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SA 빠진 Apr 04. 2020

관계를 맺는다는 건

사막의 개.


사막에 개 한마리가 찾아오다.



사막은 계절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추위와 더위가 아침 저녁으로 옷을 바꿔 입을 뿐.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는 보기 어렵다.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건조한 사막의 풍경은 시간마저도 정지 킨 듯 적막함으로 가득하다. 사막은 왜 아무것도 품지 않은 걸까.


사막에 바람이 불었다. 낯선 이의 손길 같은 바람은 살갗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졌다. 소름이 돋았다. 맺혔던 땀은 마법처럼 사라졌다.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혔고 귀로 불어온 바람은 여름밤 모기처럼  윙윙 거렸다. 바람은 땅에 누워있던 모래들을 꽃가루처럼 날리게 했고 팔 잘린 나뭇가지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다시 살아나게 했다.



실눈을 떠 보니 먼발치에 마른 검정개 한 마리가 있었다. 아침에  떠나온 마을에서 보았던 개였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다시 만난 반가운 마음에 먹을거리를 주었지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물과 간식을 두고 자리를 피하자 그때서야 거리를  좁혔다. 다시 짐을 챙겨 낙타를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뒤를 바라보니 멀리서 개가 따르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거대한 공룡이 누운 거 같기도,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 같기도 했다.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자 바람이 휘몰아치며 작은 모래알들을 날려버렸다. 하룻밤 신세 질 곳을 찾아 짐을 풀었다. 개 또한 먼발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가까이 오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않았다. 불을 피워 저녁을 먹을 때만 잠시 거리를 좁혔을 뿐,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 거리를 두었다. 사막에 가끔 찾아오는 여행객 주변을 배회하며 배를 채우는 사막 개의 생존 문법인 듯했다.


추위가 꽈리를 튼 혹독한 밤이 지났다. 너무 웅크리고 잤는지, 좀비처럼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개는 추위를 잘 견뎠는지 궁금해졌다. 모래 언덕을 돌아가니 개가 등지고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밤새 나를 지켜준 모습 같았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길들여져 버린 걸까. 개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건 <<어린 왕자>> 사막 여우의 말처럼 관계를 맺는 일이다. 관계는 평번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을 보라. 사랑은 가장 보통의 존재였던 상대를 60억 인구 중 가장 잘생기고 예쁜 ‘여공’ ‘남공’으로 만들지 않던가. 어디 연인의 사랑뿐이더냐. 가족, 친구, 선후배 등 수많은 관계는 각자 세상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관계를 특별하게 하는 건 시간이다. 시간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 속에 살아가고 존재한다. 죽고 사라지는 물리적 시간을 마음속에 존재케 하는 건 결국 크고 작은 관계들이다.  모래알이 모여 거대한 모래 언덕을 이루는 것처럼 시간이 쌓인 관계는 삶의 풍경을 만든다. 하루 하루를 같이 하는 사람이 소중한 건 곧 자신의 삶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깃든 하찮은 관계란 없지 않은가.





개와 곧 이별을 고할 가벼운 관계라는 걸 알았지만 존재 만으로도 고마웠다.아무것도 없던 사막,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 사막의 개.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할지라도, 존재의 소중함을  보여주기 위해 사막은 아무것도 품지 않았나보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났고 개도 발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맞이 했다. 사막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이전 08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