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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Aug 17. 2021

네 시간의 모든 기록들이 네 몸이야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65  제프 쿤스와 손동혁의 마이클 잭슨

  "나는 배고픈데

  단호박도 먹기 싫고

  바나나도 먹기 싫고

  고구마도 먹기 싫고

  닭가슴살도 싫고

  두유도 싫고 두부도 싫어.


  나 쪼코파이 먹고 시퍼. 잉잉. 쪼코파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딸 키우는 엄마들을 모아 회의를 해 보고 싶다. 다이어트를 하는 너만이 아니라 덩달아 엄마도 너무 힘들구나. 음식을 권하면 다이어트하는 딸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맛난 음식을 하면 어쩌냐고 투정, 먹지 말라고 하면 어쩜 이리 냉정하냐고 불만! 아침에 깨워주면 어젯밤 운동하느라 늦게 잤는데 일찍 깨우면 어쩌냐고 투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면 왜 안 깨워 줬느냐고 시무룩. 게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멘탈이라니! 종교가 없는 엄마가 매일 Oh, My God이다. 하나님이 느루 위해 세 명의 수호천사를 보냈는데 그중 엄마가 대장 천사라고 했지? 오늘부로 그 천사 임명장 반납이야. (하나님, 부처님, 알라님, 불쌍한 이 여인을 굽어 살피소서!!!)


  설거지를 끝내고서야 이 닦고 세수하고 로션 바를 시간이 나다니! 이런저런 일로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칼 마저 곤두서 너무 피로한 일요일 점심, 나에겐 강력한 멘탈 케어가 필요해. 이제 행복했던 기억을 소환해 볼까?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느루 같은 딸들을 이해하려면, 또 오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와 같은 엄마들이 위로받으려면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니까. 그래 이 노래 좋겠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


 



  마음이 가라앉네. 느루야, 너도 좌충우돌하던 마음이 평온해졌니? 엄마 얘기 들어볼래? 엄마 세댄 그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청춘의 한 시기가 있었단다. 가로등 밑의 나방들처럼 부유(浮遊)하고 방향 없이 떠돌던 그때, 그의 음악과 춤은 청춘에게 바치는 거대한 제의였지. 아~ 생생히 기억나는구나. 반듯한 교실 창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저녁 어스름, 우린 깻잎 머리에 교복 깃을 세우고 치마를 허리춤에 말아 최대한 짧게 올렸어. 웃옷은 갓 봉오리 진 가슴 때문에 단추가 팽팽했구나. 음악감상실과 디스코텍에 열광했던 학교 밖 세상은 가방 속 교과서의 세상과는 백조와 까마귀만큼 달랐어. 아마 너도 그 설렘과 광기를 이해할 거야. 그때의 우린, 자주 음악 속을 헤맸고 어설펐지만 우리의 순정함에 대해 세상의 이해를 구하지 않았지. 지금 너희들처럼.


  하지만 그의 음악은 그의 불균형을 아프게 보여주었단다. 폭죽 같은 조명과 현란한 춤과 더불어 어둡고 길고 우울한 그늘도 그의 무대에 함께 올랐으니까. 이제 와 생각하면 그건 마왕의 망토였던 것 같아. 정해진 형태 없이 자유로웠던 유년에서 자신의 모습을 깎고 빚어야 하는 위태로운 청년의 시기를 다독이며 덮어주는 거대하고 푸른 마법의 망토.


  "그는 1958년 생이었다. 2009년 6월, 의혹 많았던 여러 추정을 뒤로하고 '심장마비'를 공식 원인으로 사망했다. 7살 때,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의 멤버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사망 직전까지 최고의 미국 싱어 송 라이터로 인기를 누렸다. 디스코, 록, 오페라, 펑크(funk), 뉴 잭 스윙 등의 다양한 양식을 소화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음악으로 'King of pop'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무대 위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그의 춤, 문 워크(moonwalk)는 쉰 살을 넘긴 그를 항상 십 대로 기억하게 했다. 마지막까지 십 대의 삶을 산 그는 마이클 잭슨이다."


