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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May 10. 2023

내 꿈은 내가, 네 꿈은 네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81.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맵고 찬 바람이 불었으니 두어 달쯤 되었나? 기특한 녀석! 한 손엔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는 양손이 바쁜 엄마를 기다려 주지 않겠니? 어찌나 어여쁘던지. 엄마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낮은 목소리로 '저 중학교 1학년이에요' 하는 게야. 제 딴엔 제법 컸다는 말이겠지. 몇 층 사냐고 물으니 씩 웃으며 '12층요. 몇 달 전 이사 왔어요. 전 여러 번 봤는데...' 하면서 자전거 핸들을 쓱쓱 문지르더라. 그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고맙다는 말도 미처 못 하고 허둥지둥 내렸지 뭐니. 엘리베이터이니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어도 좋았으련만 그땐 왜 그 생각이 안 났는지 내리고 나서 아차 싶었다.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을 처음으로 상상한 사람은 분명 외향적이었을 거야. 엎어지면 코 닿을 대문을 만들어 수다스럽고 나눌게 많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을 거야. 하지만 상상만 했지 직접 살지는 않았을 거야. 아파트는 10년을 살아도 이웃을 만들기 어렵거든. 특히나 내성적인 사람은! 엄마는 10년 너머 사는데도 얼마만큼 아는 척해야 자연스러운지 가늠하기 힘들어. 불쑥 '안녕하세요?'라든지 '몇 호 사세요?'라고 묻기가 어색하고, 꼬마들은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 괜히 이름 같은 거 물었다가는 경찰관이 초인종 누를 판이야. 


  다시 만나면 고마웠다고 말해야지 하고 있었지만 5월이 되도록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단다. 한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사탕도 내 입에 넣어버리고 잠시 잊고 있었어. 그런데 베란다 밖으로 쓸쓸한 놀이터를 바라보고 있던 어제, 그 소년을 보았구나. 어젠 바람이 세게 불어 비가 옆으로 내렸어. 텅 빈 놀이터에 누군가 자전거를 끌고 와 한참 서 있는 거야. 비는 우산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쫄딱 젖을 텐데 싶어 자세히 봤지. 어렴풋이 그 기특한 소년 같았지만 눈 나쁜 엄마로선 긴가민가 했어. 그저 이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서 있는 마음은 어떤 걸까, 마시던 커피잔에게 물어봤지.


  그런데 마침 마트에 주문했던 먹거리가 도착했다고 초인종이 울리는 거야. 나갔더니 미처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 문 안에 그 소년이 있더라. 흠뻑 젖은 자전거 핸들을 잡고 역시나 다른 한 손으론 배송기사님을 기다리는 열림 버튼을 누르면서.


  느루야, 엄만 그 소년이 놀이터에 서 있던 시간보다 더 오래 거실에 서 있었어.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인터넷 지식사전에도 없는 그 말을 연습했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게 할 말. 


  "저... 아래 303호에 살아요. 소라를 삶았더니 양이 많아서 조금 드리려고요, 드리려고요, 드리려고요..."


  문이 열렸어. 두 아줌마가 문을 사이에 두고 엉거주춤 섰어. 그 적막이 어색해 얼른 접시에 담은 소라를 내밀었어. 

  "지금 막 삶았어요. 따뜻할 거예요."

  "아니, 뭘 이런 걸... 전 이사 와서 인사도 못 드렸는데..."

  엄만 별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얼른 내려왔구나. 삶은 소라는 그 아이가 자전거에 싣고 온 추위를 내리고 몸을 덥혀주겠지. 글쎄 둔한 엄만 중 1 남학생에게 사탕이나 주려고 했으니...ㅉㅉ 이제라도 눈치가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조금 있다 초인종이 울렸어. 예상치 못했는데 12층 아주머니가 서 있지 않겠니? 양이 아주 많더라면서, 시간 되면 같이 먹자는 말에 내심 그 아이가 궁금하기도 해 모르는 척 올라갔단다. 실은 주문한 소라를 몽땅 삶아 가지고 갔었거든. 느루야, 내 머리가 좋은 거니, 나쁜 거니?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발랄라이카를 든 어린 소년, 1930>



  엄마가 갔을 때, 민준이라는 그 아인 잠깐 인사만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 알고 보니 민준 어머니는 엄마보다 두서너 살 작은 나이라 차이가 크게 나지 않더라. 금방 통했지. 민준이는 서른다섯에 결혼해 마흔 하나에 낳은 아이래. 귀한 선물이라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 돌보고 있다고 하더구나. 이곳 중학교가 인근에서 유명해 배정받으려고 부러 이사했다고 해. 어디냐고 물었더니 네가 나온 중학교였어. 엄만 여즉 몰랐구나. 서울 아닌 지방인데 유명한 들 대수롭겠나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학교는 근거리 배정이니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았어. 자신이 어릴 때 피아노 배우고 싶었기에 민준이에게 피아노 레슨도 시키고 있다고 하더라고. 착한 아이였는데 요즘 사춘기가 왔는지 방문을 꼭 닫고 핸드폰도 제 방에서만 받는다면서 서운해 하셨어.


