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셋째 주 - 칼 라르손 <크리스마스 아침>
델라는 눌러도 울릴 것 같지 않은 벨과 편지가 꽂혀본 적이 없는 우편함이 있는 주 8달러짜리 아파트에 삽니다. 그런 아파트에 사랑하는 남편 짐이 돌아오면 델라는 짐의 어깨에 비듬처럼 내려앉은 세상의 먼지를 가볍고 사랑스러운 포옹으로 툭툭 털어내 주곤 했습니다. 먼지가 옷감에 스며들지 않도록.
크리스마스이브, 그녀는 1센트짜리 동전을 그러쥐고 '이걸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합니다. 세 번이나 세어 본 돈은 1달러 87센트, 그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고 쓰여 있네요. 그녀가 푸줏간이나 야채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깎고 아껴서 모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이런 델라의 고민과는 다르게 이 꼬마들은 벌써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나요? 작품 제목이 <크리스마스 아침, 1894>인 걸 보니 간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가셨나 봅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장난감 칼을 머리 위로 올린 아이는 갑판 위에서 거친 파도를 노려보는 용감한 선장입니다. 고래도 상어도 무섭지 않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엔 아랑곳 않고 어른스럽게 스케이트 날을 매만지는 붉은 조끼의 소년도 보입니다. 스케이트가 발에 꼭 맞는지 살피는 두 눈은 이미 빙판을 달리고 있네요. 뚫어져라 만화를 보고 있는 금발머리 소녀는 두 다리를 모으고 집중하는 폼이 무척 진지합니다. 무언가를 컵에 담는 어린 꼬마와 침대 위, 인형을 안고 미소 짓는 소녀도 보입니다.
명랑한 해는 창문을 두드리고 밤 새 아이들 곁을 지켰던 촛대의 초는 몽당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선물을 확인하느라 세수도 하지 못했을 테고, 문 밖엔 선물을 싣고 왔던 산타가 시치미를 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할 테지요? 크리스마스 아침, 세상은 선물을 받아 행복한 아이들로 꽉 차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칼 라르손(Carl Larsson, 1853~1919)은 자신의 아이들을 모델로 행복한 가정의 하루하루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는 살면서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장인이 남겨 주었던 집을 고치거나 했습니다. 자녀를 총 여덟 명 낳았는데 아이들이 한 명 씩 늘어날 때마다 집을 수선했다고 하니까요. 그는 매일매일 아내 카렌과 함께 정원을 손질하고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음식을 함께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 우울이 찾아오면 초라해지는 자신을 쓰다듬으며 주위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평생의 선물이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위대한 사람이었던 게지요.
이 다정한 그림처럼, 오헨리의 소설처럼, 크리스마스엔 선물이 필요합니다. 왜냐구요? 이름도 모르는 동방박사도 갓난 예수님을 찾아 경배할 때 선물을 준비했잖아요. 축복처럼 말입니다. 가난하든 넉넉하든 성탄 전날, 소박한 나무에 종과 방울을 매달고 가족에게 줄 작은 선물을 숨겨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추위에 끄떡없는 담요와 털신과 달달한 마음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길냥이와 강아지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럼 캐럴처럼 신나고, 성가처럼 고귀하고, 오페라처럼 격정적인 사랑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