  "마지막까지 십 대의 삶을 산"이라는 문구에 울컥하는구나. 어쩌면 십 대로 대변되는 그의 이미지가 곧 그 일 거야. 위태롭고 절박하고 위험하고 상처투성이면서도 마음은 늘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던 그. "팝의 황제"


  느루야, 너도 누군가를 떠올리면 대표되는 이미지가 있잖아. 이미지가 곧 그를 상징하지. 마이클 잭슨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는 1988년 <마이클 잭슨과 버블 Michael Jackson and Bubbles>이라는 작품으로 그를 소개했어. 이렇게.



제프 쿤스 <마이클 잭슨과 버블, 1988>


  이탈리아의 뛰어난 도자기로 만든 이 작품은 잭슨의 화려한 의상과 짙은 마스카라를 매끄럽고 반짝이게 보여주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금박 입은 잭슨의 실루엣에는 시선을 거북하게 하는 유치함과 가벼움이 흘러. 거리의 여인이 바른 립글로스처럼 반짝이고, 허세와 과시의 싼 내가 진동하지. 전 세계 십 대의 심장을 쫄깃거리게 했던 팝의 황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어. 두터운 화장 밑에 백반증으로 얼룩진 그의 희고도 검은 얼굴이 숨겨져 있어서 일까? 아니면 자신 내부의 예술성이 그저 대중의 소비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일까? 슬픔마저도 희화화한 듯, 그가 안고 있는 금박의 원숭이만이 붉은 입술로 웃고 있구나. 


  느루야,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하듯 이 작품을 만든 제프 쿤스는 '키치의 제왕'이라고 해. 키치(kitsch)라는 말은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이야. 독일어로 '싸게 만들다(verkichen)'에서 나왔어. 그는 이렇게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를 '키치'로 표현했어. 


  하긴 제프 쿤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포르노와 다를 바 없는 성적 메타포, 돈과 다이아몬드, 욕망에 대한 동경 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냈어. 그는 우리의 소비적이고 현세적인 욕망을 부추겼지. 평론가들이 쏘는 신랄한 비평의 화살이 정확히 자신을 겨누었는데도 그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단다. 제프 쿤스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갔고 20세기 현대인들은 열광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만의 시끄럽고 야단스런 작품에 대해선 나중에 더 자세히 말해줄게. 


  지금은 네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있구나. 제프 쿤스의 마이클 잭슨과 우리나라 팝 아티스트 손동현의 마이클 잭슨을 비교해 보겠니? 손동현 작가는 <왕의 초상>이라는 시리즈에서 팝의 황제를 이렇게 그렸어. 


손동현 <왕의 초상 38, 2008>



  손동현이 그린 마이클 잭슨의 초상이야. 그야말로 왕의 어진(御眞)이지. 검은 모자에 붉은 셔츠, 그는 황금색 용머리가 장식된 어좌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근엄하게 우릴 바라보고 있어. 잦은 성형으로 인해 쥔 듯해진 코와 백인이 되어버린 피부, 여성스러운 얼굴에서, 단단한 검은 피부에 하얗게 반짝이던 이를 드러내며 웃던 데뷔 적 모습은 상상할 수 없구나. 어좌(御座)에 앉았으되 정체성이 표백된 그의 얼굴은 그의 고독을 고스란히 보여줘. 가는 저 다리는 육중한 어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구나. 


   제프 쿤스가 금박 물린 도자기로 키치스럽게 표현한 마이클 잭슨도 놀랍지만 매스 미디어의 아이콘을 한국화의 전통 초상화 기법으로 표현한 것도 독특하지 않니? 느루야, 손동현 작가는 누런 장지 위에 휘청거리는 시대의 초상을 그렸단다. 신이 죽고 난 근대 이후의 예술은 자본의 액세서리이거나 대중의 변덕스런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로 가파르게 기울었지. 한동안 예술은 신의 재현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 쇼윈도에서 쇼핑하는 대상으로 추락했단다. 사람들은 "~이다" 또는 "있다"에서 "~이었다" 또는 "있었다"로 시간의 경사를 만들고는 새로운 우상을 끊임없이 창조했어. 마이클 잭슨은 대중의 기호를 좇아 일생을 분투했구나. 하지만 인간의 삶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것은 없나 봐. 


