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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일요일] 나 숨차 보인데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by modip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은 다재다능하다. 열정적이다. 멋있다고 말해주었다.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나의 장점이나 내세울 점이었다. 에세이 책을 출간하고, 독립영화 촬영을 마친 10월 중순, 다음 달에는 무얼 해 볼까 고민하는 내게 누군가 말했다. '수빈 씨는 다양한 걸 해오셨네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숨이 차보이기도 해요. 안 그러세요?' 처음 들어보는 말에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그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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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해 온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져주었다.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채찍질하는지, 나의 어떤 점이 싫어서 어떤 내가 되고 싶은 건지, 힘든 순간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답하기 어려운 사실에 놀랐다. 숨이 차보인다는 말에 내 오른쪽 눈에 눈물이 흘렀다. 갑작스럽게 고요해진 침묵 속에서 왼쪽 눈물이 연달아 흘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입으로 들어가 짠맛이 느껴질 때까지 나는 내가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다는 말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쉽게 멈추지 않는 눈물을 휴지로 막으며 우리는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내 삶의 가치는 행복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사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의 정의를 내리진 못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행복은 뭘까. 잘 살고 싶은데 그래서 잘 사는 건 어떤 걸까. 돈이 많지 않아도 소소하게 살아가는 목표가 있지만 왜 나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할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왜 못난 내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수만 가지의 충돌되는 생각들이 쌓여만 갔다.


모 아니면 도.

나는 '모'가 확실할 때만 도전하고, 애매한 중간은 겁부터 먹는다. 노트 필기를 하다 실수를 하면 화이트로 지우는 것도 싫어서 한 장을 찢어버리고 새로 다시 쓴다. 일기를 쓰다가 하루라도 밀리면 실패라고 생각하며 포기해 버린다. 늦잠을 오래 자버리면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아예 하루를 빈둥거리며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하염없이 자책하며 불운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런 나를 그는 잠깐의 대화만으로 단숨에 파악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한심한 내 모습을 들켰다는 사실에 방어적이기도 했지만 그가 나를 변화시켜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자꾸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우는 부분인 거 같아요. 이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보면 어때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중간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시 이어가는 힘을 길러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나는 강릉 한 달 살기를 떠났다. 편안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 4인실에 홀로 생활하며 숙소 바로 앞 바닷가에서 웃고, 울다 지쳐 잠에 들 거다.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내 안을 풍부하게 채우고 올 거다. 상봉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도 많은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한 내 행동들을 반성하며 왜 그랬는지 회고하고, 느꼈던 감정들을 정의하며 새로운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마음과 뇌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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