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아닌 현실의 연애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8 파블로 피카소(2)

by 안노라

빵 터졌지 뭐야. 이렇게 재미난 동영상이 있다니! 연애를 가르쳐 주는 동영상이 있더라고. 효과적인 밀당에 대해서, 좋은 남자를 만나는데 피해야 하는 장소에 대해서, 상대의 호의가 나에 대한 호감인지, 단순한 친절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등등 말이야. 연애에 대해서 얼마나 재미있고 쏙쏙 알아듣게 설명해 주는지 "와우"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단다. 이 영상을 엄마가 이십 대에 봤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야. 연애에 대한 학위가 존재한다면 그 유튜버는 재론의 여지없이 '박사님'이야. 더 높은 학위가 있다면 주고 싶더라.


나이 오십 중반에 무슨 그런 동영상을 보느냐고? 웬걸, 연애란 나이나 지위, 결혼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 관심 있단다. 연애란 결국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거든. 사랑받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자신을 매력 있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순간, 전쟁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지구도 바로 천국이 되지. 자료를 찾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영상으로 하루 종일 반전의 연속, 웃음의 릴레이였어. "맞아, 맞아." 하면서 낄낄대다 보니 해가 지던 걸. 이걸 느루한테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어.


느루도 연애를 하게 되겠지?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도 하겠지? 그래, 느루는 지혜로우니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운명처럼 사랑하게 될 거야. 하지만 겉모습만 봐도 종(種)의 혈통을 알 수 있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깊이는 이해(利害)라는 시금석이 필요하고 시간의 담금질을 거쳐야 알 수 있지. 능력뿐 만이 아니라 품성을 봐야 하니까. 이 사람이 온전히 날 사랑하는지, 제대로 된 사내인지 어떻게 확인하지? 연애의 신, 피카소를 참고해 볼까? 일단 그림부터 보자.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왼) 파블로 피카소 <기타 세레, 1913> / (오) 파블로 피카소 <기타 음악 악보, 와인 잔, 1912>

현대미술의 신호탄을 쏜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의 <기타, 세레,1913 / <기타, 음악 악보, 와인 잔, 1912>라는 작품이야. "어, 이거 내가 중학교 미술시간에 한 건데." 싶지. 맞아.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콜라주 기법이라고 하면서 도화지에 붙여보라고 하셨을 거야. 그러면 친구랑 장난치면서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신나게 붙이지 않았니? 이런 것도 미술이구나 하면서. 이 콜라주 기법은 1912~1913년경 피카소가 처음 시작한 거야. 물론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와 함께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탄생한 거지. 두 그림을 볼까? 색종이 위에 조각 벽지와 오린 신문지를 붙이고 목탄과 연필로 선을 그었어. 기타를 표현하는데 맥락 없는 악보 한 장을 떠억, 붙여 놓고 말이야.


그동안 회화라는 건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피카소는 이런 사고의 틀을 가위로 싹둑 잘라 버렸지. 그리고 브라크와 함께 신문지나 벽지, 음악 악보, 인쇄물 등과 같이 회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물질을 캔버스 위에 풀로 붙였어. 아무것도 아닌 듯했지만 이는 사물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나 이미지를 파괴하는 시도였어.


우리의 머릿속에는 신문지, 벽지, 악보 이런 것들이 갖는 고유한 이미지가 있어. 예를 들어 신문지의 이미지는 그 안에 활자가 담고 있는 내용이 주인공이지. 하지만 피카소는 신문지라는 물질 자체에 주목했어. 그 물질이 갖는 색, 질감, 활자 패턴 등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했어. 그는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모아 감각적인 형태와 색다른 채색 효과, 화면 구도를 변형한 입체감이 나도록 했어. 마치 '어느 것도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는 웅변처럼 말이야.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근대를 거쳐 오는 동안 돌과 대리석으로 단단하게 구축되었던 회화에 대한 관념을 피카소는 가위와 풀로 단숨에 해체해 버렸단다. 폭음도 먼지도 일지 않았지만 과거의 견고했던 이미지들은 짚단처럼 풀썩 주저앉고 말았지.


그런데 이 콜라주가 제대로 된 남자 만나는 법이나 연애 기법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그가 창의력에 불타 획기적인 시도를 하거나 예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그의 곁엔 새로운 여인들이 자리를 바꾸어 나타났어. 그가 콜라주 기법에 몰입했을 때는 그의 곁에 에바 구엘(Eva Gouel)이 있었어. 첫 번째 여인 페르낭드의 친구이자 피카소의 친구 마르쿠시스의 애인이었지.


