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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Oct 26. 2020

길들여지지 않은 바람, 이슬, 계란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40  틴토레토

  느루야, 미사리에도 가을이 왔니? 잔물결에도 단풍이 들었니? 얼마 남지 않은 조정경기대회 일정으로 가을을 미사리에서 맞게 됐다니 논문에 지쳐 있었던 너에겐 오히려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 잠시 활자는 잊고 너의 앞치마를 펼쳐 붉고 노란 단풍을 담아보렴. 마음이 훨씬 넉넉해질 거야. 


  실은 네가 미사리로 조정 훈련 들어간다고 했을 때, 엄만 의외였단다. 그동안 훈련을 맡았던 코치님이 바뀌었나 생각했어. 네가 조정의 특성과 그 코치님에 대해 여러 번 엄마에게 말했었잖아. 조정이란 0.1초, 0.2초를 다투는 운동이기에 노를 젓는 8명의 크루가 최선을 다함은 물론이고 일치된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운동이라고 했지. 당연히 각자 능력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코치의 권한 또한 절대적이라고 말이야. 여덟 명 선수를 한 호흡으로 묶어 최대한의 속도를 끌어내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겠지. 그 코치님도 여러 번 우승을 만든 능력 있는 분이시라고 했어.


  문제는 그분의 성향과 네가 몹시 맞지 않아 고민했었지. 선수 중 순한 한 사람을 골라 그에게만 유독 기합과 면박을 준다고 했어. 그럼 나머지 선수들은 공공연히 '가장 적응 못하는 한 사람' 덕분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쉴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아무도 코치님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느루는 이 방법이 힘든 운동으로 인한 선수들의 불만을 내부적으로 무마하게 되는 효율적인 조직 관리라고 했어. 하지만 의문을 제기했지. 동아리란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 패를 이룬 무리'라고. 즉 조정을 좋아하는 같은 뜻을 가지고 서로 연대하고 성장하려고 하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거라고. 그런데 왜 효율성을 연대보다 더 중시하고, 과정을 통한 배움이나 선수보다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를 중시 하는 거냐고 물었지. 그래선 결국 우승도 놓치게 된다며 코치님께도 여러 번 말했고 그 코치님과 불화(不和)한다고 했어. 그런데 이번 훈련에 참석한다고 하기에 놀랐단다. 


  네가 결정한 것이니 염려하지 않을게. 다만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이 그림이 생각났구나.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틴토레토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처형, 1565>


  옛 그림이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느루야 나랑 같이 천천히 살펴보자.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 아직도 걸려 있는 작품이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지. 초라하고 모멸적인 상황인데도 팔을 크게 벌리고 우릴 향해 말씀하고 계신 듯하지? 꽈배기처럼 울퉁불퉁한 팔 근육과 당당하게 편 가슴, 반원형을 그리며 펼쳐지는 빛을 보렴. 결코 악의 세력에 무너지지 않는 신의 아들로서의 존엄과 영광을 드러내고 있어. 이 그림은 가로 12m, 세로 5m가 넘는 대작이야. 초대형 작품 한가운데 빛의 주인인 예수님과 이 곳이 역사적 현장인 줄도 모르고 눈 앞의 현실에 매여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을 서사적으로 묘사했지. 


  자신을 따르겠다던 제자들마저 뿔뿔이 흩어져 홀로 고독하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까무러친 여인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지키는 선한 이들, 예수님의 겉옷을 두고 제비뽑기를 하는 병졸들, 말 탄 군인들과 땅을 파는 사람, '유대의 왕'이라는 자를 비웃으러 구경 나온 이들까지, 몹시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시간을 생생하게 그려냈어. 예수님의 오른쪽을 봐. 이제 막 자신이 매달린 십자가가 들어 올려져 극심한 고통 중에도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선한 죄인'이 있어. 예수님은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 삶의 마지막 순간, 예수를 향한 이 죄인의 바라봄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지향해야 할 롤모델이었고 죄로 가득한 삶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였지. 화가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어. 누구였는지 아니?


  그는 틴토레토라고 불렸어. 원래 본명은 자코보 로부스티(Jacopo Robusti, 1518~1594)로 베네치아의 염색공 아들로 태어났지. 이탈리아어로 염색공을 틴토레(tintore)라고 해. 그래서 틴토레토는 어린 염색공, 또는 염색공의 아들이라는 뜻이야. 그는 유명한 화가가 된 이후에도 본명으로 불리기보다 틴토레토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좋아했단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과거의 가난과 어려움을 대하는 방법이 둘 있지. 하나는 없었던 일인 듯 숨기거나 아니면 현재의 지위를 더욱 빛내주는 후광으로 사용하지. 하지만 성공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그는 염색공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어. 엄마가 그의 그림을 유심히 보게 된 이유야. 



