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대장 천사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밤, 파리시장> 외

by 안노라

저녁과 밤 사이를 가로지르는 버스에서 내렸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네. 뭐랄까... 허름한 검은 비닐봉지에라도 슴슴한 그리움을 담아가고 싶어. 가족들 앞에 부려 놓으며 깜짝 놀라 동그래진 눈매라든지 미소 띤 입꼬리라든지 냉큼 받아 드는 웃음 띤 손을 보고 싶어.



엄마가 어릴 적엔 대문에 들어서는 할아버지 손을 곧잘 확인하곤 했단다. 가끔씩 신문지에 싸인 붕어빵이나 군밤, 아니면 구운 쥐포가 들려 있기도 했고 월급날엔 과자가 잔뜩 든 종합선물셋트나 조기 한 두름도 있었지. 키보다 더 긴 그림자를 끌고 문을 여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워 보였는지...



느루야, 버스 정류장 앞, 과일가게에 들어섰어. 마치 이 작품 속 할머니가 앉아 계신 듯 전등 빛에 복숭아가 발그레하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밤, 파리시장>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 그림은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Victor Gabriel Gilbert, 1847~1933)의 <밤, 파리시장>이란다. 초가을쯤, 저녁 어스름이 깊었구나. 알맞게 열기가 식은 건물들은 지난 계절의 뒷이야기로 분주하고 가스등을 켠 거리의 좌판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흥정 소리로 다정해. 어깨를 짓눌렀던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서너 살쯤 보이는 아이를 안고 젊은 새댁이 주춤거리고 있네. 주머니에 남은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겠지? '한번 골라 보구려. 아주 맛있다오.'라고 말하는 듯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정겹구나.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이 불렀던 따뜻한 난로, 풍성한 만찬,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쓸쓸하고 포근했던 할머니의 미소! 바로 그 미소처럼.


느루야, 새댁이 저 사과를 봉지에 넣어 갈까? 나라도 가서 새댁에게 사과 한 봉지를 들려주고 할머니 손에 만 원짜리 지폐와 건강하시라는 축원을 담아 드리고 싶구나. 하긴 아이의 손에 들린 사과 한 알을 보면 아마도 새콤달콤한 가을밤의 유혹을 이기진 못할 거야. 귀여운 아이의 눈길이 닿은 사과마다 별처럼 아삭아삭 빛났을 테니까.



빅토르 길베르는 1847년 2월 13일 파리에서 태어났어. 당시 프랑스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탓에 어제 입은 옷이 오늘 작아져버린 아이 같았어. 산업혁명에 따른 폭풍성장의 시기였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여건은 아직도 1700년대에 머무르고 있었지. 프랑스는 거대한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성장과 평등을 향해 한 발씩 내디뎠어. 하지만 팔다리는 추위와 더위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손 끝과 발 끝은 곧잘 동상에 걸리거나 화상을 입곤 했지. 화려하고 번화한 도시의 뒷골목은 썩은 냄새와 오물로 질척거렸고 근대 공업과 함께 탄생한 가난한 노동자들은 부자들이 내다 버린 식재료를 주어 한 끼를 연명해야 할 정도로 비참한 노동환경에 시달렸구나. 빅토르 길베르가 태어나고 1년 뒤인 1848년 2월 22일, 민중들의 2월 혁명으로 프랑스는 고꾸라졌단다.



프랑스가 화상과 동상을 치료하고 다시 일어서는 시기는 그가 청년으로 성장하는 시기와 같아.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파리의 레 알 시장, 1885>



예술가 지망생들은 의례히 Ecole des Beaux-Arts(국립미술학교)에 진학했지만 그에겐 아득한 일이었어. 빅토르 길베르의 부모님은 몹시 가난했거든. 포도주 한 잔을 위로 삼아 종일 허리를 펼 수 없는 노동을 견디는 생활이었기에 그의 미래를 도와줄 수 없었어. 빅토르 길베르는 일찍 철이 들었단다. 그는 13살에 장식가인 외젠 아담(Eugene Adam)의 공방에 들어가 견습 생활을 해. 13세의 르누아르가 레비 프레르 & 콩파니 도자기 공방에서 조각 장식을 배우는 견습생활을 했듯 말이야.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장식가로서의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나중 둘은 친밀하게 지냈다고 하더구나.



길베르는 낮엔 공방에서 견습을 하고 밤엔 파리의 Ecole de la ville 라는 곳에서 신부님의 지도 아래 미술 수업을 받게 되었어.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하게 한 유일한 공식 미술 수업이었지. 느루야, 무엇이든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나 봐. 우리로 치면 서울대 미대 격인 에꼴 드 보자르가 17세기 이후의 전통적 회화 형식과 권위적 수업에 집착해 상상력을 옥죄었다면 일종의 직장인 야학을 다닌 그는 오히려 자유롭게 일상에서 예술적 안목을 키우게 되니까 말이야.