  그의 구름을 딛던 걸음은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고, 어두운 구설수는 마음의 힘을 낭비하게 했어. 화려한 재기를 꿈꾸던 그의 심장은 멈췄어. 혈관에 흐르던 20세기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욕망들은 더 이상 그를 움직이지 못해. 그는 비로소 이제서야 어좌에서 내려와 침착하게 자신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몰라.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지. 그는 이 검고 어린 꼬마로부터 자신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을 게야. 



손동현 <왕의 초상 1, 2008>


  마이클 잭슨이 솔로로 데뷔했던 10대 시절의 모습이구나. 피부는 검고 코는 펑퍼짐한 전형적인 흑인 얼굴이야. 이때의 마이클 잭슨은 귀엽고 앳돼 보여. 하지만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던 장난기 가득한 모습과 특유의 활기는 느껴지지 않아. 팝의 황제가 앉았던 '어좌'와는 달리 아직 왕에 오르기 전, 태자의 모습 이어서일까? 작가는 조선 사대부 초상에 알맞게 호피 의자에 족좌대를 놓았어. 그는 웨스턴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족좌대 위 화문석에 가지런히 두 다리를 올리는 대신 양 쪽으로 활짝 벌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어. 


  느루야, 중세시대, 십자가에 엎드렸던 인간들은 음악은 천사들이 만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중세 이후 많은 그림 속에 천사가 나팔을 불지. 10대의 마이클 잭슨, 그는 작고, 검고, 외롭게 노래하는 어린 천사였구나. 애써 날개를 퍼덕이며 빛을 노래하는 검은 천사. 한 겹 유색의 피부에 갇혔던 그의 노래는 이제 저 멀리 종달새가 전해주려나?


  제프 쿤스의 마이클 잭슨이든, 손동현의 마이클 잭슨이든 그가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이미지에는 그의 고독이 숨쉬지.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자아가 보여. 대중의 욕망을 읽는 천부적인 감각과 중력을 이기는 율동, 하늘이 건네준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연출한 찬란한 삶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느루야, 어느 인터뷰에서 손동현 작가는 이렇게 말했어. 

  "대중의 사랑을 좇아 변화해 간 그의 모습으로 대중의 뒤틀린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 세계의 젊음을 쥐락펴락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초상(肖像)을 갖지 못했던 마이클 잭슨, 우리의 우상! 엄만 작가가 시대의 욕망과 그 욕망에 쫓기는 우상의 삶을 기록했다고 생각한단다. 



화산관 이명기 <번암 채제공 초상, 1792>



  우리의 우상이 사라진 지금, 인간은 결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눈이 대변할 뿐이지. 느루야, 자신을 정확히 알려면 반드시 타인을 필요로 한단다. 내가 살려면 '남의 살'이 필요한 인간의 아픈 숙명처럼 자신을 바라볼 특권은 타인에게 있지. 그래서 초상화가 가장 오래된 회화의 역사인지도 몰라. 초상화의 가장 높은 덕목은 기록성이거든. 가장 궁금한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손에 맡겨 기록할 수밖에 없는 한계. 그래서 옛 조상들은 붓을 들 때, 인문(人文) 정신도 함께 들었지.  


   느루야, 옛 초상화도 한번 보겠니? "전신사조(傳神寫照)"라고 해. 초상화를 그릴 때 외형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인격이 드러나는 내면적 형상, 즉 인물의 정신세계까지 표현해야 한다는 엄정한 회화 정신을 말하지. 조선의 회화는 사람을 표현할 때 예쁜 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모습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 즉 "한 오라기의 털이 달라도 남이다."

