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넘겨보지 말고

1월 첫째 주 - 조지 프레데릭 와츠 <희망>

by 안노라


누가 이런 지혜를 냈을까요? 어제의 솔기에 잇대어 오늘을 박음질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를 잘라내고 오늘 하루를 깁는 슬기, 시간의 마디를 끊어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 놀라운 긴장! 유발 하라리는 인간에게 있어 간과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가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했지요. 올해는 현명한 인간들이 갖는 미적 상상력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거라는, 인간의 지혜로움에 기대어 봅니다. 저 또한 날실과 씨실이 엮여 한 필의 무명이 되듯 소소한 계획들이 짜임새 있게 완성되기를 바라봅니다.


새해 첫 주를 맞이한 오늘은 포기 모르는 인간을 보여 드리고 싶네요.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irederic Watts, 1817~1904)의 <희망, 1886>을 소개합니다.



조지 프레데릭 와츠 <희망, 1886>



마치 구걸하는 여인 같기도 하고 절망에 빠져 속울음을 우는 여인 같기도 합니다. 그녀는 둥그런 구(球) 위에 간신히 균형을 잡은 모습입니다. 약간의 실수로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 곧 아래로 곤두박질치겠지요? 그녀의 위태로운 자세는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 예요. 그녀는 맨발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처럼 그녀는 한 겹 얇은 옷에 맨발로 앉아 있습니다. 저 발의 굳은 뒤꿈치는 설명하지 못하는 지난한 여정을 나타내는 것이겠지요.



그녀는 옛 악기인 수금(竪琴)을 안고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금은 성전 예배에 사용되었던 삼각 하프 모양의 악기로 심장의 모습을 본떴다고 합니다, 현(弦)도 동물의 창자를 사용했지요. 심장의 모양과 동물의 창자로 만든 악기여서인지 사람의 내면을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금 소리는 비밀스러운 내면의 울림을 말합니다.



게다가 성경에는 백단목으로 수금과 비파를 만든다고 하는데 백단목은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까지 향기를 남기는 고귀한 나무랍니다. 그림을 볼까요? 고고히 향기로운 백단목으로 내면의 소리를 울리는 수금에는 단 한 줄의 현이 남아 있습니다. 가려진 두 눈, 구부러진 어깨, 놓치지 않으려는 듯 왼 손으로 꼭 잡은 수금, 간절히 붙잡고 있는 수금에는 어떤 향과 소리가 흘러나올까요? 그녀는 기어이 마지막 한 줄로 노래하려는 것일까요?


조지 프레데릭 와츠는 대영제국의 기틀이 되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기, 영국이 가장 화려하고 위대했던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역사화가이자 조각가였지요. 문명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공존했던 19세기, 런던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중세를 지탱한 것들이 석탄 갱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이제 막 탄생한 기차가 봉건제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는 산등성이를 헐떡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인권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는 질주하는 기차에 올라타지 못했지요,



자본과 정보를 가진 소수를 빼고는 거대한 근대가 펌프질 하는 공장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습니다. 도시에는 댄디한 신사와 양산을 쓴 숙녀들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걸었지만 후미진 외곽에는 악취와 쥐떼가 들끓었습니다. 그는 문명이 쏟아내는 야만과 소외를 보았을까요? 여인의 눈을 가린 천에는 금세라도 눈물이 배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제 그녀는 가지런한 호흡으로 과거와 현재의 불안에 눈 감습니다. 그리고 아직 한 줄의 현이 남아있다고 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녀가 집중하고 있는 건 희망을 잃지 말라는 자신의 소리겠지요. 먼 미래에서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면 무슨 말이 들려올까요.



스무 해쯤 거리를 두고 현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요. 미래를 넘겨보지 말고, 지난 일을 돌아보지 말고, 현재가 비록 단 한 줄 남은 수금일지라도 자신의 소리와 향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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