   재능 있는 이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도 어린 시절,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지. 염색공장의 벽에 장난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 뛰어났던 거야. 아버지 지오반니는 아들의 삶을 바꿔주고 싶었어. 옷감을 물들이느라 손톱마저 얼룩덜룩해진 자신을 보며 이 일로부터 아들이 벗어나길 원했지. 화가로서 출세한다면 교황의 부름을 받거나 권세 있는 가문에 소속되어 보다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지오반니는 결심했어. 


  당시 베네치아에는 '회화의 군주'라는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가 있었구나. 당대의 그는 '위대한 화가'를 넘어 예술의 절대적 상징으로 군림했단다. 카를 5세가 티치아노가 떨어뜨린 붓을 손수 집어 주었을 정도니 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겠니? 카를 5세가 누구냐고? 그는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지. 당시 카를 5세의 지배령은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전체와 아메리카 대륙까지 자신의 발아래 둔 절정의 황금기였어. 그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약탈하고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자만심이 가득했단다. 


  그런 절대 지존의 황제로부터 귀족 작위까지 받은 티치아노였으니 화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 아니었을까? 티치아노가 그렸고 이후 절대군주 초상화의 전범이 된 <뮐베르크의 카를 5세, 1548>를 보자. 뮐베르크에서 신교도들과 치른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48년, 카를 5세가 티치아노에게 주문해 그린 그림이란다. 카를 5세의 앞으로 내밀어진 주걱턱과 그로 인해 내려 뜬 듯 보이는 눈을 봐. 결점일 수도 있는 그 부분을 마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엄 있는 자가 되도록 묘사했지. 티치아노는 르네상스 마지막 화려한 불꽃이었고 색채 없는 형태는 없다고 주장하며 뛰어난 색채주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화가란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뮐베르크의 카를 5세, 1548>


  이런 티치아노의 공방에 지오반니는 아들 틴토레토를 맡겼어.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말이야. 평사원일 땐 대리도 무서운데 사장 아들이 직속 상사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데 놀랍지. 틴토레토는 열흘만에(기간은 정확하지 않아. 그렇지만 아주 단기간안에) 뛰쳐나왔대. 티치아노가 틴토레토의 탁월한 능력을 질투해서 내보냈다는 말도 있고, 틴토레토가 티치아노에 적응하지 못했고, 추구하는 화풍도 너무 달라 뛰쳐나왔다는 말도 있어. 아마도 여기엔 스승이라는 권위에 공손하게 머릴 조아리지 못하는데다가 다혈질인 틴토레토의 성격이 한몫했을 거야. 하지만 어쨌든 둘은 맞지 않았던 거지. 일반적으로 상하가 분명한 관계에서 아랫사람이 상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사표 쓰기란 쉽지 않잖아. 그의 영향력이 워낙 크니까. 그런데 틴토레토는 훌훌 털고 나와 갖은 고생을 해. 한동안 그는 그림을 배울 곳도, 그의 그림을 사 줄 곳도 마땅치 않았어. 그는 많은 밤을 몰래 울었을 거야. 고생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처지를 낙담하면서...


  한편 티치아노는 공방의 제자 중 뛰어난 실력에 온화한 성품을 가진 파올로 베네로세를 곁에 두고 사사(師事)했단다. 이방인이었던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1528~1588)가 베네치아에서 인정받도록 지속적으로 후원했고, 나중 자신의 후계자를 베로네세로 공표해. 티치아노는 실력있는 많은 제자를 키웠어.


  하지만 틴토레토는 포기하지 않았지. 화단의 은근한 배척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제작한 그의 작품은 은성한 베네치아 도시 한 귀퉁이에서 때론 이름을 얻기도 하고 때론 비난을 받기도 하며 차근차근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져.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어. 베네치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재정이 튼튼한 평신교 종교단체였던 산 로코 스쿠올라가 건물을 지으면서 내부를 장식할 그림 공모를 했거든. 이 단체의 심사위원들은 화가들에게 밑그림만으로 심사할 것을 통보하고 기간 내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어. 다들 열심히 궁리를 했겠지.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긴 거야. 글쎄 틴토레토가 완성한 작품을 벽에 설치 해 버렸단다. 당황한 심사위원들이 난색을 표하자 틴토레토는 자신의 그림을 기증하겠다고 했어. 산 로코 스쿠올라의 규정엔 기증은 거절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거든. 


