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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Mar 24. 2022

개를 쓰다듬는 방법

반려동물과 나


본가에 살았을 때 오후가 되면 매일 공원에 나갔다. 산책이나 운동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진짜 내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건 견주와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강아지에게 찡긋거리는 시그널을 보내면 어떤 강아지는 헥헥하고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어쩔 땐 시그널이 잘못 빗나가 견주에게 닿으면 서로 머쓱한 웃음만 짓는 일도 많았다. 꼭 공원이 아니더라도 도로 한복판이나 신호등 반대편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만나면, 연신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게 작은 취미였다. 견주에게는 제 자식이라서 함부로 쓰다듬거나 아는 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애틋한 눈빛만 보내곤 했던 것이다.


아주 운이 좋은 날에는 절절한 내 눈빛을 주인이 알아차리고 ‘만져도 돼요!’하고 신호를 주기도 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고 ‘정말요?! 감사합니다!’하고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곤 했다. 처음에야 멋모르고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털을 마구마구 헝클어놨다. 이제는 가벼운 주먹을 쥐고 아이의 코에 조심스럽게 갖다 댄다. 킁킁거리는 두 코를 연신 훔쳐보다가, 조금씩 조금씩 털을 만져본다. 꼬순내도 슬쩍 맡아본다. 강아지들은 자기를 예뻐하면 단번에 아는 것 같다.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활짝 웃는 강아지를 보며 덩달아 웃는다. 헤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활짝 핀 두 손을, 아이는 꼬리를 동그랗게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그날 하루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할 거야- 하고 흡족하게 웃곤 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도 그랬다. 츄르나 참치캔을 들고 다니거나, 편의점에서 급하게 사 와서 먹였다. 집 근처 고양이에게는 사료와 물을 챙겼고, 겨울엔 집을 마련해 주었다.

어느 달에는 동물 한 마리 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친구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강아지, 고양이, 혹은 닭일지라도 상관없이 동물을 키운다면 만사 오케이였다. 사실 나는 수험생 시절에 ‘동물학과’에 가고 싶을 만큼 동물에 진심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반려동물과 친해지다 보면, 친구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 ‘너 이러려고 온 거야?’하는 외침만 있을 뿐.


세상 모든 동물은 친구, 아니 가족 같았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양이를 보는 일도, 작은 치와와가 왈왈 짖어대는 모습도 모두 한결같이 사랑스러웠다. 가끔씩 미래를 그리다 보면, 다양한 동물에 둘러싸여서 웃음 짓는 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동물'은 생명체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존재였다. 처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도, 내가 맹목적인 헌신을 하게 된 계기도, 안타까움과 슬픔의 깊이를 알게 된 것도 모두 그들의 덕분이었다. 그들과 함께할수록 가끔은 불안이 커지기도 했다.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수 있을까. 문득문득 상실을 짐작하다가 상상조차 두려워져 옆에 누워있던 동물을 껴안았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키우던 반려 닭이 세상을 떠났다. 동네 병원에서 병 진단을 잘못해서 모르고 있다가, 큰 병원에서 제대로 된 병명을 알게 되었다. 다리가 점점 약해졌고, 혼자서 내려오지 못할 만큼 아팠다고 했다. 친구와 가족이 유모차에 태워서 잘 케어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무도 보지 않았을 때 혼자 내려왔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친구 집에 병아리가 처음 왔을 때부터, 이름을 지어주고 점점 ‘닭’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나였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반려동물이 없는 집에 있기가 무섭다면서 남해에 와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담담한 말속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애써 가벼운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우연히 길을 가다 작은 케이지 안에 바글바글 쌓여있던 토끼들을 봤었다. 그때 유난히 동그란 눈을 가진 한 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너무 작았던 그 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비췄다. 작은 생명의 간절함을 지나칠 수 없어 그와 함께 살게 되었다. 피피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매일 함께 잠을 자고, 내가 부르면 저 먼 거실부터 촐랑촐랑 달려왔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개인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고, 가장 좋아하는 베란다 구석에서 낮잠을 잤다. 집 뒷동산에서 뜯은 아카시아꽃과 씀바귀는 그 애의 주식이 되었다.


어느 순간 피피는 가족들과 나를 피해 잠을 잤고, 축 늘어지는 시간들이 많았다. 여름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자 곧장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를 받는 동안 저항 한 번 하지 않은 그 애를 보며 신에게 기도했다. 내가 무교가 된 건 그 일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호흡기를 달고 있는 피피 앞에서 의사는 말했다. 폐렴입니다. 아니 이때까지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억울했다. 의사는 슬픈 건지 덤덤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토끼는 원래 그렇다고. 갑자기 폐렴에 걸릴 수 있고, 생존본능 때문에 티가 잘 안 난다고. 위로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듣고 허망했다.


오늘 밤이 고비라는 말을 듣고 피피를 품에 안았다.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달리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피피를 살폈다. 축 처진 어깨는 그대로였다. 집에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어깨가 뒤틀리고 경련을 일으켰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너무 놀라서 그대로 울기만 했고, 엄마가 피피를 품에 안았다. 요란한 움직임이 그친 후 작고 하얀 피피가 세상을 떠났다. 집 근처 산에 아이를 묻었고, 그날 밤은 잠을 자지 못했다. 1년 동안은 모든 일상에 그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울었다. 밥을 먹다가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었다. 꿈에 나와서 울고, 꿈에 나오지 않아서 울었다. 그리워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사랑해서 울었다. 내가 왜 그렇게 어렸을까, 왜 아픔을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모든 시간은 죄책감과 후회 투성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아주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었다. 피피도 분명 우리 덕분에 행복했을 거라고. 좁은 케이지가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고. 조금은 미안함을 덜고 옅은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이 벌써 몇 년 전 일인지. 아픔은 남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가 온다면, 내 모든 마음을 동물에게 주고 싶다. 다시 사랑할 수 있으니 나를 믿어 달라고. 피피와 친구의 반려 닭, 산책 나온 강아지와 동네 고양이를 떠올리면서.


개를 쓰다듬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진심 어린 애정과 사랑, 믿음의 손짓과 눈빛이 필요하다고. 나도 정답 없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애정을 주고 싶다. 어쩌면 내일은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 집에 놀러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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