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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2

추석엔 까똑 하자

9월 셋째 주 - 김준근 <줄다리기>

  추석이 다가옵니다. 핸드폰 연락처에는 이름 위에 먼지가 덮인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마법 주전자 속 지니를 불러내 듯 입술로 “후~”불어 봅니다. 뿌연 먼지 아래 아직도 반짝이는 이름들. 매장품이 많은 무덤처럼 이름 아래 부장(副葬)되어 있던 기억들이 바쁘다는 핑계의 먼지를 털어내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명절이라는 징검다리를 이용해 식탁으로 초대한 추억들이 구순합니다.  



김준근 <줄다리기, 1890년 대>



  위 그림은 구한 말의 화가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 연대 미상)의 <줄다리기, 1890년대>입니다. 줄다리기는 보통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지만 추석에도 흔한 민속놀이였습니다. 저 줄다리기에 쓰는 줄은 새끼로 꼬거나 칡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길쭉한 모양의 숫 줄을 둥근 고리 형태의 암줄에 꿰어 빠지지 않도록 했지요. 동양은 음양의 합일, 천지와 양극의 조화를 추구했기에 암수 두 줄을 합쳐 힘을 겨루는 것을 공동체의 화합을 추구하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삼국사기>에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신라 3대 유리 이사금 때 도읍 안의 부녀자들을 두 파로 나누고 두 명의 왕녀를 리더로 삼아 백중(음력 7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한 데서 유래했지요. 승부를 마친 음력 8월 15일, 그간의 성적을 심사해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과 술을 내고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도록 했습니다. 당시에 이 날을 '아름다운 승부' 즉 '가배(嘉排)'라고 했으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가배'가 '가위', '한가위' 등으로 이어졌는데 '한'은 '크다'라는 의미고 '가위'는 '가운데'를 말하니 8월의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지요?



  이 추석의 길쌈놀이는 ‘두레 길쌈’이라는 제도로 조선초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추석을 시기로 보면 뜨거운 여름에서 신선한 가을이 되는 때이니 추운 계절을 준비하는 마중 행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먹을거리, 입을 거리가 부족했던 옛 공동체에서 가장 즐겁고 효율적으로 음식과 옷을 장만하는 실용적인 행사였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한 필의 옷감은 그저 옷감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요구하는 세금(군포)이었고, 옹색한 집안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화폐였고, 끊임없이 유린당했기에 끝까지 지켜야 하는 신분의 증명서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손재주로만 짜였겠습니까? 안살림은 모두 여자 몫이라는 관습의 무게에 짓눌린 땀, 어떻게든 자식을 키우려는 모성의 아픈 눈물, 참혹한 하루를 감내하는 여인의 한숨과 노래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직조한 삶의 무늬였습니다.



  이제는 길쌈을 하지 않지만 아마도 이런 연유로 여자들에게 있어 명절이란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하루로 인식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전통문화가 고루하고 낡게 인식되어 안타깝습니다. 함께 줄다리기, 널뛰기를 하며 음식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따뜻한 날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번 추석엔 가족과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정갈한 차례상과 소박한 음식으로 손님을 맞으면 어떨까요? 옛 조상들처럼 직접 햅쌀로 빚은 백주(白酒)는 아니어도 넉넉히 술을 준비하고 깨로 속은 넣은 송편도 사고, 한 두 가지 전을 부친다면 더 좋겠습니다. 


  “까똑”하고 핸드폰이 울립니다. 소원(疏遠)했던 벗과 친척과 이웃과 문자로나마 건강과 평안을 묻고 소식을 주고받는 ‘추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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