  

  또 우리나라 초상화는 그림자를 그리지 않기에 음영법(陰影法)이라고 하지 않고 음양법(陰陽法)이라고 해. 서양의 초상화가 명암(明暗)으로 입체감을 드러냈다면 조선 회화는 핍진(逼眞:사물을 아주 닮음)한 선(線)으로 안면의 두드러진 부분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단다. 조선시대 회화 갈래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영역이 극사실 초상화였어.  



화산관 이명기 <번암 채제공 초상, 1792> 중 얼굴 부분 확대



  이 초상화는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지금 수원 화성 신도시 건설의 총감독이었던 번암 채제공의 초상이야. 1792년 당대의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였던 화산관 이명기(華山館 李命基, 1770 전후~1848 이후)가 그렸어. 옛 초상화 작업은 서너 명의 화가가 함께 작업했는데 가장 뛰어난 화가가 얼굴을, 그다음 화가가 몸을, 조수는 장식문양을 담당했다고 해. 이 초상화는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나머지 부분의 감수를 한 거라고 보면 될 거야. 


  엄만 이 초상화를 도판에서 처음 볼 때, 저 연분홍 옷 색감에 놀랐단다. 원본을 보는 것이 아닌데도 색의 은은함에 품격이 느껴지지 않니? 날아갈 듯 선명한 캔디 칼라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아련히 배어 나오는 저 고아함은 가벼이 볼 수 없는 조선 미술의 체급을 말해주지. 하지만 정작 느루에게 말하고 싶은 건, 그의 얼굴이란다. 채제공의 얼굴을 봐. 딱 보기에도 사팔뜨기 아냐? 눈동자가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잖아. 


  느루야, 만일 현대의 우리가 저런 눈을 갖고 있다면 앱을 통해 바로 수정했을 거야. 깊고 검은 눈에 주름 하나 없이 V라인의 턱을 갖게 됐겠지. 하지만 옛 초상화를 보면 곰보자국도, 얼룩진 검버섯도, 눈 밑 그늘도, 사팔뜨기 눈동자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렸어. 아까 전신사조란 말을 했었지. 한 오라기의 털만 달라도 내가 아닌데 곰보라 한들, 사팔뜨기라 한들 어찌 얼굴을 수정하겠니! 


  조선의 초상화는 그림으로 쓴 자서전이야. 평생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갈고닦은 지식을 출사(出仕)를 통해 백성에게 펼치며 영욕(榮辱)을 견디는 사대부의 삶, 그 내향적 시간의 엄정한 기록이지. 



손동현 <왕의 초상 22, 2008>


  

  느루야, 네 '바디 프로필'을 찍고 싶다고 했지? 엄만 찬성이야. 마이클 잭슨의 10대를 저 한 장의 그림이 보여주듯, 채제공의 꼿꼿한 정신을 저 한 필의 초상이 증거 하듯, 네가 찍을 사진은 현재 너의 20대를 보여줄 테니까. 매일 1시간을 달리고, 3시간씩 근력운동을 하고, 닭가슴살과 단백질 우유, 단호박으로 식사를 하는 절제되고 응축된 시간의 기록일 테니까. 엄만 육체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중, 정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비롯된다는 말에 공감해. 그래서 건강한 육체를 가지려는 노력과 그 목표를 응원해.


  다만 네가 프로필을 찍는 시점에, 네가 원하는 만큼의 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수정하거나 보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왜냐하면 그 모습이 곧 너니까. 고픈 배에 힘을 주며 쉰 내가 나도록 뛰어 얻은 몸, 그 몸 안에 깃든 영혼이 곧 너야. 도전했고 실패했고 도전했고 성공한 그 모든 기록들이 네 몸이야. 카메라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너의 존재가 있어.  


  사회가 숭배하는 미(美)의 필터에 네 정신과 네 노력과 네 젊음을 부탁하지 말고 네 스스로 너의 몸을 인정하렴. 


  넌 "~ 있었고"가 아니라 현재,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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