(왼) 파블로 피카소 <안락의자의 누드, 1913> / (오) 안락의자의 올가, 1917>

왼쪽 그림을 봐. 에바를 모델로 했다고 해. 단박에 입체파의 특징인 평면적 면의 분할이 보이지. 안락의자의 보드라운 질감, 작고 완만한 여인의 몸,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늘어진 젖과 연필심 같은 젖꼭지 등 정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6년에 결핵으로 사망해. 선천적으로 몹시 허약했던 그녀는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피카소의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없었던가 봐. 그녀가 기침을 시작하고 폐결핵 진단을 받자 피카소는 감염을 우려해 혼자 이사했다고 하지. 에바가 병을 앓는 동안 그는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했어. 화상(畵商)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칸바일러가 피카소를 나무라지. 마르쿠시스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놓고 몸이 약한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고 말이야. 과연 그녀는 온전히 사랑받았던 걸까?


에바가 죽은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피카소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발레리나를 만나게 돼. 그녀의 이름은 올가 코클로바(Olga Kokhlova, 1891~1954)야. 오른쪽 그림의 여인이지. 그녀는 러시아 발레단 소속이었어. 피카소가 시인 장 콕도의 소개로 러시아 안무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e Diaghilev)가 안무한 <발레 파라드>의 무대미술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지. 피카소는 곧 그녀에게 반해 1918년 결혼해. 그리고 1921년, 올가는 피카소의 아들 파올로를 낳아.


올가를 사랑하는 동안 그의 작품은 다시 변하게 돼. 에바를 그린 그림과 비교하며 올가의 그림을 보자. 그동안과는 다른 고전주의 양식이 보이지. 입체파의 대표였던 피카소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통에 충실하고 사실적이야. 그의 그림은 면의 분할, 다시점, 토속적 형태와 색채, 콜라주 기법을 헌신짝 버리듯 던져 버렸어. 그리고 오로지 올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어. 사랑은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미학적 의미에서 그의 회화는 한참 뒷걸음쳤어. 그런데 이때, 피카소가 공연예술인 무대미술을 접하게 돼. 그가 그렸던 무대의 배경 그림도 보여줄게.

피카소 퍼레이드를 위한 무대커튼, 1917.jpg 파블로 피카소 <퍼레이드를 위한 무대 커튼, 1917>


그 당시 러시아 최고의 안무가, 디아길레프가 창단한 러시아 발레단 공연에 에릭 사티가 음악을 맡았고 피카소가 무대미술을 담당했어. '초현실주의'라는 예술사에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그들의 공연은 당시 혹평 일색이었단다. 하지만 먼 과거로부터 쉬지 않고 달려와 이제 우리의 망막에 닿은 빛처럼, 세기말의 혜성들은 20세기를 향해 먼 우주에서 달려오는 별들이었어. 음악, 문학, 미술, 연극, 발레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재능은 찬란히 빛났고, 용기 있게 명멸했어. 세상을 비추는데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단다.


귀족이었던 올가와의 결혼을 통해 피카소는 상류계층의 친구들을 만났고, 무대미술이라는 장르에 도전했지만 그의 그림은 인생을 다 살아버린 노인의 작품 같았지. 그는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어. 또한 올가는 발레리나로서의 생활을 오래 계속하지 않았어. 아들을 낳았고 가정이라는 안락함을 유지하고 싶어 했어. 피카소는 관객 없이 텅 빈 투우장의 황소 마냥 거친 숨을 삼키며 파리를 어슬렁 거렸지. 그의 내면에 있던 황소의 뿔이 고요한 신전의 기둥을 들이받았던 걸까? 고대 그리스 신전의 부조가 떨어져 나와 파리의 지하철 역 근처에 내렸어. 피카소는 그 여신을 이렇게 그렸지.


피카소 꿈 1932-horz.jpg (왼) 파블로 피카소 <꿈, 1932> / (오) 파블로 피카소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 마르, 1941>

왼쪽 그림 <꿈, 1932>을 봐. 금발에 곰의 앞발을 가지고 있는 소녀구나. 둥근 곡선의 부드러움이 느껴지지.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풍만해. 성마르고 까칠한 선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네. 누군가가 충분히 보호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어 황홀하고 꿈결 같은 얼굴을 가진 여인이지. 풍부한 금발, 관능적인 가슴은 동그랗고 부드럽게 표현되었어. 색은 밝으면서도 차분하고,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구나. 농염하고 원숙하고 섹시한 느낌보다 풍만하되 아기 곰처럼 구순하고 앳되고 건강한 아름다움이 넘치지. 누굴까?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여인은 피카소의 네 번째 여인, 마리 테레즈(Marie Therese Walter, 1909~1977)야.


