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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Mar 12. 2022

삶의 양감과 부피를 늘리기 위해서  

나는 뭐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되고 싶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양귀자 <모순> 15p-



하루에도 여러 번의 감정이  몸을 넘나 든다.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하며 새벽의 상념을 털어내고, 곧바로 주방으로 향해서 널찍한 요거트볼에 보이차를 이따금 채운다. 하얀 원형 탁자에 앉아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음미하다 보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을 느낄  있다. 얕게 내려앉은  공기와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새소리,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좋아하는 노랫소리에  기울여 본다. 요즘 나는 끝자락의 겨울과  사이에서 복잡함을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색한 미묘함이 좋기도 하다.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서 나답게 살고 있다는 의지를 느낀다. 우연한 계기로 남해살이를 시작했고,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거창한 계획을 안고 지역살이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으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만 함을 간절히 느끼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화 행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기획자’였다. 그 외에 영상이나 취미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밥벌이를 했었다. 부족함도 많이 느꼈다. 단순히 생계 때문에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다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올해를 넘어오면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닐 때는 몸과 마음이 쉽게 피로해졌다. 분명 좋아한다고 믿었던 업무를 해내면서도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는 듯해서 어찌해야 할지   없었다. 그때 나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갈망과 눈을 맞추게 되었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라는 순수한 욕망을 꺼내 보고자, 회사에 다니면서 매일 글을 썼다. 2시간의 통근 시간에 독서를 했고, 퇴근 후에는 필사했다.  편의 콩트 글을 써서 백일장에 내는 도전도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글을 쓰면서 평생을 살고 싶다고 마음먹게  .


사실 유년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었다. 교내 백일장 대회에 가끔 나가 글을 쓰곤 했는데, ‘대회 그저 글을 쓰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재미 삼아서 카페에 단편 소설을 여러  올리곤 했었다. 물론 연재를 하다가  다른 소설을 쓰느라 매번 끝을 내지 못했지만. 순수한 창작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글쓰기와 독서는 나에게 귀중한 영감이 되어줬다. 3 내내 독서토론동아리를 했고, 백일장에 나갔고, 도서관 서평 이벤트에 매일 참여하는, ‘딴짓하는 고등학생으로 활약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글은, 항상 함께했던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조차 품지 못했다. ‘감히 내가라는 말이 은연중에 심어졌던  같다.


다행스럽게 창작을 하고 싶다는 순수함은 있었던 건지, 콘텐츠를 만드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영상으로 시작했던 전공은 몇 번의 경험을 거쳐, 좀 더 나다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화 프로젝트’를 실험하는 것.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시작한 전시나 공연, 워크숍 등이 새로운 업을 찾게 도와주었고, 그렇게 나는 ‘문화 기획자’가 되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일이 아니라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다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했다. 그 속에는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이 묻어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 모든 일이‘수단’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남해에 처음 왔을 때가 작년 6월이다. 6주 동안 여행을 하고 8월에 집 계약을 끝내고 전입신고를 했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의아해하며 남해에 왜 왔는지 궁금해했다. ‘뭐 해 먹고 살 건지’라는 물음이었다. 뭐 하는 사람인지 나를 소개하는 자리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전 직장을 들먹이면서 ‘문화 기획자’라고 소개했고, 직업에 걸맞게 그러한 일들을 시작하면서 나의 입지를 알렸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이름으로 나를 소개할 때면, 입안에서 상처가 난 듯 성가신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나.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는 직업이라던가 장래희망 따위를 갖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것뿐인데, 왜 사람들은 뭐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안고 학창시절을 넘어왔던 나였다. 기획자-라는세 글자에 나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다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뭐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글을 쓰는 행위가 내 삶이 되고, 나를 마음껏 표현하고, 내가 만든 세계를 누군가 읽어주길 바란다. 글을 쓰고, 나다움을 실험하는 행위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시도의 부산물이 글 혹은 책이 될 수도 있으며, 전시, 공연, 네트워크 모임, 혹은 트레킹이나 여행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기획자, 혹은 글 쓰는 사람으로 정의 내려 한계를 짓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떤 형태로든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글쟁이로 산다는 건 두렵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그런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들을 볼 때면 애정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고, 내가 쓴 글은 너무 부족하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많다. 그걸 받아들이고 나서부터는 다른 이들의 세계를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 세계를 천천히 그려가고 싶다.  내 삶의 부피와 양감을 늘리기 위해 글을 계속해서 쓸 것이다. 언제가 내가 보고, 느끼고, 떠올렸던 모든 것을 글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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