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루야, 놀러 가자

프롤로그 - 펠릭스 발로통

by 안노라

느루야, 놀러 가자. 가을이 오기 전, 너랑 나랑 청춘의 여름 바닷가로 가자. 아직 햇빛에 그을린 모래가 있고 젊음의 노래가 남아있는 해변으로 가자. 파라솔 하나 세워놓고 뒹굴거리다 낮에는 벌거벗고 물놀이를 하는 거야. 밤에는 해안가에 떨어진 별을 줍는 거야.



느루의 잠을 빼앗는 책과 핸드폰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바닷가에 던져버리자. 불안과 의심으로 깊은 숙면에 들지 못하는 느루를 포함한 모든 불면의 청춘들에게 폭우처럼 쏟아지는 안식의 여름, 그 자유로운 하루를 선물하자!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닷속에 떨어진 책과 핸드폰으로 우리의 언어를 익힌 물고기들이 느루와 엄마의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여 줄 거야. 그러니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놀자.


책을 덮은 느루야, 너 혹시 이 그림 본 적 있니?



왈츠 1893.jpg 펠릭스 발로통 <왈츠, 1893>



이 작품은 1896년 펠릭스 발로통(Fellix Vallotton, 1865~1925)이 그린 <왈츠, 1893>란다. 발로통은 천사의 날개를 달고 금가루 가득한, 반짝이는 대기로 날아오르는 춤추는 사람들을 그렸어. 그들은 서로 껴안고 키스하고 춤추고 있지. 원래 이 작품 배경은 파리의 샹젤리제 원형 무대에 있는 아이스 팰리스에서 스케이트 공연을 하고 있는 한 쌍의 댄서를 모델로 했다는구나.



넘실거리는 빛의 파도에 부서지는 얼음 결정이 제각각 빛을 반사하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춤추는 사람들의 찬란한 모습을 떠 올려봐. 파트너의 팔에 의지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댄서의 얼굴이 곧 몸이 증거 하는 삶의 환희 아니겠니?



느루야, 껴안고 키스하고 춤추는 시간을 가지렴. 행복하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한단다. 햇빛 속을 걷거나 빗 속을 달리거나 우주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낭만고양이가 되어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를 잡아야 해. 함께 뒹굴고 소리치며 삶의 굽이굽이에 숨겨진 고소한 알맹이를 찾아야 해. 마음을 다독이는 알맹이를 먹으며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는 거야.



그동안 느루는 너무 오래 깨어 있었어. 봄, 여름 내내 붙박이 장롱처럼 책상에 붙잡혀 잠들지 못했잖아. 엉덩이가 납작 해졌겠다. 엄마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단다. 젊음은 세상과 투쟁할 갑옷을 얻으려 노력할 때가 아니라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아오르려 애쓰는 시간이라는 걸! 멀리 날려면 크고 튼튼한 날개를 가져야 하고 날개가 산맥과 바다를 건널 만큼 자랄 수 있도록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걸. 웅크리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지만 결코 포기해선 안돼. 네가 할 일은 낮엔 부지런히 날갯짓을 연습하고 밤엔 엄마와 함께 그림을 보며 쉬는 거야.



그림 속엔 태초부터 이어 내려온 빛과 어둠이, 지혜와 우둔이, 상징과 비유가, 신앙과 이성이, 문명과 야만이 아직도 캔버스 위에서 연거퍼 합을 겨루고 있단다. 시들지 않는 꽃과 진흙으로 빚은 왕관과 펜이 닿지 못했던 피와 눈물의 역사도 있지. 그림이란, 예술이란, 인간의 눈물을 닦아 주는 신의 손수건이니까.



젊음이 고단한 느루야, 오늘 엄마랑 여름 밖으로 더 멀리 나가보지 않을래? 120*80cm의 책상에서 벗어나 서른 살이 된 느루가 기억할 수 있는 스물여섯의 바닷가로 가지 않을래? 오늘 바닷가에 떨어진 별로 공기놀이하지 않을래? 저 연인들처럼 모래밭에서 함께 춤추지 않을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