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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Apr 08. 2022

라이카는 잠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까

완벽한 하루에도 정답이 있다면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라 바로 일기를 쓴다.”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오랜만에 일기를 썼던 날이다. ‘특별한’이라고 시작한 일기장을 읽으며 그때가 완벽한 하루였지 않았나 싶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마치 우주 행성에 누워 별자리를 새어보는 우주인이 된 듯 신비로웠다.


남해 한달살이를 했을 때, 다른 친구들과 트레킹을 마친 후 샤워를 하고 나왔을 참이었다. 룸메이트였던 름이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밤 중에 어디 가냐고 묻자, 그는 별을 보러 간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설렜다. 사실 별 사진을 찍고 싶어서 삼각대를 두 개나 챙겨 왔었던 나였다. 같이 가고 싶다는 말에 름은 나라면 당연히 좋다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다른 친구 금도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 여자 셋이서 삼각대와 마이크 장비를 바리바리 들고 밤사이를 헤치며 돌아다녔다. ‘도대체 어디야?’ 불안 섞인 내 말에 둘은 수상하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라며 속삭였고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 (나를 놀리는 기분이 들었던 건 두려움이 너무 컸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묘한 긴장감을 안고 끝 골목에 다다랐을 때, 나는 마침내 행성에 닿은 우주인처럼 들뜨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옅게 깔린 물안개와 나무 사이로 무수히 많은 별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두 눈의 좌우부터 위아래까지 빼곡한 별 무리. 파노라마처럼 얕게 포 떠진 밤하늘의 별 때문에, 지구가 둥글다는 게 저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과장이나 흔한 비유법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하나의 별빛 돔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감탄과 사실의 발견. 우리가 최초가 아니라는 사실에 슬픈 뿐이었다.


최초로 우주에 간 개 라이카도 아주 잠시나마 그곳에서 나와 같은 황홀을 느꼈을까. 위성 궤도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그러니까 우주 장비의 결함으로 과열이 오기 전에 말이다. 우주에 펼쳐진 수천억의 별을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어지러운 우주에 시선을 빼앗긴 채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는지.


가엾은 라이카에 대해 떠올리다가 눈을 떠보니 옆에선 얕은 물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끼룩, 드르륵 들려왔다. 어쩐지 우리만 빼고 너무 조용하고 어두웠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풍경 덕분에 무서움을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우리는 눈동자를 움직이며 별빛을 관찰했다. 금의 손가락 끝에는 별자리가 있었다. 저렇게 생긴 건 쌍둥이자리고, 옆에는 물고기자리, 아래는 전갈자리, 카시오페아, 궁수자리까지 있다고 알려줬다. 정말 그랬다. 빛이 너무 강했기 때문인지 희미하게 얇은 실들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별의 파장인지, 단순히 빛의 번짐인 건지. 별과 별 사이를 잇는 실선이 분명 보였다. 우리가 헛것을 본 걸까? 먼 과거의 사람들도 이런 빛의 퍼짐이 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어서 별자리가 만들어진 건 아니었을까.


"선조들은 이렇게 하염없이 누워서 이따금 재밌는 상상을 했을 거야. 지금 우리처럼. 봐봐, 저건 정말 물고기처럼 생긴 별이잖아"


내가 이런 시답지 않은 말을 했을 때도 름과 금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했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마주하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자연소리에 맞춰 름, 금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별에 대해서, 이 공간에 대해서. 모두가 행복하다고 웃었고, 감정에 인색한 나조차도 그랬다. 매일이 버티는 것이라고 냉소했던 우리 모두 살아있음에 감사해졌다.


우리 쪽으로 물이 점점 다가왔다. 이대로 영영 누워 있다가는 물에 잠겨 죽을 수 있는 속도였다. 나도 모르게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세상에 못 본 게 많다고 떠들어 댔다. 재밌는 반응이었다. 충만한 행복감과 살고 싶은 의지를 느끼게 해준 게 고작 별 때문이라니. 아니, 정말로 그 풍경을 누군가 본다면 같은 기분을 느꼈을 거다.


금은 소리녹음을 위해 마이크를 돌에 세웠다. 나와 름은 가져온 삼각대에 카메라를 연결해 별빛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전공한 름이 별 사진 찍는 법을 알려줬다. ISO 감도는 3200에서 3600까지, 셔터스피드는 30에서 20, 조리개는 8.0으로 돌려봐.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내 소니카메라를 연신 눌렀다. 결과물이 아니라 찍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것 또한 나에게 있어 작은 변화였는데, 그동안은 결과물 때문에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감도를 조절하고, 빛을 연구하는 과정, 사진을 찍는 행위, 그때의 풍경, 냄새, 느낌, 기다림까지 모두 좋았다. 앞으로 사진을 계속 찍게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찌르륵 풀벌레 소리, 물안개의 습기, 축축한 돗자리, 흘러가는 윤슬과 점점 차오르는 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름, 옆에서 녹음하는 금까지.


차가운 공기가 내 반바지를 휘저으며 맨살에 앉았다. 분명 깜깜한 밤인데도 푸른 그라데이션 배경처럼 느껴지는 묘한 하늘이었다. 눈동자에 파랑과 검정의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이 총총 박혔다.

나는 잠시 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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