  엄마들이 모이면 다 아이들 얘기니 느루랑 누가 신상도 금방 털렸겠지?ㅎㅎ 몇 살인지, 어딜 나왔는지, 그리고 지금 무얼 하는지...  


  그리고 조심히 물으시더구나.

  "어떻게 공부시켰어요?"


  다행히, 운 좋게, 마침,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어. 작은 핑계를 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민준이의 비에 젖은 자전거가 엄마 옆에 서 있네. 


  느루야, 너희들의 열네 살이 어땠는지 기억하니? 정말 재미있었지. 꼭 이 그림 같았단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체커 게임>   



  너희들은 공부보단 노는 걸 좋아했지. 바이올린을 가르치면 30분 늦게 갔다 30분 일찍 와 버렸지. '발랄라이카를 든 어린 소년'은 악기를 배우며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연극 공연을 함께 가면 자기 일쑤였고, 독서를 권하면 글자 울렁증이 있다고 했어. 학원은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나라에만 살 테니 영어는 시험 치를 정도만 하겠다고 했어. 으례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주기적으로 감기가 들어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해. 맞지?


  그러고선 아파트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게임방에서 스타그래프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부루마블에 열 올리거나, 노래방에서 온몸으로 고래고래 노래를 질렀어. 하지만 그중 가장 좋아했던 건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보그다노프 벨스키(Nikolai Petrovich Bogdanov-Belsky, 1868~1945)의 그림 <체커 게임>처럼 물가에서 체스를 두거나 수영하고 첨벙거리는 것이었지. 아직도 베란다 창고에 누가 오빠의 체스판 있는 거 알고 있니?


  느루야, 너희들의 열네 살 같은 이 작품 <체커 게임>은 나무에 오일로 채색한 거란다. 그런데 꼭 수채화 같지. 굽슬거리는 머리카락, 구김 있는 셔츠, 그늘진 바위, 햇살을 받아내는 윤슬, 모두 굵고 선명한 붓자국이 보여. 딱딱한 나무판 위에 순간에 사라지는 여름날의 힘센 햇빛과 활대처럼 짱짱한 공기를 담았어. 어쩌면 거친 세상살이에 '사각'하고 베어질지도 모를, 아직은 풋풋한 소년들의 우정까지. 


  이 그림을 그렸던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가 인상주의 영향을 받았거든. 러시아의 전통적인 이콘과 사실주의 기법 위에 '빛과 찰나'를 잡아 두었지. 그의 그림은 그가 러시아인임에도 가볍고 투명하고, 비천한 신분이었음에도 낙관적이고 따뜻하고, 성공한 화가가 되었음에도 시골의 소박한 아이들이 웃고 있단다. 밝고 쾌활했던 그의 재킷 주머니는 항상 아이들에게 줄 사탕과 견과류로 불룩했다는구나.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교실 문 앞, 1897>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내상이 극심했던 1868년에 태어났어. 느루야, 당시 러시아는 성한 곳이 없었단다. 1811년에 있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은 영광 없는 승리였어. 이 승리로 얻은 전리품이란 더 권위적이고 폐쇄적이 된 왕조, 뒤걸음질 치는 경제, 귀족들의 부패와 타락, 처참한 상태로 방치된 무지한 농노들, 그리고 이를 바꿔보려고 일어난 데카브리스트난(1825년)이었지. 나폴레옹이 흔든 '자유'의 깃발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단두대에 젊은 장교들의 목을 치는 칼날이 되어 떨어졌단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핏줄이 선명한 목이 연이어 잘렸고, 시신의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지. 로마노프 왕조는 쉴 새 없이 락스를 부었지만 1868년에도 그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어. 


  1868년 햇빛이 쇠약한 12월, 그는 건조하고 난폭한 곳에서 태어났구나. 날품팔이하는 여인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지역 지주에게 바텐더(?)로 고용된 여인의 사생아였다고도 해. 그가 태어났을 때 신부는 '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의 '보그다노프'라는 성을 세례 선물로 주었어. 그의 시작이었지.