1927년 1월, 파리의 라파예르 백화점 근처 역을 지나던 금발의 젊고 아름다웠던 열일곱의 마리는 한 중년 남자의 제의를 받지. "난 피카소요.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소. 당신과 나는 훌륭한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거요." 피카소는 마흔다섯이었어. 이미 성공한 화가였고 그의 제의는 화가와 모델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어. 여신처럼 아름다웠지만 세상을 모르던 마리는 두려워서 거절했지. 하지만 피카소의 집요한 제의에 6개월 후, 그녀는 피카소의 <거울 앞에 선 아가씨>의 모델이 되었어. 물론 마리는 그림에 대해서도, 피카소에 대해서도 하나도 몰랐어. 그녀는 수영과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순수하고 밝고 건강한 소녀에 불과했지.


정체되어 있던 피카소에게 그녀는 미학적 영감(靈感)을 주는 존재였어. 피카소는 그 영감을 자양분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넓히고 훌륭한 그림들을 창조했단다. 예술가로서 피카소의 탁월한 능력일 거야. 하지만 마리는 피카소와 함께 훌륭한 일을 하게 되지 않았어. 아직 십 대였던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시기에 아무런 다른 선택지를 부여받지 못했어. 그녀는 피카소가 부인 올가와 살고 있던 집 맞은편에, 아틀리에를 빙자한 또 다른 집에 살게 되었거든. 마리는 피카소의 모델이 되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고, 이후 피카소의 새로운 연인인 도라 마르와 경쟁하는 초라한 자아만이 남았지. 그녀가 딸 마야를 낳은 다음 해인 1936년, 피카소는 '우는 여인' 도라 마르와 동거를 시작해. 오른쪽 그림이 피카소가 그린 그녀의 초상이야.


그녀는 '센 언니'였어. 프랑스 국립 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를 나온 엘리트였고, 현대 사진의 전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친구였지. 그녀는 능력을 인정받아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맨 레이의 조수로도 일했으며,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의 영화 기록 사진작가로도 활동했어. 초현실주의 그룹에서도 핵심 멤버였어.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드문 파리지앵이었고 지적이며 섬세하고 세련됐지.


게르니카 3.jpg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이즈음 피카소는 지쳐 있었어. 마리 테레즈와 딸 마야의 존재를 알게 된 올가가 그를 떠났고 재산 분할을 요구했어. 마리 테레즈의 여신 같았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자 마감이 매끄럽지 못하고 둔탁한 조각상처럼 느껴졌어. 이때 도라의 지적인 영민함과 정열적인 호기심은 오십 대 중반에 들어선 피카소를 자극했고, 고국의 고난과 시대의 어려움을 바라보게 했지. 스페인의 게르니카 참상을 접하고 그는 붓을 들었어. 3주 만에 생애 최고의 위대한 대작 <게르니카>가 탄생했단다. 그녀는 작품의 착상과 주제에 영감을 주었고, 공간을 제공했고, 제작 의지를 독려했어. 작품 제작의 전(全) 과정과 피카소의 뜨거운 열정을 그녀는 사진으로 남겼지.


그나저나 여자들은 열이면 아홉, 남자들이 운동하는 도중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반한다고 했던가? 도라는 피카소의 넘치는 개성에 감동을 받았나 봐. 그를 사랑하게 되지. 문제는 피카소가 법적으로 올가와 결혼한 상태였고, 마리 테레즈라는 여인이 해바라기 마냥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지. 프랑스와즈라는 새 여인도 등장해. 피카소는 저울 위에 빵 덩어리를 얹어놓고 어느 한쪽이 기울면 그 빵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균형을 맞추듯 관계를 조율했어. 그녀는 피카소와 9년을 동거하면서 자신의 사진 작업을 조금씩 미루게 돼. 그리고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지. 피카소는 그녀를 '우는 여자'로 표현했어. 그런 상황에서 어느 여자가 웃을 수 있겠니?


(왼) 파블로 피카소 <여자-꽃, 1947> / (오) 파블로 피카소 <황소 머리>


1943년, 2차 대전 중이었어. 바로크식 건물은 포탄이 떨어져 곰보처럼 얽고, 사람들의 감정이 탄약에 그을리던 음울한 때였지.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했고, 한 개비의 담배를 나눠 필만큼 현재는 남루했어. 위태롭고 결핍이 많았던 시기엔 감정이 쉽게 격렬해지지. 예순둘이던 피카소는 변호사를 희망하다 중단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프랑스와즈 질로(Franceoise Gilot, 1921~? )를 만나게 되었단다. 그녀는 평소 게르니카를 그린 피카소를 존경하고 있었지. 그녀의 회고대로 당시는 품위 있는 우울보다 짧은 즐거움과 위로를 훔치는 것이 이해받을 수 있는 전쟁 중이었고, 피카소는 누구보다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 그녀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짐을 싸서 그의 곁으로 갔어.