빅토르 길베르는 성장통을 앓느라 뼈마디가 쑤시는 파리 변두리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그의 붓은 시대의 기록관처럼 파리 시민의 일상을 근면히 필사했구나. 이음새가 빠졌다거나 구멍이 터졌거나 누렇게 뜬 것도 놓치지 않았지. 그에겐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했거든. 그의 작품 <시장, 1880>을 보렴.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시장, 1880>



시계는 이제 막 1시쯤을 지나고 있고 마차를 끄는 말발굽 소리와 실크햍을 쓴 신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보도 위에 가득해. 신사들의 세상 건너편, 아낙과 아이들의 무대인 야채시장이 열렸네. 겨우 펼친 우산만큼의 그늘을 위안 삼아 종일 야채를 파는 사람들의 지치고 느슨한 피로로 캔버스는 살짝 졸고 있어. 아래를 봐. 소쿠리 하나 옆에 두고 망연히 앉아 있는 노파를 향해 강아지가 묻고 있잖아. 무얼 파세요. 강아지의 질문에 헐거운 나무 테이블 위 나란히 누워있던 파, 배추, 양파가 대답했어.


"내일."



느루야, 왼쪽 앞 어린 소녀 보이니?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데도 무언가를 손에 들고 열심히 외치고 있구나. 마치 조금 전 헤어진 엄마 친구의 어릴 적 모습 같아. 친구의 부모님은 중국집을 하셨대. 그러다 보니 친구의 홀 서빙은 기본이었고, 제법 빈번히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곳이었지만 2층이어서 아버지가 곧잘 그녀에게 호객행위를 시키셨다는구나. 친구는 너무나 부끄러웠지만 온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이니 돕지 않을 수가 없었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방과 후 수업을 받으려고 일부러 시험을 망치거나 지각을 했대. 청소나 방과 후 수업 등 벌을 핑계 삼아 느지막이 가게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단다. 생일날에도 졸업식에도 자장면이나 짬뽕은 먹지 않는다고. 우리 세대 졸업식의 국룰은 졸업식 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 거였어. 친구의 중학교 졸업식 날, 그녀는 가게에서 같은 반 친구에게 자장면을 서빙해야 했대. 그날, 다시는 시커먼 자장면을 먹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는구나. 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먹고 자란 딸은 남보다 일찍 독립해 가급적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대.



그런데 결혼을 염두에 둔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날, 난생처음으로 양복 입은 아버지를 보았다는 거야. 베일 듯 빳빳한 와이셔츠 칼라에 목은 움츠려 들고, 윗 양복 앞 섶의 벌어진 사이로 벌렁대는 아버지의 심장이 보이더래. 면을 뽑을 때의 그 당당했던 호령은 어디 가고 심벌즈처럼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그만 서글픔이 밀려오더라는구나. 어느 순간 세상이 주는 구박을 당연히 여기고 자녀들을 위해 당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았을 아버지의 삶! 그날 습진으로 빨갛게 부어오른 당신의 손이, 희로애락의 두께로 가죽보다 질겨진 발바닥이, 양파를 지고 2층을 오르내린 어깨의 통증이 자신을 키웠다는 걸 알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결혼 전 날, 아버지가 3천만 원이 든 통장을 손에 쥐어 주시더래.



친구가 오늘 오래도록 울었어. 아버지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며칠 전부터 곡기를 끊었고 마른 비닐이 버석거리듯 얇아진 몸에 이불조차도 무거워 보이더라는 거야. 아버지의 생신이 글피인데 생신상 차려드리고 싶다는 말을 눈물로 쓰더라.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장날, 1881>



친구를 토닥여주고 돌아오는 버스 차창 밖, 두툼한 손을 흔들며 웃으시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겠니? 오빠를 낳았을 때, 아무도 몰래 살짝 오셔서는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며 엄마 손에 노란 고무줄로 묶은 돈을 쥐어 주셨지. 손바닥 가득했던 그 땀 냄새, 아버지 냄새! 또 술이 거나했던 어느 날은 엄마에게 손을 펴 보라고 하시더니 손바닥에 한문으로 엄마 이름을 써 주셨어. 그리고는 엄마 손바닥을 오므려 아버지의 딱딱하고 큼지막한 손으로 감싸고는 "이게 니 이름이다. 명(命) 길고 좋은 데 시집가라고 작명소에서 지었다. 잊지 말아라." 하셨지.



