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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17. 2022

다꺼행 _   5화. 크라이스트처치에 가면

공원을 선물 받아요

너무 늦지 않은 시각, 9시에 일어났다. 아침도 든든히 먹고 한껏 여유도 부려보며 시내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오늘도 숙소를 나섰다. 여느 때처럼 해글리 공원과 보타닉 가든을 지나 시내 쪽으로 산책하 듯 걸어갔다.


 오늘의 일정은 12시 타임의 2층 버스투어였다. 2층 버스는 영국의 빨간 버스가 유명하지만, 우리가 언제 영국을 갈지 모르기에 일단 여기서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 보는 게 여행의 모토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다. 요금은 어른 N$=69, 차일드 N$=35, 3살은 무료였다. 막내는 이곳 나이로 3살이니까 무료였고, 어른 2명과 어린이 1명의 요금을 내고 2층 버스에 올랐다.

2층 버스투어는 3시간 코스로 1시간은 오픈 버스 시내 투어를, 2시간은 크라이스트처치의 근교로 나가 바닷가와 대평원을 관광하는 오렌지 코스였다. 가이드의 설명은 당연히 영어였고, 영어에 서툰 우리 가족은 못 알아먹는 영어 때문에 제법 난감한 3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안구가 정화되는 듯한 자연 덕분에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시내코스에서는 어제 트램을 타고 다니며 잠시 느꼈던 대지진의 흔적과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생각보다 지진의 흔적이 넓게 퍼져있어서 어제보다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다행히 무거운 마음을 떨치기에 2시간의 근교 코스는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2층 버스의 신선함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잠 시였나보다. 근교 투어를 나간 동안 작은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어버리고, 큰아이는 그림 같은 풍경들에는 그다지 감흥이 없는 듯했다. 그냥 2층 버스를 타보았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아직 눈으로만 자연을 즐기기에 아이들은 어린것 같았다.


관광에 이어, 오후엔 캔터베리박물관에 가보았는데, 제법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은 적당한 기부금을 내고 입장을 하면 되었고, 아이들을 위한 디스커버리는 N$=2를 내고 들어가면 다양한 놀거리들이 많았다. 꼬물이들이 한 시간 정도는 거뜬히 놀 수 있도록 색칠공부나 퍼즐, 화석 발굴체험, 공룡이나 동물 피겨 장난감, 과학관련 책 공간, 곤충 박제 전시 등 다양한 체험거리나 볼거리들이 많아서 좋았다. 내가 아이들과 디스커버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 뉴질랜드의 여행객을 위한 방문자센터인 i-site에 가서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좀 알아보 왔다. 입장료에 비해 놀거리가 알차고 풍부했던 디스커버리는 아이들과 함께 크라이스트처치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타닉가든을 지나가려니 놀이터가 아이들 발목을 붙잡았다.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박물관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터라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 대신 커다란 나뭇가지를 그네 삼아 몇 번 타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커다란 나무에 비해 우리는 너무 작다고 생각해서 잠시 몸을 맡겨 놀며 즐거웠는데,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나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혹시 아프지는 않았을지...? 만약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해글리 공원과 보타닉가든은 크라이스트처치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선물 같은 곳이었다. 그곳의 풀밭에 누우면 안방처럼 편안했고, 그곳의 커다란 나무들은 아낌없는 주는 나무처럼 우리에게 많은 걸 내어줄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구름은 따로 전시회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으며, 그곳에서 마시는 공기는 비타민처럼 산뜻했다. 참 많은 걸 받았는데, 난 주고 온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미안해진다. 다만 꼭 다시 찾겠다는 약속은 했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도 못할 거면서 아주 자신 있게 손가락을 걸고 왔다.


우리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해글리 파크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벌써부터 아쉽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아직도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거리, 공원과 가든이 그 사이 정이 들었나 보다. 한 달 내내 이곳에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이곳을 내일까지밖에 못 있을 거라니 마음속은 벌써부터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매일매일이 여행이니 잠을 늦게 자려고 했다. 아이들의 컨디션을 보며 여행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첫 번째 숙소와 남섬에서의 렌터카 정도만 정해놓고 떠나온 여행이라 엄마 아빠가 매일 다음날의 일정을 알아봐야 했고, 도시를 옮기게 되면 그때서야 숙소를 알아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잠자는 시작이 늦어지니까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같아 가끔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너무 아쉬운 밤이라 더 잠들기 힘들었을까? 이제는 아쉬움이 가득한 밤을 담담하게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대신 낯선 장소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에 더 초점을 맞추어봐야 할 것 같다. 능숙한 여행자의  자질을 갖추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 봐야지... 우리의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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