틴토레토 <영아 살해, 1587>

 

  우애 곡절 끝에 틴토레토는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의 내부 장식을 맡게 돼. 미켈란젤로가 성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맡아 평생의 대작을 이루듯, 이후 24년 동안 50~60여 점의 위대한 작품을 제작한단다. 그중의 하나인 <영아 살해, 1587>라는 작품이야. 평생 그가 추구했던 예술 세계가 잘 나타나 있는 그림이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틴토레토가 완성품을 제출하거나 그걸 기증한건 룰에 어긋난다고. 편법을 쓴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엄마는 틴토레토의 손을 들어주고 싶구나. 사회란 암묵적으로 공고히 유지되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에 대항하는 자에겐 너무나 무자비하니까. 느루가 조정 훈련 때 느꼈던 것처럼 말이야. 누구도 코치의 권한에 대항하고 싶어 하지 않지. 친구가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 해도 그건 전체를 위해서 불가피한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야. 억울함에 대한 공감만으로도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분류하고 배척당하니까. 창조적이고 개성 강한 사람이나, 또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부족한 이를 무리에서 고립시키는 것은, 권력이 대중을 사회에 길들이는 낡고 오래된 관습이지.  


  티치아노의 공방을 나온 틴토레토의 마음은 어땠을까? 화단 최고 실세의 눈 밖에 났으니 그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거야. 또 성공하려는 욕망만큼이나 자식을 키우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을 거야. 권력자나 귀족들에게 외면받았던 그는 신흥 상공업자 조합이나 평신도 단체인 스쿠올라 같은 곳의 주문을 받아 작업했어. 그래서 화가 조합이 결정한 가격보다 더 싼 보수에도 붓을 들었고, 어떨 땐 거의 무상으로도 작품을 제작했어. 그건 그에 대해 또 다른 불만세력을 키웠어. 동업조합의 룰을 깨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불명예를 안겨 주었지. 


  또한 사람들은 그의 실력에 대해서도 수군댔어. 베로네세보다 못하다고 말이야. 하지만 엄마는 그런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최대한도로 자신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조건과 환경이 받쳐줄때, 작품 주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어떤 주문이든 아무리 싼 값에라도 수락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사람은 작품에 들이는 공력(功力)이 차이 날 수밖에 없으니 결과도 그만큼 다르지 않겠니?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 1575~80>


  갑자기 틴토레토의 변호사가 된 엄마가 변론의 증거로 내미는 <은하수의 기원, 1575~80>이야. 거의 독학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그가 전성기인 50대 후반에 그린 작품이지. 화면에서 유쾌하고 활달한 에너지가 품어 나오지 않니? 육감적이고 입체적이고 감각적이지. 거기에 유머러스하기까지 해. 


  화제(畵題)가 말하듯 은하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신화를 그렸어. 바람둥이 제우스가 아름답고 정숙한 알크메네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워 헤라클레스를 낳았어. 정숙한 여인이 어떻게 다른 남자랑 바람을 피우냐고?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침실로 들어왔거든. 알크메네를 통해 꼭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었던 제우스는 하룻밤의 길이를 세배로 늘려 기어코 영웅을 만들었단다. 이 소식을 알게 된 헤라는 분노가 치솟아 갓난 헤라클레스의 침실에 독사를 풀기도 하지. 헤라클레스는 양 손에 한 마리씩 잡고 간단하게 죽여버려. 전후를 파악하게 된 알크메네는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처한 걸 눈치채고 아이를 내다 버렸어. 버려진 아이의 배고파 우는 소리가 천상에 있는 제우스에게까지 들렸단다. 제우스는 아기를 안아다 마침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헤라의 젖에 살그머니 물렸어. 신의 DNA를 가졌고 나중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이 된 헤라클레스이니 얼마나 힘이 셌겠니. 너무 세게 젖을 빨아 잠든 헤라를 깨우고 말았구나. 깜짝 놀란 헤라가 아기를 밀쳐내자 젖이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았어. 하늘에 은하수, 즉 '젖의 길(Miliy Way)'이 생기게 된 이유야. 방울방울 땅에 떨어진 헤라의 젖은 백합꽃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엄마는 이 그림의 서사적 구조, 감각적인 색채, 그림자까지 표현한 입체적이고 대담한 구도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인간 중심적이라 매력적이야. 사랑의 활과 화살을 들고 헤라의 주위를 나는 네 명의 큐피드를 봐. 엄만 한 번도 한 화면에 무려 네 명의 큐피드를 본 적 없단다. 물론 작품을 폄하하는 이들은 질(質)이 안되니 양(量)으로 승부했다고도 한다만. 어쩌면 틴토레토는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신 헤라의 젖을 의지가지없는 인간 헤라클레스가 먹게 해 달라고. 엄마의 젖이 주는 무한한 사랑의 힘으로 시련을 이기는 우리의 영웅을 만들어 달라고. 틴토레토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든 상황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헤라클레스는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위대한 영웅이 되지. 그래서 그의 이름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잖아.