  느루야, 이 작품을 보렴. 1897년에 그린 <교실 문 앞>이야. 네가 보기에도 누덕누덕 기운 옷과 작고 얼룩진 배낭, 살이 드러나도록 해진 바지, 칭칭 동여맨 신발로는 저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겠지. 그렇지만 소년은 포기하지 않을 것 같구나. 소년의 지팡이가 이미 교실 문 안으로 들어가 있으니 말이야. 니콜라이는 화면 양 쪽으로 문을 배치해 좁고 완고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꼿꼿하게 교실 안 학생들을 바라보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여줘. 문명에 위축되지 않는 야생의 어깨를. 신분에 길들이려는 채찍을 뿌리치는 단단한 손을, 그늘을 넘어서려는 빛의 발걸음을.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암산, 공립 라진스키 학교에서, 1895



  어려우다, 어려우다, 어려우다...

  그의 작품 <암산, 공립 라진스키 학교에서, 1895>는 보기만 해도 행복해져. 열한 명 소년들의 표정에서 머릿속을 두드리는 계산기 소리가 나. 통통 마룻바닥을 구르는 숫자들이 보여. 선생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년은 정답을 맞히지 못한 것 같아. 정답이었다면 라친스키 선생님 얼굴이 후크선장이 아니라 피터팬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저 문제 정답이 뭐지?


  음... (100+121+144+169+196)이니까 730, 이를 365로 나누면 "2"인가? 엄마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알려줄까?ㅎㅎ


  이곳은 수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세르게이 안드로비치 라친스키(1833~1902) 교수님이 귀족이라는 신분과 모스크바 대학교수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벨스키 타테보(Belsky Tatev)에 세운 인민학교야. 교육의 기회가 없는 농노나 하층민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지. 니콜라이는 기숙학교였던 이곳에서 기어코 세상으로 나갈 문을 열게 된단다. 그가 신의 음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그림으로 옮길 줄 아는 명백하고 탁월한 화가임을 라친스키가 단박에 알아차렸거든. 


  장미도 툰드라에 심으면 얼어 죽기 마련이므로 라친스키는 니콜라이를 양분이 풍부한 토양에 이식시키기로 해. 그의 지원으로 1882년, 니콜라이가 열네 살이 되던 해, 본격적인 회화 공부를 하기 위해 그리스 정교의 정통 이콘화를 가르치는 트리니티-세르게이 라브라 수도원으로 떠난단다. 드디어 그가 얼룩진 배낭 대신 가방을 들고 저 교실 문턱을 넘어 빛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지. 이후로 라친스키는 어린 제자에게 어떠한 주문도 하지 않았어. 니콜라이가 화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매달 25 루블이라는 거금을 후원하며 그를 위해 기도했어. 지쳤거나 영감(靈感)이 필요한 제자가 찾아왔을 때마다 따뜻한 위로를 건넸지. 그는 훌륭하다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의 위대한 스승이었구나.


  이 작품은 니콜라이가 자신의 스승 라친스키에게 바치는 고귀한 헌사요, 깊은 감사의 증표라고 말했어. 


  느루야, 니콜라이의 열네 살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 발자국이었던 것처럼 느루도, 누가도, 민준이도 세상을 향해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열네 살이었겠지?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줄다리기>

  


  엄마는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민준이의 자전거 바퀴를 굴려본다. 어디를 구르다 왔을까? 학원을 씽씽 다녀왔지만 마음은 이사하기 전,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오지 않았을까? 피아노 레슨을 통당통당 받고 왔지만 니콜라이의 그림처럼 물가에서 벌거벗고 줄다리기를 하고 오지 않았을까? 등뼈가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온 몸통에 힘을 주고 동글동글한 두 바퀴를 구르며 세상 속을 달리고 오지 않았을까?


  민준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느루도 누가도 중 1 때, 그닥 공부를 잘하지 않았어. 관심도 적었지. 외려 세상을 맛보고, 두드려보고, 자고 나면 달라지는 자신의 신체를 만지려 했어. 종이나 화면을 통해 배우기보다 직접 감각으로 느끼려 했지. 엄만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너희들을 그저 응원만 했구나. 가끔 너희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찾아오면 그 불안을 잠재우듯, 내 몸과 내 생각이 내 것이어야 세상의 것들을 알맞게 배울 수 있다고 다짐했어. 


