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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Mar 21. 2022

자연이 내게 물었다.

나의 정원,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넓히는 일.


산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 언덕만 넘으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거냐고. 

두 발을 교차하며 언덕을 오를 때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흘렀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호흡이 가빠질 때쯤 머릿속에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나 자신을 다독이며 해낼 수 있다고 응원했다.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걸 알기에 간절했다. 남들보다 체력이 없었기에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언덕을 올랐다. 마침내 나는 5시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푸른 고사리로 가득했던 남해의 고사리밭길. 언덕 정상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무탈한 행복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트레킹에 도전했을 무렵, 심적으로 지쳤던 내가 ‘개고생’이 하고 싶어서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걷기 시작했다. 비탈길을 걷고, 나무로 둘러싼 숲길을 걷고, 윤슬이 비치는 해변을 걸었다. 지독한 언덕길을 몇 번이고 마주할 때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튼튼한 두 발이면 된다고 자신했지만, 생각보다 저질 체력이었던 나는 남들보다 두 배로 더 힘들었다. ‘내가 넘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확신으로 변해갔다. 죽어있던 육체에 생명이 깃드는 기분이었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대자로 뻗어서 가쁜 호흡을 느꼈다. 세포 하나하나가 춤을 추는 듯 요란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볼을 손으로 만지자 숨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몇 번이고 도보여행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나는 걷기 위해 남해에 남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걷는 것은 걷기가 아니다. 잠식된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나는 걸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느끼는 감각을 발견하고, 나를 찾을 수 있었다. 

평소 감정에 무딘 편이라 슬픔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행복감도 잘 느끼지 못했다. 낯선 이들과 남해살이를 했던 작년, 주황빛으로 온 세상이 물들었던 날, 일몰을 보며 그들은 울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세계를 내려봤을 때도 그들은 눈물 흘렸다. 그 모든 이유가 자연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눈물까진 나오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난 순간들이 있었나.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도 찾아온다면 살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보며 신기해하던 내가, 이곳에서 자연을 거닐 때마다 애쓰지 않은 행복감을 느낀다. 연신 ‘행복하다’라는 말을 내뱉게 된다.


내가 그 말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했던 날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행복’의 영역은 자꾸만 좁아졌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서, 소비와 술자리만이 즐거움의 전부가 될까 봐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물건을 살 때마다 화가 났다. 쇼핑, 옷이나 신상품, 최신 기기에 별로 관심이 없던 탓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번 돈의 대부분은 저축했었고, 나머지는 책과 취미생활에 투자했었다. 그게 전부였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힙한 카페나 거리 같은 일명 요즘 뜨는 곳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자연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남해에 산다고 해서 매일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연을 탐구할 수 있고, 온몸으로 행복을 배울 수 있다. 어쩌다 한번 마음먹고 자연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계획된 자연 탐방은 가기도 전에 피로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나의 정원에는 삶을 자연스럽게 탐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연을 느끼는 것.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 자연을 걷는 것은 세계를 넓히는 일이고, 그것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흙으로 푸석거리는 운동화, 무게감이 느껴지는 배낭, 여러 겹 껴입은 옷. 자연스러운 맨 얼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지어진다. 나답게 사는 일은 나다운 세계를 갖는 것.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세상에 감사할 것. 인간은 자연스러운 행위를 통해 살아가는 것임을 배운다. 


자연이 내게 물었다. 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냐고. 

나는 대답했다. 매 순간 당신을 느끼고, 사랑하고, 교감할 거라고. 이 모든 행위를 끌어안고 내 방식대로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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