  이 작품이 제작된 1570년대는 피렌체가 주도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정체기를 맞고 베네치아 경제가 번성하며 바통을 이어받았던 때란다. 베네치아는 캔버스를 사용한 대량 제작방식으로 전환해 미술품이 양적으로 풍부해졌어. 하지만 질적으로는 이전의 르네상스 화풍이 중심이 되었고 이후 나타난 바로크 양식처럼 독특하고 개성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했지. 이를 '마니에리스모 manierismo'라고 해.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낮잡아 부르기도 하는 단어지. 18세기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혁신과 변화 없이 르네상스를 모방하고 안주했다고 비판했지만 후대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르네상스 미술의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스타일로 그렸다고 재평가했지. 이 마니에리스모 시기에 16세기 베네치아 화파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이 회화의 군주 티치아노, 제자 베로네세, 그리고 혼외 자식 같은 틴토레토야. 


  틴토레토가 독창적인 해석으로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을 보여줄게.


틴토레토  <이집트로의 도피, 1582~87>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어. 천사는 서둘러 일어나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 내가 알려줄 때까지 그곳에 머물라고 하지. 추격하는 로마군을 피해 급히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聖家族)을 그린 <이집트로의 도피, 1582~87>야. 얼마나 서둘렀는지 지팡이에 옷 가지 하나, 도기 하나뿐이네. 여느 화가들은 예수와 마리아에 집중하지만 그는 달랐어. 전면에 요셉을 클로즈업했지. 정혼한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아이를 잉태했고, 신의 아들이라는 아기를 위해 평온한 삶을 포기하고 쫓겨 다녀야 하는 요셉 말이야. 틴토레토는 요셉을 가장 앞면, 어둠 속을 살피는 외롭고 고독한 자의 모습으로 그렸어. 마치 그처럼.


  요셉처럼 그는 평생 쫓기는 기분이었을지도 몰라. 위대한 스승에게 내침당하고, 귀족들은 상대하지 않았으며, 거만하고 얍삽하다는 소문은 당나귀 숲처럼 바람을 타고 베네치아를 떠돌았지. 그는 기존 화단과 경쟁해야 했고, 강고한 전통과 싸웠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거칠고 폭발하는 감정을 다루어야 했어. 하지만 그는 천부적인 에너지와 쾌활한 자신감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북돋웠어. 낮은 보수와 허드레 일감에도 낯 붉히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을 숙명처럼 여겼지. 틴토레토는 자신의 공방에 이렇게 써 놓았어. 


  "Il desegno di Michelangelo ed il colorito di Tiziano 미켈란젤로에게는 디자인(형태)을, 티치아노에게는 색채를." 

  그는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를 존경했어. 티치아노의 현란한 색을 배워보려 했지. 그리고 그는 성공했단다. 24여 년동안 평신도들이 모이는 '산 로코 대신도 회당'의 여러 방에 독창적인 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신을 대신해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닦아주었구나. 배척과 편견 속에서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극복해야 했던 그는 일흔이 넘어서야 화단의 정식 인정을 받았단다. 이 거장(巨匠)의 위대한 여정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티치아노를 이은 베네치아 화파의 적장자로 인정했구나. 


  느루가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나가겠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치겠지.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면 그만큼 스스로 분명한 생각과 정체성을 가져야 할거야. 경쟁이나 서열을 중심으로 한 구조는 목표 달성이 주인공이 되기 쉬워. 하지만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쁨을 얻고 싶다면 경쟁 못지않게 상호간 연대와 협력이 중심이 되어야 해. 그건 주체적인 생각이 만든단다.


  사회란 견고하지.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변하기엔 누적된 시간의 힘과 에너지의 총합이 큰 덩어리야. 그래서 쉽게 움직이지 않아. 게다가 관습과 통념의 무게는 육중한 바위처럼 개인을 누르지. 하지만 엄마는 해변가 모래도 과거 그 어느 때엔가는 커다란 바위였을 거라고 생각해. 바위가 깨지고 깨지고, 닳고 닳아, 결국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가 된 것이라고. 지금의 모래는 그 오래전 길들여지지 않은 생각을 가진 바람과 이슬과 계란이 바위에 몸을 부딪친 결과라고. 온몸을 던져 부서지고 흩어지고 깨졌던 모든 것들이 바위에 실금을 내고, 균열을 일으키고, 바위를 두들겨 지금처럼 가는 모래가 되었던 거야. 


  훈련 중에 찍은 모양이네. 톡에 전송된 사진 속 느루가 아주 밝구나. 어, 진짜 그 코치님이 아닌 걸? 그분이 훈련시켰던 팀들이 줄줄이 수상에서 멀어져 선배들이 다른 코치님으로 섭외했다고? 그래, 참된 실력은 코치 영향력의 확대가 아니라 선수 기량의 확대에서 나오니까. 아무도 '목표'가 주인공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아. 우린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희망하고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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