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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마 Aug 28. 2020

소외된 가치, 인권

자본론을 읽다. by 양자오, 유유 출판사

소외된 가치, 인권     

자본론을 읽다. by 양자오, 유유 출판사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용가치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이고, 교환가치는 다른 것과 비교하여 잉여와 결핍이 생길 때 발생하는 가치입니다. 어떤 사물은 사용가치가 높은 반면 교환가치는 전혀 없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다른 의미이지만, 자본주의는 어떤 물건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동일하게 만듭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교환가치를 사용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컵의 예를 들면서 자본주의의 왜곡된 가치체계를 보여줍니다. 내 책상에 있는 머그컵의 가치는 상품시장에 나가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시장에서 내 컵은 다른 컵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품화되고 가격화된 가치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컵을 내게 선물했고, 내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손잡이에 금이 갔어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봐야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컵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컵의 상품체계 속에서 가격을 이야기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즉 시장에서 컵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 컵을 얼마로 보느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컵에 대해 매긴 가치(가격)에 준해서 내 컵도 가치가 매겨집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내가 가진 컵에 대한 내 고유한 가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환가치는 사람과 사물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인 사용가치를 파괴하고 왜곡합니다.      

자본주의는 가치를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가치는 남이 결정해주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남에 의해 결정된 가치가 곧 나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을 하고 거기에 올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사람과 사물을 그 본질에서 ‘소외’시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서 진정한 우리의 욕망을 ‘소외’시키는 것입니다. 지구 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개인으로서 각각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를 소외시키고 자본주의는 고유한 개인의 욕망을 소외시켜 타인과 다른 개인의 정체성을 왜곡시킵니다. 사람과 사물을 교환가치에 따라 본질로부터 소외시키고, 가격비교를 통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에서 우리 자신을 ‘소외’시킵니다. 결국 나는 본질의 사용가치가 아닌 비교의 교환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삶이 아닌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의 집이 빨간색 대문과 해바라기가 핀 노란색 창문과, 현관문에 토끼 모양의 인형이 달려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도 부모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성인인 부모가 가장 빠르게 그 집을 파악하는 방법은 매매 가격이 얼마인지입니다. “가격은 물건을 ‘상품’으로 변화시키고 모든 물건을 빨아들여 ‘상품체계’를 형성함으로써 모든 물건이 그 가격에 따라서만 서로 관계를 맺도록 합니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사람과 사물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 간의 관계도 교환가치에 의한 상품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을 상품화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상품체계로 바꾸었고, 우리는 그 체계에 의해 사람을 판단합니다. 상품화된 인간관계에서 비교우위에 있지 않으면 가치 없는 사람이 되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려고 합니다. 스펙으로 포장된 자신의 상품성이 어느 정도인지 늘 확인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왜곡된 구조이자 가치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스펙이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남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체계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상품화된 인간관 계속에서 살아가면서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용가치와 같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갖느냐는 교환가치나 상품체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핵심을 ‘관계’로 보고 그 관계가 자본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세상을, 인간이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에 의해 밀려나지 않는 세상을,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권 친화적 사회구조를 목표로 했지만 그는 인권이 인간해방을 위한 권리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인권은 일부 계층의 사적 이익 추구와 재산의 증식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남의 욕망을 내 것이라 여기며 살 때, 개인의 욕망과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소외됩니다. 우리는 보통 욕망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본다면, 개인의 욕망은 개인의 고유한 본질을 나타냅니다.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할 때 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고유한 개인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욕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지 못하고, 내 삶에서 나는 소외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가격화된 체계가 내 주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양자오는 “우리는 가격에 포위되어 있고, 욕망의 자주성을 빼앗기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포위되어 있고, 개인으로서의 자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삶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삶에는 내가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욕망이라는 가격 체계에 의해 살아가는 내가 있을 뿐. 나는 간데없고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남아있습니다.      

내가 없는 삶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다른 이에게도 적용됩니다. 내가 나의 본질을 잃고 교환가치에 매몰되어 삶을 살아간다면 내가 관계하는 다른 이들의 가치도 교환가치로만 보게 됩니다. 교환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그의 가치도 부정하기 마련입니다. 교환가치에서 밀리는 사람은 기본적인 권리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내 욕망의 자주성과 가치를 되찾겠다고 자본주의를 벗어나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가능하다면 자본주의 안에 사용가치를 많이 도입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와 시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뺏어갈 수 없는 것, 나와 다른 이들의 사용가치를 중요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런 사용가치가 인권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고유의 가치와 그런 가치를 인식하는 이들과의 자유로운 관계가 인권이 꿈꾸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축적을 위한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지닌 개인 간의 자유로운 교류가 보장되는 사회가 인권 친화적 사회입니다. 결국 시스템에 의해 주입된 것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각각의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인권의 시작입니다. 마르크스적 표현에 따르면, 시스템에 의한 본질의 소외와 그로부터 시작된 착취의 구조를 인간해방으로 대표되는 자유의 길로 이끄는 것,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 오후 아이가 잠든 사이에 책을 읽으며 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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