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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13. 2022

다꺼행 _   4화. 뉴질랜드 남섬에 도착하다

NZ 크라이스트처치 Day 1

3월 4일에 한국을 떠나왔는데,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작은 숙소에서 맞이한 아침의 날짜는 벌써 3월 8일이었다. 하루 전 7일에는 중국 상해에서 북섬 오클랜드로, 오클랜드에서 다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리저리 통통거리며 날아다닌 탓에 하루가 공중분해된 것 같았다.


아무리 비행이란 게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지만,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피곤한 일인 것도 맞는 것 같다.

숙소의 커튼이 암막 커튼이라서 몰랐다.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걷으니, 해가 중천이요, 벌써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구 모두가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잠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예상을 못한 아니었다. 별 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았으니 의도한 바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 준비시기부터 늘 염두에 둔 것이...

절대 욕심내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 여유롭게 다니자. 아이들과 함께다!

외출을 준비하기 전에 뭐라도 먹여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누룽지를 먹겠다고 했다. 캐리어에 야무지게 싸 온 누룽지를 한 솥 끓여 계란 프라이, 통조림 깻잎이랑 김자반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니 마음이 참 든든하고 좋았다. 우리 부부도 사과에 계란 프라이 등을 간단히 챙겨 먹고 우유와 음료수 싸들고 우리는 동네 구경을 나섰다.


이제는 진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 예행연습이 아니고, 실전이었다! 

숙소에서 길을 건넜더니 바로 옆에 "hagley park(해글리 공원)"이 있었다. 공원이라길래 한국의 동네 공원을 상상했었나 보다. 언뜻 보아도 들판처럼 넓은 잔디밭과 화창한 하늘, 커다란 나무들의 조화는 그림 같다는 말로는 형용이 안 되는 뷰였다. 그렇게 예쁜 장소에 꽃보다 이쁜 나의 아이들이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해글리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


좀 걷다 보니, 물가가 나왔고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께서 요트 조종을 하고 계셨다. 그냥 사는 환경이 다르기에 생기는 문화 차이였을 뿐이데, 그 당시엔 뭔가 참 특별해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공원은 곳곳에는 아름드리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할 만큼 커다란 나무들이 많았는데, 나무 주변으로 도토리 천지인 그곳에서 잠시 짬을 내어 도토리를 주우며 놀기도 했다.


시내를 가로질러 길지 않은 코스로 다니는 트램은 하루에 한 번만 끊으면 하루 종일 여러 번을 타고 내려도 저녁 6시까지 무료라는데, 늦잠 자고 아침 먹고 공원에서 한참을 놀고 나서야 시내에 도착한 우리에게는 참 손해 보는 장사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걸 언제 타보겠나 싶어서 그냥 표를 끊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시내를 구경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살다 보면 그런 기회는 꼭 또 오더라. 다만 우리가 선택하지 않다면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줄 알았지만, 기회는 트램처럼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


트램타고  2011년에 대지진으로 무너졌다는 슬픈 역사의 현장인 성당의 흔적을 시작으로 돌아본 크라이스트처치의 시내 곳곳은 3년이 지난 2014년의 가을에도 여전히 지진으로 인해 황량한 느낌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우리는 이곳의 이방인이었기에, 우리에겐 단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것 만으로 분히 모든 것은 볼거리였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 바라고 기대하며 여행을 떠나온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나절을 시내에서 놀다가, 해글리 공원과 이어진 Botanic GArden(보타닉 가든)을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무리하지 말자.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의 일정은 항상 무리하지 않을 구실을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장미 정원을 구경하고 가는 중 저 멀리 아이들 놀이터를 발견한 두 녀석들은 발걸음은 자연스레 놀이터로 옮겨졌다. 역시 어린아이들에게는 놀이터만 한 장소는 없었다. 한참을 놀다가 Avon river(에이번강)을 가로질러 공원을 통하니 숙소가 바로 보였다.




남편이 장을 보러 나간 사이, 나는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를 했다. 오늘 해서 말려야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말려 짐을 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나서 어제 먹고 남은 소고기 한 덩어리를 맛있게 굽고 따뜻하게 데운 햇반에 김치와 함께 밥을 먹였다. 아이들은 고기는 맛있다며 잘 먹었지만, 우유는 우리나라와 다른 맛이 난다며 잘 먹지 않았다. 아직 입맛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낯선 곳에서 먹는 음식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집 밖에 나와서 지내보니, 모든 것이 새롭기에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우유 정도니 다행인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어색하고 불편함이 곳곳에 수도 많을 것인데, 이제 시작인 여행에서 하나하나 순조롭게 잘 넘기며 지낼 수 있을까? 우유 하나로 시작된 걱정이 나비효과처럼 번져 나갔다.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란다.


아이들 식사가 끝날 즈음에 마침 남편은 장을 한가득 봐왔다. 식빵, 쨈, 와인, 갖가지 부위의 고기들, 토마토, 키위, 나쵸 과자에 맥주까지. 아이들은 밥을 먹여놓았으니 이제 어른들도 한 박자 쉬어가도 되겠다. 어른들은 티본과 일반 부위의 고기를 구워 와인과 맥주와 함께 먹었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공원에서 놀다 온 게 다 인 것 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겐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 긴장되고, 새롭고,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음을 밥을 먹으며 남편과 나눈 대화 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무탈하게 잘 지나가고 있었다.


5살, 7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흔히 어른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야무지게 바쁘고 꽉 찬 관광은 꿈도 못 꾸었다. 아빠 걸음을 따라다니려면 다리가 너무 힘들 것이고, 엄마가 좋아하는 쇼핑은 지루해할 것 같고, 밖에 나오니 왜 그리 화장실도 자주 가는지, 처음 오는 곳이니 화장실 찾다가도 시간은 꽤 많이 흘러갔다. 그렇지만 아이들 덕분에 생기는 또 다른 방식의 여유가 있고,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여행지의 생활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세상은 공평했다.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도 있었고, 나쁨이 있으면 좋음도 분명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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