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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Dec 30. 2020

주입식.. 장래희망을 아시나요

광고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세뇌하던 고3

—자기 취향 하나 없었던 평범한 고등학생의 입시 이야기.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고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1. 후회 없이 살자

2. 등록금 뽕 빼자

3. 무작정 하자


이 단순한 조합을 지키기 위해 대학 생활을 아주 바쁘게 만들었다. 이 학과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을까.

고등학생 때도 항상 열심히 하던 학생이었지만, 딱히 뛰어난 얘는 아니었다.


경쟁보단 서로 알려주는  좋았고, 가르치기보단 설명해주는  좋았다. 시험보다 공부하는 자체가 좋았고,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사실 학교 다닐  공부를 좋아했지만, 성적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돌려 말하는 중이다. 노력도  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곳은 성적이 특별함의 상징이었다. 우등반, 우수반 같은 특별함. 어쨌든 나는 학교가 기대하는 특별함은 없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장래희망 쓰는 종이에도  마지막에 겨우겨우 적어 냈던. 우리  애들한테 설문조사를 했었다. 너네는 도대체 장래희망을 어떻게 정한 거야?  일이  하고 싶은데? 꿈을 어떻게 꿨는데? 하는 질문을 쏟아냈고, 애들은 저마다의 답을 건네줬다. 그냥, 부모님이 좋다고 해서, 너무 하고 싶어서, 그냥 적어, 대충 적으면 .


나는  당시만 해도 잡생각이 많은 학생이었기에 그런 답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 아무거나, 2 그럴듯한 꿈으로, 3... 대학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앞서 말했듯이 지극히 평범한 학생은 학교가 아닌 다른 길로  생각을 꿈꾸지 못한다. 자퇴라던가, 대안학교라던가, 대학교에  간다거나, 나만의 꿈이 있다거나 하는 거창한 계획 따윈 전혀 없었다. 아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가면 뭐하냐는 불안함은 나만 그런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3,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나는 '급하게' 꿈을 정했다. 이제부터 나는 광고 기획자가 되어야지. 그건 무한도전을 좋아해서 티비를 자주 보던 탓에 우연히 발견한 공익 광고를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순간 '광고 기획자를 오랫동안 꿈꾸던 학생'으로 몰입되었고, 어느새 정말로 광고 기획자가 되고 싶을 만큼 간절해졌다.


<광고 천재 이제석> 책은 당연히 읽었고, <광고인이 말하는 광고인> 읽었고, 일말의 꿈을 실어준 '공익 광고' 찾아보고, 감동적인 광고는 리뷰도 했다. 이정도면 광고인을 꿈꾸는 학생다워. 성공적인 합리화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광고 기획자가 되기 위해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대충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같다. 정시는 절대 아니고, 수시로 가야 하긴 했는데. 도통 입시 제도를 몰랐다. 정보가 하나도 없었고, 가족들은 모두 프리한 사람들... 아니 방목형인가? 혼자서 대학을 가야 했다. 급하게 알아보니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있다고 한다. 그걸 고삼  아는 고삼이 어딨어. 이미 반은 망한  같았다.


다행히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경쟁보다 다른 놀이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글짓기 대회, 서평대회, 토론 동아리 같은 활동들. 그냥 무작정 나간 것들이 횟수가 늘어나자 상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런 딴짓(?) 생기부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급하게 자소서를 썼다. 살면서 정말로 간절하고,  간절했던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노트북을 책상에 올려 두고 자소서를  휘갈겼다. 선생님이 황당해하며 지적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대학가야 해요. 죄송합니다.


체육 시간에도 아프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책상에서 자소서를 썼다. 끼니는 절대 거르지 않았던 내가 급식까지 안 먹으니 애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슬쩍 주입했던 '광고기획자'는 어느 순간 너무 간절해져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이쯤이면 광고를 만들고 싶은 건지 대학을 가고 싶은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게 준비한 자소서와 학종을 들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난생처음 봤던 면접은 너무 떨어서 떨어졌다.그리고  번째 면접은 그냥 그랬다. 면접자인 나보다 우리 지역에서 벌어진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듯해서 기분이 나빴다. 근데 붙었다.  번째 면접은 제일 가기 싫었던 학교였다.  봐도  모르던 학교였고 왠지 이름도 별로였다. 그래도 붙고 싶었다.  처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와서 대기만 4~5시간을 했다.


 마지막 면접자로 면접을 봤다. 배가 너무 고팠고, 긴장은  풀려버려서 면접에 들어가자마자 교수님한테 앞에 있는 과자를 달라고 했다.지금 생각하면 당돌하고 어이없지만, 그때는 배도 너무 고프고 오래 기다려서 화가  있던 3이었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교수들에게 뺏은 과자를 손에 잔뜩 들고, 어둑해진 건물을 빠져나왔다.그리고 이게  학교가 되었다.그렇게 광고 기획자로 거듭나겠구나 싶었지만, 웬걸, 정작 학교에 들어오니 광고를 배우는 수업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영어만 잔뜩 쓰여있는 PR수업뿐.


1학년 내내 영상만 주구장창 과제로 받았다. 그렇게 광고와는 점점 멀어진  영상 제작자가 되어갔다.그리고 정말로 나는 영상 PD 되고 싶어졌다. 새내기 때부터 영상 공모전을 나갔다. 물론 진짜 목적은 상금이었지만. 어쨌든 전공 수업에서 여러 편의 영상을 만들고, 공모를 나가고, 좋아하던 유튜브 채널 PD에게 메일을 보내 인터뷰까지 했다. 이후 동기  명과 스낵 컬처를 다루는 영상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교내 창업지원을 받아 운영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이렇게 간절한 꿈은 정말 영원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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