왼쪽 그림은 질로를 그린 <여자-꽃, 1947>이란 작품이야. 지금은 오른쪽 그림을 보자. 그녀와 만남이 시작될 즈음에 제작한 <황소 머리, 1943>라는 작품이야. 길 가던 중, 버려진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를 가지고 와 만들었다고 해. 놀랍지 않니? 지금까지 엄만 자전거를 삼백 대쯤은 본 것 같은데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으니 역시 창조적인 사람은 다르다고 인정할 밖에. 인간적인 면에서 피카소에 불만이 많은 엄마도 이런 놀라운 작품을 보면 바로 고개를 숙이게 된단다. 피카소는 자신을 쉬지 않고 깨어있게 한 예술의 대가야.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의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았지만 최초로 피카소를 두고 떠난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어. 게다가 재판을 통해 두 아이를 피카소에게 입적해 어마어마한 유산상속이 가능하게 만들었어. 피카소와 헤어질 즈음, 마리와 도라, 누구도 놓지 않았던 피카소의 태도를 보고 이렇게 말했대.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내 사랑의 노예였을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노예는 아니에요. 마리가 '센 언니'였다면 프랑스와즈는 '쿨하고 당찬 언니'였나 봐.


피카소의 도예작품과 <앉아있는 자클린 로크, 1954>


프랑스와즈가 떠나자 일흔둘 인 그의 곁에는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 1927~1986)가 왔어. 벗어 논 외투를 걸치듯, 그녀는 피카소에게 맞춤하게 어울렸어. 27살의 이혼녀였던 자클린은 45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다고 말했지. 자클린은 헌신적이었고 다정했어. 피카소에게 등을 받칠 쿠션이 되어주고, 무릎 덮개가 되어주고, 우울한 기분을 다독일 아로마가 되어준 여인이지. 올가가 죽은 후, 자클린과 두 번째 결혼을 끝으로 현대미술사의 근육을 키웠고 예술이 성장할 수 있는 칼로리를 제공한 피카소는 1973년 사망했어. 그의 사망 후 마리 테레즈와 자클린도 자살로 삶을 마치게 돼.

느루야, 피카소는 서양미술의 전통적 문법을 깨고 그 파편들을 모아 현대에 진입시킨 위대한 화가야. 그는 입체파라는 흐름을 만들어 추상회화의 미래를 안내했지. 콜라주 기법을 시도해 뒤를 이른 화가들이 '아상블라주(폐품이나 일용품 등 여러 사물을 모아 미술작품을 제작하는 기법)'로 확대하게 한 장본인이야. 또 뒤샹의 '샘'처럼 레디 메이드라는 새로운 영역을 실험했고, 도자기를 통해 생활예술의 아름다움을 키웠어. 그는 전쟁이 낳은 파괴와 혼돈,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사회적 에너지의 폭발, 도시 속 개인들의 정처 없음과 외로운 심장박동을 캔버스 위에 수집했지. 그는 면밀한 감각으로 시대를 진단했고 처방전을 발행했어. 그가 발행한 처방은 현대미술은 자유로운 형식을 통한 내면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비로소 현대미술의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그 처방은 아직도 유효해.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까? 그를 사랑함으로써 자아의 성장이 있었을까?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피카소가 그녀들을 대상으로 한 밀당처럼 그녀들도 피카소에게 밀당을 시도했을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보았던 동영상을 피카소의 연인들이 봐야 했던 것 같구나. 엄마 생각엔 피카소에게 있어 사랑하는 여인이란 '지도'였던 것 같아. 미지의 땅을 찾아가는 지도. 새로운 대륙을 찾아 모험을 하는데 필요한 지도 말이야. 그곳에 도착하면 지도의 효용은 떨어지지. 아주 버리진 않는다 해도 주머니 속에 항상 간직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지도를 가지려고 하겠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으니까.


능력과 재능이 출중한 사람은 일을 같이 하는 동료로서 훌륭해. 어쩌면 서로의 협력 하에 각자 탁월한 업적을 이룰 수도 있을 거야. 게르니카를 작업하던 피카소와 도라 마르처럼 각자의 영역인 화가와 사진가로서 자극 받고 성장할 수 있지. 하지만 피카소가 연인으로서 도라 마르를 존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능력 못지않게 널 존중하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단다. 네가 느끼고 행동하고 깨닫는 것을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 대화가 통하는 사람, 네가 이룬 성취를 너만큼 황홀해하고, 너의 상실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해. 그리고 네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부분이 맞는 사람이어야 하지. 아주 사소하지만, 만일 네가 도저히 아침잠을 포기할 수 없다면, 아침식사를 혼자 차려 먹거나 바깥에서 해결해도 좋다는 사람과 만나야 해. 네가 소설책에서 사랑을 찾지 않고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면 말이야. 현실은 너무 냉정하다고? 아니야, 서두르지 말고 너와 잘 맞는 남자를 찾아봐. 분명 소설보다 더 황홀한 사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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