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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Dec 28. 2020

올해의 키워드, 코로나가 아니고

취준생 말고 다른 신분은 안 될까요



2020년은 뭔가 다를 줄 알았다.

평범한 숫자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19보단 20이 안정적이지 않은가. 


사실은 진짜 큰일이 났다. 대학생, 어디서든 도망치기 좋은 신분을 벗는 날. 졸업 작품으로 엄마를 위한 <보통의 51살> 에세이를 마무리 짓고 나니 어느새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내 인생의 줄거리는 누가 요약해줄 수 있을까. 4년의 대학 신분은 비싼 등록금만큼이나 꽤 달콤한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스스로 대견했다. 2월이 끝날 무렵, 제법 의기양양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꿈꿨다. 인턴도 하고, 회사도 들어가고, 그게 아니면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계획대로 살고 있겠지 하는 꿈.


사회 초년생이란 보기 만에도 쓰지만, 꼭 갖고 싶은 타이틀이 아닌가. 백수, 아니 취준생한테는 그렇다. 명찰을 메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 같이 몰려다니며 식당을 기웃거리고, 카드 뽑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 그런 거창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일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할 뿐. 딱 그 정도의 환상을 품고,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자소서를 썼다. 많이 쓰지도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작정 (아니 쓰다 보니 더 간절한 마음으로)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회사를 기웃거렸다. 정말 될 줄 알았는데, 나한텐 공백기란 없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취업 시장은 더 많이 어려웠고, 매번 탈락을 마시는 취준생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 일하고 싶은 건데…. 라고 한탄해도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회사 입장에선 나 같은 인재가 궁금하지 않나보다. 토익 몇 점, 컴활 몇 급,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난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런 건 취준에 필요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취업, 아니 인생 고민이 시작되었다. 유년시절부터 이런 자잘한 인생이 항상 고민스러웠다.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몇십 권의 자기계발서, 에세이를 읽었다. 유튜브가 나타난 후로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인생 강연, 성공의 법칙 강연 따위를 돌려보기도 했다. 수많은 정답을 헤집었지만, 사방으로 흩어진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순 없었다. 진짜 나는 밖에 없었으니깐.



나는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회사에 꼭 들어가야 할까?



꼬리를 무는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도저히 아무 곳이나 취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지저분한 에세이는, 인생의 답을 찾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이다. 2020년은 유달리 짧고 길었다. 지겨운 장마 같기도 했고, 나무에 응겨붙은 안개 같기도 했다. 이 지독하고 사적인 고민에 바이러스까지 엉겨 붙었지만, 나는 계속 나아가야 했다. 올해의 진짜 키워드는 <딴짓하는 취준생>, 새로운 세계를 직접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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