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고 했다. 여기 태풍의 먼 변두리에는 옅은 비가 내리고 싸늘한 바람이 간혹 일었다. 바람을 쐬려고 나갔으나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 고민스러운 마음에 우산은 사치인 것 같아서. 잠시 망설이다 비를 맞으며 걷기로 했다. 최대한 청승맞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그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젖은 낙엽 냄새랄까, 뒷산을 훑고 오만가지 풀을 지나 온 바람 냄새에 나는 고등학생일 적 어느 날을 떠올렸다. 소나기가 내리는 오후, 우산은 가방에 넣어두고 친구와 미친 듯이 달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교문을 나서 시험날마다 컴퓨터용 사인펜을 사던 문방구를 지나고, 라면에 밥을 말아먹던 분식집을 지나고, 철권과 펌프를 밟던 오락실을 지나고, 책 냄새를 풍기던 기독서점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달렸다. 우리는 쫄딱 젖은 채 서로 낄낄거렸다. 별 일 아닌 그 날이 이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생생한 건, 그 날 가슴 터질 것 같은 자유를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몇 주만에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고 했다. 그 날의 내가 자라고 늙어, 수천번 새로운 세포로 바뀌어 오늘의 내가 되었고, 내 외모와 내 처지, 내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했건만, 야속하게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나는 누구일까. 왜 오늘의 나는 그날의 나를 타인처럼 여기며 부러워하나.
나이가 들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점차 쪼그라들고, 권리와 의무라는 미덕이 배를 불린다. 오,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비 오는 날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싶다. 나는 아내를 안고 펑펑 울어버리고 싶다. 나는 모든 걸 멈춰두고 하늘을 날고 싶다. 아무도 없는 깊은 곳에 침잠하고 싶다. 나는 너한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또라이이고 싶다. 그래. 나는 책상 위에 올라서고 싶다.
해도 된다.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미덕은 아니다. 나에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다. 맡은 일이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로움이 이상의 아름다움이라면 구조와 체계는 현실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느슨하게 쥐고 있던 미덕의 끈을 조금 더 잡기로 한다. 다음번 비 오는 날 또 비를 맞으며 고민해보자..
순간 내 모습이 꼭 이런 날 홀로 나와 한 구석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을 닮은 것 같았다. 다들 그러고 산다. 다들 이러고 산다. 왠지 그들과 친해진 기분이 든다. 다음번에 그들을 만나면 손인사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