은 전공을 하기 위해 열심히 그 대학에서 달려봐.
아무리 찾아도 못 찾거나 겨우 찾은 것이 부득이하게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땐 너의 선택을 믿고 지원해 줄게.
그리고 못 찾더라도 찾으려고 노력한 그 궤적은 헛된 것이 아니라 너의 선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니 걱정 말고 그저 적극적으로 내디뎌보자."
아이는 수강신청 시간표 짜면서 나에게 공강 없이 5일 모두 가야 한다며 귀엽게 투덜댄다.
게다가 요즘, 문제의 우리 둘째.. 자기 동생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느라 제법 선생님의 면모를 보인다.
(과외비 두둑하게 주며 모시고 있습니다!)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고 축 늘어지거나 주변에서 진심으로 축하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주눅 들지 않음에 감사하다.
이것도 첫 아픔이라면 아픔일까?
분명 아이를 성숙하게 만드는 영양분이 될 거라 믿는다.
지난 3년, 지옥 같은 전사고에서 너무 고생했고, 그래도 이탈 안 하고 잘 이겨냈으며, 지금의 네 모습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진심으로 살아내는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전쟁 같은 입시 뒤안길에서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한 걸음 나아가는 아이의 대학생활이 자못 기대된다.
m.Cla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