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숙소를 근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해서, 아이들 밥을 먹이고 짐을 대충 꾸려서 차에 실었다. 차로 아주 조금만 가면 되어서 부담이 없었다. 기껏해야 1km 정도나 되었을까? 아무튼 아주 가까웠다.
오늘은 하루 종일 호수 근처에서 놀기로 했기 때문에 참 여유롭고 좋았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숙소와 호수와 놀이터만 가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놀이터에는 정글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늘 봤던 네모반듯한 모양이 아니라 코끼리 모양이라서 신기했다. 아이들은 저런 걸 보면 꼭 기어오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좋아했던 것 같다.
숙소 근처 놀이터에서 있던 코끼리 모양의 정글짐
레이크 테카포는 정말 예뻤다. 호수의 물이 햇빛에 반사되면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호수의 물색은 태즈먼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내려 환상적인 밀키블루였다. 정말 쉴 새 없이짜랑짜랑 반짝이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짜 잊지 못한다. 그곳에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동안 내가 겪은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벅참이었다. 하루 종일 물멍만 한다 해도 전혀 지루하거나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나와 아이들이 호수 주변에서 놀고 있는 동안 근처에 볼일 보러 나갔던 남편이 사 온 피시 앤 칩스를 안주삼아 대낮부터 와인도 한 모금 마셨다. 호숫가 주변에는 비키니를 입고 썬텐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 아주 많았다. 외국인 여행자도 많았겠지만, 느낌에는 주민이나 뉴질랜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이고, 익숙해 보여서 그랬을까? 그냥 정말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시간이 더 편하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을 따라 누워봤다. 얼굴이 너무 탈까 걱정이 돼서 선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서 정강이를 교차시켜 살짝 꼬았다. 내가 보수적이라 그런지 수영복을 입고서 그대로 누워있기가 민망스러워 가슴부터 허벅지를 다 덮을 수 있는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가렸다.햇빛이 뜨거워 그랬는지, 와인을 한 모금을 마셔서 그랬는지 몸이 노곤해지고, 눈이 풀리고,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솔솔 잠이 왔다. 그렇게 따뜻한 햇볕을 이불 삼아 편하게 잠시 낮잠을 잤다. 그사이 아이들은 아빠와 물수제비도 하고, 호수에 발도 담그며 놀았는데, 수영복은 갈아입고 놀았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차마 몸은 못 담그게 했다.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까 봐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카약을 탔다. 뉴질랜드에서는 그리 특별한 액티비티는 아니지만, 호숫빛이 너무 예뻐 한번 타보고 싶었다. 큰아이는 아빠랑 앞에서 노를 젓고, 작은아이는 나와 함께 뒤에서 노를 젓고 30분 정도 타고 호수 위를 떠 다녔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한참을 쉬었다. 주형이는 서윤이가 자는 동안 오리랑 신나게 놀았다. 뉴질랜드는 물가에 오리가 참 많다. 덕분에 아이들은 먹이 주느라 또 놀거리가 생겨서 좋다.이동거리가 없다 보니 오늘은 정말 많이 쉰 듯하다. 낯선 곳에서 일주일이 넘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었을 우리 가족을 위한 뉴질랜드에서의 휴식 같은 하루였다.
저녁식사는 호수를 바라보며 바비큐를 멋지게 하고 싶었는데, 숙소 예약으로 시간이 지체되어 늦어버려 조금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꿀 같은 하루가 갔다. 그리고 레이크 테카포에서의 마지막 바이다. 자고 나면 뉴질랜드에서 가장 최고 산과 빙하가 있는 곳, MT cook으로 이동해야 하고, 그곳에서 경험하게 될 유스호스텔 YHA도 굉장히 기대가 된다.
뉴질랜드의 남섬이 우리나라의 2.5배는 된다고 하더니, 한 도시에서 한 도시로 이동할 때 시간이 만만치 않다. 그러니 이동하기 전날 밤은 늘 조금씩 긴장되고 짐을 싸느라 분주하기도 하다. 부디 내일도 날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