할아버지는 가끔 직장에서 끝나고 돌아오는 엄말 기다려 술상을 봐 놓기도 하셨어. 알전구 같이 노란 막걸리 주전자에서 조로록 할아버지의 고단함이 떨어졌지. 열대에서 툰드라로 옮겨진 나무처럼 남도 끝 조용한 바닷가의 삶은 서울의 단단한 화강암을 뚫지 못했어. 이식된 뿌리는 한 켜의 흙무더기도 움켜 잡지 못했지. 할아버지는 고향 바닷가를 그리워하셨구나. 특히 <장날, 1881>에 나오는 수프처럼 무쇠솥에서 펄펄 끓여 냄비에 담아 팔던 바닷가 장터의 뜨겁고 붉은 팥죽을 잊지 못하셨지. 병이 깊어 휠체어에 몸을 실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팥죽 위에 뜬 작고 동그란 새알 한 알.



느루야, 빅토르 길베르의 그림 <장날, 1881>을 보렴. 돌바닥을 덥히던 햇살이 남루한 하루를 끌고 서쪽으로 기울면 온기가 그리운 인간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환한 불을 켰구나. 그는 기차의 속도에 뒤처지는 사람들이 수프 한 그릇을 비우며 내일은 더 빨리 달리리라 다짐하는 장터 한복판을 그렸단다. 그의 붓은 저물어가는 마차의 시대에 마지막 휘날리던 우아한 말의 갈기였지. 숨이 차 헐떡이는 말의 콧김으로는 더 이상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검은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를 이기지 못할 테니까.



그는 기차가 떨어뜨리고 간 것 - 빵이 구워져 나오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밤새 배에서 잡은 물고기들이 파닥대는 새벽 어시장, 털이 뽑히고 내장과 대가리가 떨어져 나간 거위나 닭, 파트라슈가 끌었을 법한 갓 짠 젖을 담은 커다란 우유통, 덜거덕거리는 손수레 위에서 아가씨를 유혹하는 색색의 꽃, 얼기설기 엮은 지붕 아래서 술 마시는 상인들의 웃음, 퐁네프 다리 위의 노점상 - 들을 그렸어.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아침, 어시장의 한 구석, 1880>



스물여섯 살이 된 그는 1873년 살롱전에 두 점의 작품을 출품해. Ecole des Beaux-Arts(국립미술학교)를 나오지 않은 그에겐 커다란 도전이었고 용기였지. 이 용기에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지었구나. 인상파를 후원했던 화상(畵商) 페르 마르텡(Pere Martin) 눈에 띄게 되었거든. 그는 이제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거지. 느루야, 그가 1800년 살롱전에서 2등을 수상한 작품 <아침, 어시장의 한 구석, 1880>을 보겠니?



등짐을 진 억센 팔이 하품하는 아침을 끌고 오는 어시장의 풍경이야. 잠이 덜 깨었는지 창 밖 하늘이 희뿌옇구나. 아침은 밤새 배 갑판 위에서 헐떡였을 가오리나 청어를 보고는 해를 어느 만큼 밀어 올려야 하나 고민 중이겠지. 어시장 바닥엔 패배를 인정하고 주둥이를 벌리고 늘어진 물고기와 아가미에 손을 넣고는 이렇게 힘센 놈을 어떻게 잡았느냐 묻는 것 같은 젊은 어부의 몸짓이 생생해. 빅토르 길베르를 사실주의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지?



느루야, 젊은이의 호들갑엔 아랑곳없이 파이프에 막 불을 붙이는 구레나룻이 무성한 어부를 보렴. 손등에 도드라진 굵은 핏줄은 지난밤의 분투를 짐작하게 하는구나.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젊은 버전 같아. 아니, 꼭 할아버지나 친구의 아버님 같기도 하구나.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미끼를 정확하게 놓지. 단지 나한테는 더 이상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오늘은 운이 다를지 말이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니까."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더 먼바다로 나가 거대한 청새치와의 혈투를 벌였던 어부 산티아고처럼 매일 뺨을 때리는 파도와 무릎을 굽히게 하는 풍랑에 맞서 기어코 고기를 잡은 두 손을 흔들며 부두로 귀향하던 우리들의 아버지!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도록 튼튼하고 굳센 울타리를 쳐주던 우리들의 대장 천사!



그 아버지들의 삶이 증명하는 헤밍웨이의 말을 들려줄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파멸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빅토르 가브리엘 길베르 <퐁네프 다리 위의 꽃장수>



느루야, 내 이름이 새겨진 손바닥을 펴 복숭아 한 알 한 알을 골랐단다. 할아버지 손에 들린 붕어빵이 내 유년의 바닷속을 헤엄치듯 내가 고른 복숭아도 선녀의 날개를 달고 천국의 할아버지에게 날아갈까? 이제 사거리 신호등이 파랗게 바뀌었구나. 엄말 기다리고 있는 느루에게 빅토르 길베르의 꽃과 그리움을 가져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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