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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자미상 Aug 16. 2019

실수하는 존재, 인간

어느덧 이 집의 전세 계약이 끝나가는 시기가 왔다. 2년 전 초겨울. 내 인생 최대이자 최악의 실수는 이 전셋집에 이사하던 그 날 일어났다.


외벌이에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었지만 은행의 도움을 최대한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다행히 전세 계약금을 준비했다. 전세를 어디에 살아야 하는지, 아이 학교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 직장은 어디로 가는지 등등 온갖 머리 아픈 일들을 꾸역꾸역 해치우고 모든 게 정리되었다. 이삿짐은 싸게 구해놓은 이삿짐센터가 다 챙겨갔고, 우리 가족은 후련한 마음으로 새 집에 가기 전 즐겨 가던 동네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라떼를 즐기기로 했다.


부동산에서 새 전셋집 계약금을 보내달라고 했고, 우리 부부는 OTP카드를 동원하여 살 떨리는 2억에 가까운 돈을 부쳤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모든 감정들을 따뜻한 라떼 한잔에 녹여내고 창가에서 기분 좋은 햇살을 잠시 느낀 뒤 새 집으로 향했다.


10분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부동산 아줌마한테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계약금이 안 들어왔다는데요..?”




순간, 정말 몸의 피가 싹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처럼 10분 전으로 빨리 감기를 했고, 내가 자그마치 2억에 가까운 돈을 부친 사람은 집주인이 아닌 입주청소업체 사장이었다.


그대로 운전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가까스로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다. 손등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고 이사청소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사장님이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바로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무슨무슨 복잡한 문제가 있었고 하여튼 어렵다는 게 그 사람의 논리였다. 당시에 나는 철저히 을, 을이었기에 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은행에 찾아가서 착오송금에 대해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바로 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며 며칠 동안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삿짐센터, 에어컨 업체, 부동산 사장, 집주인... 계약이 성사되고 들고 있는 짐을 내려놓고 가야 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빗발치는데 며칠 동안 더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그 사람에게 얼마를 떼어주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떼어준 돈으로 애들하고 가까운 곳에 며칠 놀고 올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분노, 실수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사방으로 흘러갔다. 설레는 맘으로 맞이해야 할 새 집에서의 저녁은 초상집처럼 침울했다.


‘저렇게 중요한 걸 실수를 하나.. 쯧쯧.’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한 사람들마다 똑같이 말하는 말로 변명하고 싶다. 그땐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계속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오늘도 홀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겪은 뒤 더 겸허해졌다. 실수란 치밀하고 꼼꼼할수록 덜 하는 법이지만, 누구도 완벽히 실수하지 않을 순 없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실수를 들여다보면 내 경우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몇 년 전 내가 다니던 회사의 한 직원은 해외 거래처인 것처럼 메일로 접근한 해커에게 수백억의 회삿돈을 보내버렸다. 그것 때문에 회사가 망하지는 않았지만, 그 직원의 멘탈은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실수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뤘다 하는 명예와 부, 지식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좀 더 꼼꼼하고 치밀할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나는 그보다 실수한 뒤의 것들을 말하고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훌륭한 골키퍼는 방금 자책골을 넣었더라도 또다시 다가오는 상대의 강력한 슛을 막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음을 생각했으면 한다. 나도,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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