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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마 Aug 22. 2020

좀비와 노예와 잉여인간

인권과 인권들 by 정정훈, 그린비



저자는 현재 인권의 위기를 사회경제적 조건, 인권담론의 이론적 위기, 인권에 대한 대중적 감수성의 쇠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또한 국가의 통치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와 억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현재 사회경제적 조건은 넓은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또는 현대 자본주의라는 자본의 축적 방식이 대표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의 가치와 생각의 토대가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념에 있고, 우리의 삶과 문화, 제도,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좀비와 철학에서 말하는 노예, 그리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잉여인간을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신자유주의는 경제이론에서 출발했으나 우리의 모든 삶을 관장하는 이론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에, 문화와 이론에, 제일 어울려 보이지 않는 교육과 복지에도 신자유주의는 그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몇 명의 정치 지도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라면 사람들 속에 있는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신념을 잘 이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제도와 권력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에 도전하고 대항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인권을 위협하는 제도나 단체나 권력이 문제라고 말하기에 앞서 그러한 제도, 단체, 권력의 바탕과 시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과 시작의 판 위에서는 어느 경우에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인권에게 불리한 룰이 정해져 있는 판에서는 인권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일정한 형태를 중시하는 태권도나 유도 등 무술 고단자는 이종격투기 선수를 이기기 어렵고, 이종격투기 선수는 물고, 뜯고, 할퀴고, 급소를 공격하는 뒷골목 싸움에서 이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탕의 신자유주의는 놔두고, 신자유주의적 바탕 위에 세워진 제도와 문화와 권력과 싸움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자신이 선택한 상황 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하에서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발리바르는 “그 조건들을 결정적이게 하는 것은 조건들이 주체를 낳는 방식, 또는 조건들이 주체에 의해 경험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는 주체들이 자신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활동의 장을 어떤 방식으로 감각하며, 어떤 상상적 틀 속에서 경험하느냐의 문제이자 동시에 그 조건들이 그것에 대한 주체의 상상적 인지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논리가 사회의 모든 논리를 대표한다는 점은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숫자로 대표되는 자본이 모든 것을 표현하고 가치의 기준이 됩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의 진정성이나 처벌의 엄중성이 금액으로 표현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마르크스는 인권이 인간해방을 위한 권리가 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궁극적으로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방향은 인권이 지향하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인권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인간의 노동을 중심으로 해야 인간의 가치가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된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융시장과 같은 곳에서는 소수의 몇 명이 좌우하지만 그 액수가 천문학적이므로 다수의 인간은 결국 소외되고, 그 가치가 평가절하됩니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인권을 사적 이익의 추구와 재산의 보존과 이기적 인격일 뿐이라고 했지만, 인간과 노동의 가치적인 면에서 진정한 인권적인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계층은 타협과 동의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들은 ‘법과 질서’의 이름 아래 강압해야 할 대상으로 협상의 대상에도 못 들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불안정성과 구조적 위기 속으로 계속 몰아 대고 진압과 통제의 대상으로 파악하여 결국에는 이들에게 인권이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들을 소모품 내지는 경제의 도구로 간주해 버립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가 주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경쟁과 효율로 대표되는 가치가 침범할 수 없는 최소한의 영역이라도 설정을 해두어야 합니다. 그 영역은 교육이나, 복지, 문화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번도 현대 자본주의를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 시대를 진단하고 있는 장자의 개념을 인용해서 이 글을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개인이 가진 재능이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성공 욕망에 휩싸이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재능이란 사회가 심어준 가치관에 매여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타자를 도구(대상)로 삼는 것이 아닌 타자를 존재 자체로, 목적으로 보고 구분하고 서열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제와 착취의 메커니즘이 아닌 배려와 포옹의 가치관이 인권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회경제적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닌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진정한 나로 나가기 위한 노력이 인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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