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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자미상 Sep 04. 2019

되는 게 없는 날

갑작스러운 야근에 셔틀버스를 놓치고, 땀에 절은 채 정류장에 가서야 지갑을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을 때, 먼 구름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참 되는 게 없다.


집에 전화해 나를 데리러 오라고 부탁한 뒤, 어둑해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십 년은 자란 듯 한 가로수 밑에, 몇 년은 보수되지 않고 방치된 보도블록이 있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 백색의 가로등 밑은 밝고 공허했다. 그것은 마치, 너무도 철학적이고 우울한 나머지 객석을 한 자리도 채우지 못한 모놀로그의 무대와 같았다. 내가 주인공으로서 저 무대에서 춤을 춘 들, 목놓아 운 들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그 무대를 지나쳐 걸었다.


흉측하게 도드라진 근육같이 뻗어 나온 가로수 뿌리 언저리에 매미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녀석은 5년을 땅 속에 숨어있다가 2주간 미친 듯이 울어대고 나무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주변에서 작은 풀벌레들이 끼륵거리는 울음소리로 주검을 위로했다. 무슨 의미가 있던가. 누군가는 5년의 기다림과 2주의 노래를 찬양했건만, 내 눈에 보이는 썩어가는 이 것은 어떤 의미도 내게 주지 못했다.


회사라는 나의 옛 연인이 돌변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변해버린 연인 앞에서 내가 그랬을 것처럼 나는 몹시 난처하다. 처음에는 다시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제는 점점 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내가 아픈 것은 내가 회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꼰대들이 종종 말하는 그 ‘애사심’ 말이다. 나도 그냥 적당히 돈 받고 적당히 고생하는 곳으로 대할 걸 그랬나.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멍청하게도, 회사가 내게 또 손을 내밀면 나는 똑같이 회사를 사랑할 것이다.




이 모든 복잡한 생각과 벌어진 일, 그리고 내 존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차가 도착했다. 내 차는 낡았지만 차 안은 쾌적하고 안락했다. 조금 쉬어도 된다. 의자를 조금 더 눕혀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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