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자미상 Aug 10. 2019

금요일

13인치 남짓한 작은 노트북 모니터 오른쪽 구석에 시간이 표시되고 있다. 오후 5시 32분. 큰 확장 모니터가 있음에도 나는 대부분 노트북 화면을 사용한다. 내가 하는 일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과, 그 일이 별 볼 일 없는 것임을 들키고 싶지 않은, 소극적인 내 성격의 표현이다.

회사는 오전 8시 30분에 근무를 시작하고 오후 5시 30분에 마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 후로는 일을 해도 무방하지만 주 52시간을 반드시 지킨다는 정부의 입장에 순순히 따라가며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초과근무 시간을 계산한다. 회사에 남아있는 시간이 일을 하는 시간인지, 노닥거리는 시간인지는 일 하는 본인이 정한다. 나는 늦게 회사를 나서더라도 내가 진짜 일을 한 것인지, 회사에 기여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에 대부분 초과근무를 올리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꼰대인지 모른다.

오늘도 같은 마음이다. 뭔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혼자 애쓴다고 풀릴 것 같지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몇 되지 않는 상사들은 내가 알 수 없는 말들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한다. 명확하지 않은 것, 이게 이 조직의 특징이다. A에서 B로 가기 위해 '여기서 좌회전, 여기서 우회전, 여기서 내려서 기차로 갈아타고 누구를 만나 도움을 받으면 된다'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왜 A에서 B로 가야 하는지, A의 분위기는 어떻고 B의 의미는 무엇이며 가는 길에서 만날 누군가(물론 구체적이지 않다)의 성격이 까탈스러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곤란할 것이다' 이런 류의 지시들이 대부분이다. 그건 내 기준엔 업무지시가 아니다. 맙소사.


죄책감과 무기력감을 고민하다가 5시 40분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이미 팀원들은 다 떠나가 인사할 사람도 없다. 갈 때는 인사하지 않는 게 요즘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라고 들었다. 인사는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 정말 내가 꼰대라는 확신이 든다.


통근버스를 올라 버스 기사님께 인사한다. 친절한 기사님은 내 인사를 받아주시고 그 인사와 버스 안 시원한 공기로부터 하루의 노고에 대한 위안을 받는다. 아직 해가 중천이라 커튼을 빼곡히 친 컴컴한 버스 안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나는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회사 도서관에서 빌린, 다분히 감성적이고 현실에서는 그다지 쓸 일이 없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사무실에서의 9시간이 의미 없었다는 죄책감에 그나마 이 시간이라도 의미를 가지려는 몸부림이기도 하고, 스마트폰의 허무한 재미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치만 '나는 너네들(버스를 타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는)하고는 다르다'라는 교만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다 읽는 세상이라면, 다들 경멸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겠지.


집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집에는 애 둘을 보느라 이미 완전히 번아웃된 아내가 기다린다. 웃는 얼굴로 가족들을 맞이하며 밝고 쾌활하게 한 주를 맞이하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나는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아내는 풀 죽어있는 나를 격려하면서도, 내 모습이 넌덜머리 난다는 걸 은근히 내비친다. 저녁마다 신나게 아이들과 놀아주는 놀이터의 아저씨들과 늘 밝게 이를 보이며 웃는 아내 친구의 남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만 이렇게 삶이 고민스러울까. 나는 왜 이럴까.


슬픈 생각은 그만 떨쳐버리자. 오늘은 금요일이다. 해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이 뜨고 낮에는 매미가, 밤에는 풀벌레가 똑같이 울지만, 인류가 정한 1주일이라는 주기 안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안식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데자와, 그리고 적응에 대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