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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21. 2022

다꺼행 _  6화. 無계획이 계획

완벽한 게 좋은 건 아니야

우리의 첫 자유여행은 무계획이 계획이었다. 가보고 싶은 도시, 그곳에서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것들은 대충 알아보긴 했으나, 예약은 하지 않았다. 예약한 것은 첫 번째 숙소에서의 2일과 렌터카 정도만 했을 뿐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의 컨디션을 봐가면서 도시가 마음에 들면 더 오래 머물기도 하고, 별로라면 훌쩍 떠날 수 있도록 계획을 잡지 않았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마지막 날이 될 줄 알았던 오늘 아침은 정신이 없었다. 체크아웃 시간은 되어 가는데, 우리가 있는 곳까지 픽업해주기로 했던 렌터카 회사에선 픽업이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들고서 하루 종일 다닐 없으니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에겐 예약된 다음 숙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걸까? 우리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그냥 하루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상황을 받아들이니 마음은 편안했지만, 몸이 바빠졌다. 아침에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으로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전 10시 5분쯤 International Antarctic Centre 국제남극센터에 가기 위한 펭귄 셔틀을 타야해서 남편은 작은 아이를 업고, 나는 큰아이 손을 잡고 여유롭게 걸어야 하는 해글리 공원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뛰었다. 이때 또 한 번 다행스러운 건 렌터카 회사와 국제남극센터가 같은 방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한 번에 일을 보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길어졌을텐데...


그런데 아뿔싸!!!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라고 했던가! 마음이 급한 나머지 국제면허증을 숙소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온 것이다. 원래는 함께 들어가 남극체험을 하고 나서, 택시를 타고 렌터카 회사로 이동해 차를 받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다시 돌아가 국제면허증을 가져와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고민의 순간이 너무 자주 찾아오는 듯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남편은 일단 렌터카 회사에 가보기로 하고, 나랑 아이들만 국제남극센터에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으로 낯선 곳에서 아이들과 나만 남는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여러 가지 체험을 하면서 아주 즐거워했고, 나도 그리 고생하지 않았다. 남극 탐험용 설상차인 Hagglund ride 헤글런드 라이드라는 아주 익사이팅한 경험을 했는데, 헤글런드를 타고 45도 각도까지 올라갔다가 갑자기 내려오고, 물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또 타고 싶다고 했으니 평소 즐기지 못하는 스릴 넘치는 경험이 제법 즐거웠던 모양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던 남편은 첫 번째 체험이 끝났을 즈음 돌아왔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으니, 렌터카 회사에 가서 상황을 얘기하고 차를 빌려왔다고 하는데,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남편의 영어를 그들은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남편은 국제면허증도 없이 말도 안 통하는 뉴질랜드에서 당당하게 차를 빌려왔다.

남편이 돌아온 후에는 나머지 체험을 함께 했다. 남편이 있으니 뭔가 더 든든하고 홀가분했다. 약 3시간 동안 우리는 남극에서나 느껴볼 만한 추위와 엄청난 바람. 뉴질랜드의 펭귄 구경, 4D 영화 관람, 남극 관련 전시관, 빙산 동굴 등을 체험했다. 어른들끼리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체험을 아이들 덕분에 해 볼 수 있었다.  



기동력이 생긴 우리 가족은 달리고 싶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프랑스풍의 바닷가 마을 Akaroa아카로아가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인기 휴양지이며, 뱅크스 반도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라는 아카로아는 뉴질랜드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인이 이주한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 풍의 아기자기한 예쁜 집들과 야외 카페, 수많은 요트가 한가로이 떠다니는 파란 바다. 그 곳에서 뉴질랜드인들이 금요일마다 먹는다는 fish & chips피시앤칩스도 먹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스케치북 삼아 그림도 그리며 놀았다.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여유를 즐기는 그곳의 여행자들도 만났다.


한가로운 아카로아의 바다


있고 싶었지만, 너무 많이 놀았나 싶다. 오른쪽 운전대가 아직은 어색할 남편의 운전이 걱정되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하는 게 안전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내일은 진짜로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나야 하니, 장도 봐야 했다.


그곳으로 오고 가는 드라이브 도중 나는 뉴질랜드의 자연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뉴질랜드의 자연이구나!!!  자동차를 타고 가니 바람처럼 지나가서 아쉽다고 생각할라치면 또다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탓에 아이들은 가는 길 차 안에서는 잠이 들어 이 장관을 놓쳐 아쉬웠는데, 다행히 돌아가는 길에는 잠들지 않아서 사방에 보이는 양 떼, 소 떼, 알파카들, 염소들의 동물구경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런 자연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만들었다.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던 여행에서 새삼 욕심이 자라났다.


너무 흔한 장면이지만, 절대 질리지 않는...


느지막이 도착해 동네의 큰 마트에서 필요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은 하루가 참 길었다 싶다.
아이들은 간단히 카레와 밥을 먹이고, 어른들은 4일 연속 소고기 먹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이 담백하고 맛이 좋았지만, 4일 연속은 조금 무리였지 싶다. 내일은 다른 메뉴를 찾아봐야겠다. 와인은 조금 달랐다. 술을 잘 먹지 못하고, 즐기지도 않는 나지만 저녁식사 때 조금씩 마시는 와인은 사람의 기분을 참 좋게 만들어 주었다. 뉴질랜드에는 맛 좋고 비싸지 않은 와인이 많아서 참 좋았다. 덕분에 와인의 기쁨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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