  잘한 걸까? 미욱했던 걸까? 느루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 늘 헤매었던 것 같아. 그래서 더 더 배우고 싶었어. 틈을 만들어 책을 읽었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명한 것', '확실한 것', '절대 이성'은 없다고 했어. 대문자로 쓰는 진리는 없으며, 동시에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진리가 있다고 했지.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어 좋고 나쁨이 있을 뿐이라고. 신을 죽이고 주인의 도덕을 가지고 어린아이처럼 살라고 말했어. 선입견 없이 순진무구하며, 잊어버림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고, "I am as I am 나는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말이야.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미래의 이방인, 1889>



  민준 어머니도 '엄마'가 처음이니 나처럼 헤매기도 하겠지? 민준 어머니에게 보여 줄 그림을 골라보자. 이건 어떨까? 느루에게 먼저 소개하고 싶구나. 니콜라이는 열네 살에 이콘 회화를 시작으로 2년 뒤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했어. 그곳에서 바실리 플레노프나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와 같은 거장들에게 배웠지. 졸업 작품을 제출해야 할 시기가 오자 그는 신이 자신에게 준 재능에 감사드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 고민 끝에 스승 라친스키가 있는 타테보로 갔지. 그곳에서 그를 드디어 '예술가'로 만든 작품을 완성해. <미래의 이방인, 1889>이야. 


  



  느루야, 소년의 진지하고 슬픈 눈을 봐. 아주 먼 곳을 향하고 있지. 소년의 이름은 세멘 도로페예프이고 열네 살이란다. 세멘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하고 나서 홀로 마을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대. 마을 사람들이 2주 후 그를 찾았을 때는 약간의 구운 빵과 삶의 즐거움 너머를 보는 은둔자의 맑은 영혼을 만나고 왔다고 전해져. 운명을 받아들이는 어리고 사려 깊은 눈앞에, 나이 든 방랑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니콜라이는 세멘의 얘기를 그림으로 옮겼어.  


  19세기의 러시아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에 입각한 회화 전통이 충실히 보존된 곳이야. 그림의 세부 묘사를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니콜라이는 전통적 회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지. 다소 어두운 색상의 다채로운 톤 변화를 통해 소년의 영적 순결함, 영혼의 신비로움을 드러냈지. 그는 이 작품 완성에 지나치게 힘을 쏟아 기절했다는구나. 미술사학자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스타소프는 이 작품을 통해 니콜라이를 주목했고 이후 마리아 페도로브나 황후의 후원과 외국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어. 그는 빠르게 성장했지. 1905년엔 학자로 임명되었고 1914년 예술 아카데미 정식 회원이 되었단다. 


  느루야, 그의 '보그다노프- 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성(性)은 신부님이 주셨다고 했지? 그는 나중 그를 성장시킨 마을 '벨스키'를 그의 성에 붙인단다. 그의 그림은 러시아와 세계 미술사에 '보그다노프 벨스키'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인정받았구나.  


  느루야, 민준 어머니에게 왜 이 작품을 보여 드리고 싶은 줄 아니? 수도자의 길을 택한 세멘처럼, 화가의 길을 걷는 니콜라이처럼, 고결한 지식인의 삶을 실천한 라친스키처럼 세상의 가치를 떠나 인간은 '자신이 부여하는 삶의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야. 우린 신중히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무수히 흔들리면서도 그 길을 가지. 설령 자식이어도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길이야. 


  햇빛 좋은 날, 공원 산책 하자고 민준 어머니에게 말해볼까? 나란히 걸으면서 두려워말고 아이를 믿어보라고 슬그머니 권해볼까? 자연 속에서 신명나게 노는 것도 큰 배움이라고 알려줄까? 앞으론 '좋은 환경'의 선택권을 아이에게 주어보라고 할까? 또 자신이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면 언제라도, 설사 그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직접 배워 보라고 할까?


  내 꿈은 내가, 네 꿈은 네가 이루어야 한다고...

  우리 삶에 '대신'은 없다고...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 <미래의 스포츠맨>



  느루야, 오늘도 쏟아지는 잠을 밀어내며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이십 대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느루의 고달픈 선택을 존중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고 싶은 꿈을 이루려는 느루의 그 '나날'을 파수꾼처럼 보호해. 느루야, 꼭 성공이나 행복이 목표일 필요는 없어. 만족보다 더 깊고 위대한 결핍이 넝쿨을 걷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게 해 주기도 한단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벽돌을 스스로 쌓아 올리는 과정이 '자신'이라는 집을 완성하는 필수조건이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네 삶을 진심을 다해 살아.


  민준이에게는 이 <미래의 스포츠맨>을 선물해 주자. 맨 몸뚱이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더 힘껏 달리라고 말해주자.  



PS : 화가에 대한 어린 시절 자료가 각양각색입니다. "지역 지주에게 바텐더로 고용된 여인"은 여러 자료에 제각각 번역이 달라 이렇게 표기했습니다. 더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되면 수정하겠습니다. 


#보그다노프벨스키

#러시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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